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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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가 만든 대형 세단 ‘에쿠스(Equus)’를 기억하는가. 지금은 제네시스 브랜드로 통합돼 새 이름을 부여받았지만, 출시된 1999년부터 2015년까지 국산 고급 차로 압도적 위상을 자랑했다. 에쿠스는 라틴어로 ‘말(馬)’이라는 뜻이다. 말은 4000~5000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가축화해 사람을 위해 운송·노역·식량 자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종의 다양화도 진행돼 현재 300종 이상이 있다고 한다. 이 중 가장 잘 알려진 건 경주마로 유명한 ‘서러브레드(through-bred)’일 것이다. 말은 역사의 흐름에도 지대한 역할을 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문학에 많이 등장한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 속 여포의 ‘적토마’, 정복 왕 알렉산더의 애마 ‘부케팔로스(Βucephalus)’, 술 취한 주인을 기생집으로 데려다줬다는 이유로 목이 잘린 ‘김유신의 말’ 이외에도 수많은 사례가 있다. 특히 전쟁 수행의 도구로 말을 타고싸우는 기병(奇兵)과 말이 끄는 전차(戰車)가 과거엔 ‘전략무기’였다. 어느 편이 더 많은기병과 전차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렸기 때문이다. 몽골이 병사 전원이 기마병인 군단을 이용해 러시아까지 정복한 대제국을 건설한 건 그 한 예일 뿐이다. 지구력이 뛰어난 몽골 말은 이후 아시아 전체로 퍼졌다. 몽골이 고려와 연합해 일본을 침공하러 갈 때 제주도에 몽골 말 몇 백 마리를 데려왔는데, 제주의 재래 말과 교배해 오늘날 ‘제주마’가 됐다. 제주마도 뛰어난 지구력으로 유명하다. 

자동차의 힘을 말의 힘, 즉 마력(馬力)으로 표기한다. 에쿠스라는 이름에 걸맞다. 에쿠스 같은 대형 승용차는 보통 300마력 이상의 힘을 내는 엔진을 장착하는데, 이런 차가 시속 100㎞로 달릴 때 필요한 힘은 고작 20마력 이하라고 한다. 경운기 엔진을 달아도 가속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쓰지 않고 낭비되는 힘이 많은 셈이다. 그런데도 자동차 제조사는 계속 마력 수를 높인 엔진을 장착하려고 한다. 이런 낭비되는 마력은 위급한 상황을 회피할 때 급가속을 가능케 하고, 평소 주행에서도 비단처럼 부드러운 승차감과 뛰어난 운전 편의성을 제공하는 등 어떤 상황에서도 차가 ‘잘 달리게’ 한다. 이를 가리켜 '여유 마력'이라고 한다. 소비자가 돈을 더 주더라도 고(高)마력 차를 사는 건 이 때문이다. 

김경원 - 세종대 석좌교수,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CJ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 전 세종대 부총장 및 경영경제대 학장
김경원 - 세종대 석좌교수,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CJ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 전 세종대 부총장 및 경영경제대 학장
동양 명리학은 하늘의 기운인 ‘천간(天干)’ 10개 글자 중 하나와 땅의 기운인 지지(地支)를 상징하는 12개 글자에서 각각 하나씩 가져와 조합해 각 해를 명명하는 전통이 있다.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으로, ‘병(丙)’ 은 천간(天干)의 세 번째 글자로 불(火)을 상징하며, 붉은색에 해당한다. ‘오(午)’는 지지(地支)의 일곱 번째 글자로 말(馬)을 뜻하고, 불의 기운을 품고 있다. 그래서 2026년은 ‘붉은 말’의 해로 불리며, 성질상 불의 기운이 중첩돼 나타나 ‘뜨거운’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변화는 부정적일 수도, 긍정적일 수도 있다. 천간 10자와 지지 12자를 조합하면 60년 만에 한 번씩 같은 해가 찾아오는데, 120년 전 병오년인 1906년에는 치욕적인 일제 강점의 제도적 기초가 되는 ‘한국통감부’ 가 설치됐다. 하지만 60년 전 1966년은 1차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실행 마지막 해에 그 정책 효과가 나타났고, 6·25 이후 최초로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12%)을 기록, 이후 ‘잘 달리는’ 말과 같은 고도성장의 원년이 됐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사다난했던 을사년(乙巳年)이 가고 병오년이 왔다. 하지만 여야의 협치는 잘 보이지 않고, 경제 역시 미국과 관세 협상 타결 후에도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한다. 특히 집값은 새 정부 들어 두 번의 강력한 대책에도 오름세가 진정되지 않고, 환율도 정책 당국의 의지와 개입에도 불안하다. 새 정부가 13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두 차례에 걸친 전 국민 대상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했지만, 내수 경기도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새해부터는 대미 관세 협상 이행 과정에서 매년 200억달러(약 29조원)를 미국으로 보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병오년이 적어도 한국 경제에 한해 60년 전처럼 긍정적인 해가 되도록 정책 당국과 기업의 현명한 대응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2026년을 넘어, 내년과 내후년에 한국 경제를 단단히 일으켜 세울 ‘회복 탄력성(resilience)’를 키우는 계기가 마련되면 더 좋을 것이다. 

정책 당국은 이 혼란한 경제 상황에서 주요 거시 경제 변수 중 어느 것에 먼저 ‘집중’할지 잘 ‘선택’할 필요가 있다. 모든 변수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건 매우 어려우니, 순서를 정해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게다가 이들 변수는 서로 연관돼 있는 경우도 있어 한 변수를 해결하다 보면 다른 변수가 자동 해결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환율, 집값, 내수 경기를 차근차근 순서대로 풀어 보면 환율과 집값은 같이 풀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그 열쇠가 같기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금리다. 필자는 여러 번 현재의 고환율과 집값 동반 급상승의 공통 원인은 저금리라고 지적 해 온 바가 있다. 

올해는 한국은행이 아예 금리를 동결하고, 더 나아가 이를 천명하는 게 나아 보인다. 이는 시장 참가자의 기대를 바꿔 적어도 금리가 환율이나 집값의 추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내수 경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시장은 정책 당국이 6·3 지방선거 후 집값 안정책으로 종합부동산세 등 관련 세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예상대로 관련 세금이 오르면, 내수 경기는 더 후퇴할 것이고, 이에 한국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효과도 별로 없겠지만-다시 금리를 내리고, 다시 집값 상승과 환율 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환율·집값 안정과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해서는 금리 동결부터 시작해 볼 일이다. 

또 새해에는 경기가 살아나지 않더라도 추가 소비 지원금 등으로 인한 추가경정예산 소요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2025년 환율 불안의 이유 중 하나였던 ‘확장 재정으로 인한 통화량 팽창’에 대응하고, 재정 건전성 악화를 방지해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통일 등 ‘돌발 상황’에 대비해 재정의 여유 마력을 확보할 기반이 되고, 한국 경제에 절실한 회복 탄력성 구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도 새해를 ‘잘 달리는’ 해로 하기 위한 대응이 요구된다. 기업은 2025년 관세로 고통받았고,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이후에도 대부분 상품에 15%의 관세를 물게 됐다. 다행스럽게 수출은 2025년 호조였으나, 관세 부담으로 인한 주요 수출 기업은 가격 경쟁력 약화로 수출 가격을 낮추거나, 현지 법인이 관세를 부담해 대미 수출의 수익성이 나빠졌을 것이다. 낮아졌더라도 2024년까지 없었던 관세 부담이 새로 생겼으니, 2026년에도 그 어려움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미국 외 시장 진출 노력을 기울이면서 연구개발(R&D) 투자 제고 등 근본적 경쟁력 강화를 지속할 일이다. 

기업의 경쟁력은 ‘여유 마력’으로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도, 상황이 좋아질 때도 결국 큰 도움이 된다. 기업의 노력 역시 한국 경제의 회복 탄력성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모쪼록 새해는 잘 달리는 적토마나 부케팔로스, 제주마처럼 한국 경제가 ‘명마(名馬)’의 해가 되길 바란다. 

김경원 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