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헝클어진 헤어와 캣츠 아이로 프렌치 시크의 원형이 된 브리지트 바르도. /사진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스틸 3 와이드 헤어 밴드와 스트라이프의 아이코닉 룩. /사진 영화 '경멸' 스틸 4 깅엄 체크 스커트를 입은 브리지트 바르도. /사진 영화 '컴 댄스 위드 미!' 스틸
1·2 헝클어진 헤어와 캣츠 아이로 프렌치 시크의 원형이 된 브리지트 바르도. /사진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스틸
3 와이드 헤어 밴드와 스트라이프의 아이코닉 룩. /사진 영화 '경멸' 스틸
4 깅엄 체크 스커트를 입은 브리지트 바르도. /사진 영화 '컴 댄스 위드 미!' 스틸

유난히도 많은 세기의 별이 졌던 2025년의 끝. 또 한 명의 전설적인 아이콘이 떠났다. 2025년 12월 28일(이하 현지시각),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영화와 스타일의 레전드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 그녀의 부고가 전해진 순간 세계의 공기는 묘하게 갈라지며, 애도와 침묵, 찬사와 망설임이 혼재했다.

바르도는 20세기의 관습을 무너뜨린 자유의 상징이었고, 여성의 몸과 욕망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게 한 아름다움의 뮤즈였다. 그러나 그 찬란한 신화의 이면에 여러 논란과 독선 그리고 이민자 혐오 발언으로 다섯 차례나 유죄판결을 받았던 말년의 그림자가 있다.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으니 야만스럽다” 고 발언해 국내에서도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렇게 문제적 인물로서, 바르도라는 이름을 결코 아름답게만 추억하기 어렵다.

그러나 말년에 남긴 도덕적·사회적 논란과는 별개로, 바르도가 패션계에 미친 영향은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영역이다. 1950~ 60년대, 그녀는 스크린을 넘어 전 세계 여성이 흠모한 내추럴 ‘프렌치 시크(French Chic)’ 의 원형이다.

김의향 -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김의향 -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바르도는 1934년 9월 28일, 파리 15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기억하는 ‘야생의 소녀’와는 거리가 멀다. 엔지니어인 아버지 루이 바르도와 부유한 가정 출신의 어머니 안느-마리 뮈셀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나,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의 숨 막히는 규율 속에서 성장했다. 엄격한 가정교육은 역설적으로 그녀 내면의 반항심을 키웠고, 이후 기존 패션과 뷰티의 관습을 헝클어뜨리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원동력이 됐다.

1956년, 로제 바딤 감독의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And God Created Woman)’가 공개됐을 때,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뉴룩(New Look)의 구조적인 실루엣에 갇혀 있던 여성들은 화면 속 바르도를 보며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스커트 앞단추를 풀어 헤치고 자락을 걷어 올린 채 맨발로 춤을 추는 장면은 그대로 전설적인 패션 신이 됐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바르도를 ‘슬픔도, 조소도 섞이지 않은 완벽한 무심함’이라 표현했다.

바르도 스타일은 바로 그 ‘무심함’에서 시작해 정점을 이룬다. 그녀는 치밀하게 계산된 할리우드 글래머와 정반대 스타일로 세계를 매료시켰다. 완벽하게 세팅된 컬이 아닌, 방금 침대에서 일어난 듯 부스스하게 부풀린 ‘슈크루트(Choucroute)’ 헤어 스타일은 그녀의 자유분방한 영혼을 대변하는 시그니처가 됐다. 베드 헤어(Bed hair)라고도 불리는 헝클어진 슈크루트 헤어 룩과 함께 짙은 블랙 아이라이너로 눈꼬리를 길게 강조한 캣아이(cat-eye) 메이크업, 와이드 헤어 밴드 등이 케이트 모스, 알렉사 청 같은 수많은 스타일 아이콘에 의해 끝없이 복제돼 왔다.

(왼쪽) 소녀와 요부를 오가는 프렌치 걸 이미지를 대표한다. /사진 영화 '비바 마리아' 스틸 (오른쪽) 생 트로페
리조트 룩의 상징이 됐다. /사진 영화 '위험한 사랑' 스틸
(왼쪽) 소녀와 요부를 오가는 프렌치 걸 이미지를 대표한다. /사진 영화 '비바 마리아' 스틸
(오른쪽) 생 트로페 리조트 룩의 상징이 됐다. /사진 영화 '위험한 사랑' 스틸

바르도가 패션사에 남긴 아이코닉 룩은 소박한 아이템에서 비롯했다. 1959년 두 번째 남편인 자크 샤리에와 결혼식에서 바르도는 쿠튀르 드레스 대신 핑크색 깅엄 체크(Gingham Check·작은 정사각형 격자무늬) 셔츠 드레스를 선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깅엄 체크는 식탁보나 커튼에 주로 쓰이는 원단이었는데, 바르도를 통해 전 세계 여성이 가장 입고 싶어 하는 패턴으로 단번에 신분 상승을 이뤘다.

그녀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바르도 네크라인(Bardot Neckline)’도 아이코닉하다. 어깨선과 쇄골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이 오프숄더(off-shoulder) 스타일은 노출이 건강한 관능미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바르도는 꽉 조이는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몸의 곡선을 자연스럽게 타고 흐르는 니트 톱과 카프리 팬츠를 즐겨 입었다. 여기에 발레리나 출신답게 굽 높은 힐 대신 레페토(Repet-to)의 ‘산드리옹(Cendrillon)’ 플랫 슈즈를 매치했다. 패션사에 기록된 ‘BB(브리지트 바르도의 애칭) 룩’의 탄생이다.

무엇보다 바르도는 생 트로페(Saint-Tro-pez) 리조트 룩의 상징이다.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던 생 트로페는 바르도가 정착하면서 전 세계 제트세트(Jet-set·전용 제트기나 비행기를 타고 세계 여행을 즐기는 부유층)족이 몰려드는 럭셔리 휴양지의 대명사가 됐다. 바르도의 별장 이름이자, 그 별장과 맞닿아 있는 해변인 라 마드라그(La Madrague)해변에 누워 태닝을 즐기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패션 화보였다. 또한 헐렁한 튜닉, 마이크로 미니 비키니, 커다란 라피아 햇 그리고 바르도의 시그니처인 맨발까지, 바르도의 리조트 룩은 패션계가 정의하는 생 트로페 스타일의 기원이 됐다. 동시에 장뤼크 고다르의 영화 ‘경멸(Le Mépris)’에서 캡리 섬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누워 있던 그녀의 나신도 예술적 오브제로 남았다. 바르도는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벗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고 자유로웠다.

그러나 1973년, 돌연 은퇴 선언 후 동물 보호 운동가로 변신한 바르도의 제2의 삶은 찬사보다는 비난으로 점철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팬이 사랑했던 BB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슈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유대인과 무슬림이 육류를 도축하는 방식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인종차별적 혐오를 선동한 혐의로 다섯 차례나 유죄판결을 받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녀의 이러한 행보는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프랑스 시청과 공공기관 앞에는 프랑스 혁명과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가상의 여성 인물인 마리안느(Marianne) 흉상이 놓여 있다. 1969년 최초로 유명 여배우인 바르도를 모델로 흉상이 제작됐는데, 프랑스 시청은 그녀의 반이민 견해에 대한 항의 표시로 바르도를 본뜬 마리안느 흉상을 철거해 버렸다.

바르도의 과격한 행보는 그녀 자신이 느꼈던 깊은 고립감과 피해의식에서 나왔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그녀는 젊은 시절 파파라치와 대중의 시선에 끊임없이 쫓겼던 자기 삶을 비인간적이었다고 회상하곤 했다. 바르도의 동물 보호 운동은 인간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자신을 동물과 동일시하며 감정적이고 과격하게 변질됐는지도 모르겠다.

말년의 행보는 유감으로 남지만, 영화와 패션 세계에서만큼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20세기의 피사체 중 하나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맨발로 춤추던 눈부신 금발의 소녀. 너무도 강렬하게 빛났기에 그 뒤에 드리운 어둠 또한 더 짙어진 비극적 아이콘. BB는 극과 극의 명암을 드리운, 시대의 초상이었다.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