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비상계엄과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이 맞물리며 고조됐던 국내 정치·경제의 불확실성은 2025년 6월 대통령 취임과 이후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며 점차 안정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대미 협상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미국과 중국 간 첨예한 갈등은 일단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새로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우리의 외교 노선은 갈등하는 양측 모두에게 한국을 ‘필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외교 환경의 변화는 통상과 산업전략에서도 분명한 함의가 있다. 지난 1년간 트럼프 2기 경제정책은 중국의 산업·기술 추격을 억제하고 미국 제조업을 부활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드러냈다. 트럼프 정부의 현실적인 해법은 미국 내 제조 기반을 단기간에 새로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쟁력을 갖춘 한국 제조업을 미국으로 유인해 산업 생태계를 재편하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전기차 세액공제와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기존 방향대로 유지했다면, 중국산 전기차와 태양광·풍력발전 설비는 미국 시장에서 지배력을 더욱 빠르게 확대했을 것이다. 동시에 미국이 중국의 기술 추격을 적극적으로 견제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반도체 장비와 핵심 기술을 세계시장에서 흡수하며 막대한 투자 성과를 단기간에 거뒀을 가능성이 크다.
필자가 “트럼프가 벌어준 3년 안에 한국 제조업이 경쟁력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 정부의 대중 견제는 한국 제조업이 숨을 고를 시간을 벌어주는 동시에, 미국 시장을 발판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은 지난 70년간 자동차·조선·방위산업·원자력발전은 물론, 반도체·휴대폰·가전 등 전방위 첨단 제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해 온 보기 드문 국가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는 금융·관광·문화 산업이 국익의 핵심이 되었고, 제조업 강국으로 남아 있는 독일과 일본 역시 자동차 산업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독일 자동차 기업은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전략의 일관성을 잃으며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잃고 있다. 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독일 차와 일본 차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는 혁신을 거듭하며 글로벌 주도권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는 향후 5년간 9개 지역 거점 국립대에 4조원을 투입해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대학은 결국 학생과 교수로 구성된 공동체다. 현실적으로 국내 대학 구성원의 이동 경로는 지방 사립대에서 지방 국립대, 다시 수도권 대학과 이른바 ‘인서울’ 대학으로 향한다. 그동안 지방대 육성, 산학 협력 등 명목으로 막대한 재원이 투입됐지만, 교수와 학생의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가속화됐다. 지방에 조성된 이공계 특수대학은 사관학교에 준하는 지원을 받았지만, 지역 산업 성장과 인구 유입이라는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비효율적인 국가 정책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실제탈원전 정책은 원자력 학과의 폐과를 초래했고, 연구개발(R&D) 예산의 졸속 감축은 이공계 이탈과 의대 쏠림을 더 심화시켰다.
사립대와 국립대는 교육의 양 날개와 같다. 어느 한쪽만을 강화하는 접근은 교육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국립과 사립을 가를 것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대학을 선별해 지원하는 것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