노재헌(앞줄 왼쪽부터) 주중대사와 류웨이 중국 교통운수부 부장, 한성숙 중기부 장관과 리러칭 중국 공업
정보화부 부장이 1월 5일 각각 교통 분야 협력 및 중소기업과 혁신 분야에 관한 협약식을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노재헌(앞줄 왼쪽부터) 주중대사와 류웨이 중국 교통운수부 부장, 한성숙 중기부 장관과 리러칭 중국 공업 정보화부 부장이 1월 5일 각각 교통 분야 협력 및 중소기업과 혁신 분야에 관한 협약식을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2026년 1월 5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2025년 11월 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이후 두 달 만이다. 한중 정상은 각 분야 실무 협력을 약속했고, 문화·콘텐츠 교류 확대에도 입을 모았다. 이른 시일 내에 중국에서 K-팝 공연을 열거나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긴 어려워 보이지만, 중국 측은 “과일은 익으면 저절로 떨어진다”며 점진적 교류 확대를 암시했다. 서해 구조물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하 원잠) 관련해서도 갈등을 일단락했다.

청와대 발표와 중국 관영 신화통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월 5일 오후 4시 45분(현지시각)부터 약 90분간 회담을 진행했다. 이는 예정보다 30분 늘어난 것으로, 공식 환영 행사부터 국빈 만찬까지 두 정상은 4시간 넘게 함께했다. 이들은 기술협력과 경제·무역 협력을 약속했고 한반도 평화, 서해 구조물 철거, 문화 교류 확대 등을 논의했다. 매년 만남을 이어가자는 공감대도 형성했다. 

MOU 14건 체결했지만 공동성명 없어

이날 현장에선 14건의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우선 양국은 미세먼지 개선 등을 위해 ‘환경 및 기후 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대기질 개선부터 기후변화 문제까지 한중 간 협력 범위를 확대하고, 장관·국장급 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한중 관세 당국이 지식재산권 침해 적발 세부 내용을 서로교환하는 등 내용의 ‘국경에서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상호 협력 MOU’도 체결했다. 민생과 관련해선 ‘야생(자연산) 수산물 수출입 위생 관련 MOU’를 체결했다. 일부 품목에 국한됐던 자연산 수산물 수출 범위를 냉장 병어 등 전 품목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중국 푸젠성 등에서는 병어가 인기 어종이다.

문화재 기증 증서 1건도 체결됐다. 우리 정부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淸)대 제작 석사자상 한 쌍을 중국 국가문물국에 기증하기로 했다. 이 석사자상은 고(故) 간송 전형필 선생이 1933년 일본에서 경매로 구입한 것으로, 생전에 “석사자상은 중국의 유물이니 언젠가 고향에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 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중 정상회담 직후 체결된 14건의 MOU와는 별도로, 같은 날 오전 한중 정재계 인사 600여 명이 참석한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도 9건의 한중 기업 간 MOU가 체결됐다.

MOU 체결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두 정상은 양국 간 ‘문화·콘텐츠 교류 점진적 확대’ 에 공감대를 이뤘다. 2016년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해제를 위한 협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중국은 그간 공식적으로 ‘한한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지만, 사드 배치 이후 10년째 한국 콘텐츠에 시장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양국 국민의 혐중·혐한 정서 해결이 중요하다며 바둑 대회와 축구 대회 개최를 제안했고, 시 주석은 “바둑이나 축구 교류에는 문제가 없다”며 “석 자 얼음은 한 번에 녹지 않고, 과일은 익으면 저절로 떨어진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 역시 이와 관련해 “봄도 갑자기 오지 않고 시간이 필요하다”며 “가능한 범위에서 점진적, 단계적, 질서 있게, 건강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양측 모두 수용 가능한 분야부터 점진적으로 교류를 확대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바둑·축구 분야 교류를 추진하기로 했고, 여타 드라마·영화는 실무 부서에서 협의하에 진전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고 말했다. K-팝을 특정한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해 구조물 문제와 원잠도 논의됐다. 중국은 현재 서해의 한중 잠정 조치 수역(PMG) 내에 대형 철제 구조물을 무단 설치한 상태로, 이는 안보 위협으로 간주해 반발을 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중국 측은 해당 시설이 양식장과 이를 관리하는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측으로부터 ‘철수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으며, 이에 따라 시설을 옮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원잠에 대해선, 앞서 중국이 “한미 양국이 핵 비확산 의무를 이행하길 바란다” 며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북한의 핵 잠수함 등 핵무기 확대에 따른 ‘안보 위협 대응’ 이 목적임을 중국에 설명했다. 위 실장은 “(관련 대화 과정에서) 특별히 문제가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번 정상회담에서한중 간 교류 확대에 입을 모았지만, 공동성명이나 공동 언론 발표문은 나오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을 이어가고 대만 문제를 두고 중국과 일본 간 갈등이 격화하는 등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양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 공동성명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년 7월 시 주석의 국빈 방한 때 발표된 게 마지막이었다. 당시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재명 대통령이 1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샤오미 스마트폰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1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샤오미 스마트폰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中 “협력 새출발” 평가… “역사의 옳은 편에 서야” 압박도

윤석열 정부 시절 악화했던 한중 관계가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 개선되고 있으며, 교류 확대를 위한 실무 협력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중국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관영 환구시보는 1월 6일 사설에서 양국은 ‘옮겨갈 수 없는 이웃’임을 강조하며 소통과 교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양국 간 경제·무역 협력 약속과 관련해선 이번 이 대통령 방중에 대규모 경제 사절단이 동행한 점을 의미 있다고 봤다. 이는 양국의 경제적 상호 보완 구조가 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오히려 더 큰 협력 잠재력을 발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어 사설은 “한국 기업계가 이번 방중을 고도로 중시한 것은, 한중 관계가 건강한 궤도를 따라 전진하는 것이 쌍방의 이성적이고 실무적인 필연적 선택임을 정확히 보여준다”고 했다.

역사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사설은 한중이 공통적으로 항일 역사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설은 “한중 정상은 모두 회담에서 양국이 과거 일본 군국주의 침략에 공동으로 맞서 싸웠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방중 기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옛터를 참관할 예정”이라며 “이러한 공동의 역사는 전후(戰後) 국제 질서 수호와 역사적 정의 수호라는 중대한 문제에서 쌍방이 자연스러운 공감대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앞서 시 주석도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에게 “역사의 올바른 편에 확고히 서서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 대만 문제를 둘러싼 중일 갈등 등 사안에서 중국 입장을 존중할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가에 따르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라’는 말은 중국이 외교 현장에서 종종 사용하는 표현으로, 갈등 국면에서 분명한 입장을 취하며 중국의 입장을 존중할 것을 요구할 때 쓰는 말이다.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 사태와 대만 문제에 대해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중국)=이은영 조선비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