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수치가 만드는 교육 불평등의 착시
간단한 비유를 들면 이렇다. A 교실에 100점을 받은 학생 10명과 0점을 받은 학생 10명이 있고, B 교실에 50점을 받은 학생 20명이 있다고 하자. 두 교실의 평균 점수는 같지만, 성취도의 편차는 분명 A 교실이 크다. 그렇다면 A 교실은 교육적으로 더 불평등한 교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정하기 어렵다. 학생의 출발선이 어땠고, 어떤 교육과정을 거쳤으며, 성취의 격차가 교육 기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따라 평가는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두 교실 모두가 누구에게나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교사 역시 높은 전문성과 열의를 바탕으로 학생을 지도하여 교육과정상 불평등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 성취 분포는 ‘평등’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개인 간 재능이나 그 밖의 정신적·육체적 능력 차이를 반영한 결과에 가까울 수 있다.
따라서 잘못된 수치로 교육 불평등을 논의하지 않으려면, 교육 기회(투입)와 교육과정(과정)의 불평등으로 인해 교육 결과(산출)의 부당한 격차가 발생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일련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결과만을 포착하여 불평등을 판단할 경우, 개인에게 귀속되는 일신 전속적 능력의 차이마저 교육 불평등으로 오인할 수 있다. 반대로 국가가 방치하거나 제도적으로 초래한 교육 여건의 격차, 즉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형성되는 능력 조건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하는 오류에 빠질 위험도 염두에 둬야 한다.
사교육비는 ‘투입’일 뿐
사교육비는 교육 불평등 논의에서 흔히 등장하지만, 잘못된 수치의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2007년 이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 가구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그리고 고등학생의 성적이 상위일수록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이 높다는 보고가 반복됐다. 지역별로도 서울의 사교육비가 가장 높고 읍·면 지역에서 가장 낮은 경향이 지속됐다. 이러한 결과는 일부 언론에서 ‘교육 불평등 심화’ 의 근거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교육비 자체는 교육의 ‘투입’ 단계에 해당하는 수치일 뿐이다. 공교육의 과정이나 산출과 관계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사교육비 지출 차이가 학업 성취의 격차로 이어졌다면, 교육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도 있다. 고등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8년 32만원에서 2024년 52만원으로 증가했는데, 성적 상위 10% 이내 집단과 하위 20% 집단 간 격차는 17만3000원에서 29만5000원으로 증가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 가격의 표준편차를 보더라도 성적 구간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는 지난 몇 년 사이 뚜렷하게 확대됐다. 사교육비가 성적 격차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주요 연구의 다수는 사교육비 지출의 학업 성취도 향상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특히 지출 증가에 따른 추가적인 학업 성취 향상 효과는 감소하는 경향이 있고, 사교육 덕분에 성적이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래 성적이 높거나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 사교육을 더 많이 받았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 계량적으로 사교육이 성취 향상에 미치는 순수한 효과는 매우 작다는 것이다. 사교육비 격차의 확대를 교육 불평등의 주요 원인으로 과대평가하거나, 이를 곧바로 교육 불평등의 양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투입과 과정이 학업 성취에 미친 영향을 인과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천용’ 줄고, ‘유리 바닥’ 단단해졌나
더 흔히 소환되는 대상은 대학 입시다. 유· 초·중등교육 단계에서 형성된 학업 성취가 대학 진학이라는 교육 결과로 이어지면서,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대학 진학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2010년 고 3인 코호트(cohort·인구 집단)와 2020년 고 3인 코호트를 비교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정 배경에 따른 대학 진학 기회의 불평등이 강화되고 있다는 근거가 확인된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집단일수록 가구 소득과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았고, 일부 영역에서는 그 격차가 확대됐다. 나아가 가정 배경이 양호할수록 초기 진학 결과에 만족하지못해 재도전을 선택할 가능성은 최근 코호트에서 더 커졌다. 대학 입시라는 선발 과정에서 교육 결과가 다시 가정 배경에 따라 구조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경제적 상위 계층에서 상위권 대학 진학 기회가 보다 안정적으로 재생산되는 현상, 즉 ‘유리 바닥’이 단단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만으로 공교육 전반의 실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학업 성취가 형성되는 이전 단계에 주목하면, 다른 그림이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 2022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 평등 수준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양호하다. 최상위 성취 집단에서 가정 배경이 성취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났고, 공교육을 통해 사회·경제적 배경의 불리함을 일정 부분 상쇄하는 기회 환원 기능도 작동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PISA 2006년부터 2022년까지의 결과를 바탕으로 산출한 ‘개천용 교육 불평등 지수’나 ‘상향 이동성 지수’ 역시 OECD 평균은 물론 미국, 일본, 핀란드 등과 비교해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개천용’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다만 문제는 추세다. 지난 20여 년간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 차이가 학업 성취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지표가 정체되거나 소폭 악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공교육의 완충 기능이 여전히 작동하지만, 그 효과가 점차 약화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개천용의 통로는 아직 열려 있지만, 점점 좁아지고 있고, 유리 바닥은 결과 단계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개천용 복원에 머물지 않고, 배울 것을 누구나 제대로 배우게 하기
우리나라 교육을 곧바로 불평등하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교육 기회가 비교적 보편적으로 보장되고 있으며, 교육 결과의 측면에서 도 개천용의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한 사회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대학 진학 기회의 배분을 두고 입시 제도 변경을 시도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선발 규칙은 그 이전 단계에서 공교육이 가정 배경 요인을 효과적으로 상쇄하고 학생이 배워야 할 내용을 제대로 배우게 하는 데 기여하기 어렵다. 개천용이 늘어나게 하려면, 교육과정 전반에서 작동하는 격차를 정확히 진단하고 공교육이 그 완충 기능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욕심을 낼 수 있다면, 교사가 충분한 시간과 지원으로 학생 개개인의 학습을 책임질 수 있도록 교실 여건과 학습 지원 체계에 대한 국가 투자를 강화하고,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에 사회·경제적 배경 정보를 연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교육과정 전반에서 작동하는 불평등의 구조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대책을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