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프트가 대만 이란현에 2024년 준공한 173 규모 BESS. /사진 사프트
사프트가 대만 이란현에 2024년 준공한 173 규모 BESS. /사진 사프트

프랑스 석유 기업 토털에너지스의 완전 자회사 사프트(Saft)가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프트는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항공·우주, 국방, 철도, 전기차 등 산업용 배터리 전반에 기술력이 있는 회사다. 1913년 설립됐으며, 2016년 토털에너지스가 9억5000만유로(약 1조6144억원)를 들여 인수했다. 

사프트는 2020년 스텔란티스, 메르세데스-벤츠와 함께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ACC(오토모티브셀컴퍼니)를 합작 설립했으며, ACC가 생산한 배터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의전용 전기차(DS오토모빌 DS8)에 탑재됐다.

사프트는 2025년 일본에서 1GWh(기가와트시) 규모 대형 BESS 프로젝트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수주하는 등 BESS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마이클 리퍼트(Michael Lip-pert) 사프트 에너지 혁신 이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BESS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라면서 “특히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BESS의 큰 성장 잠재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구축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데이터센터용 백업 전력으로 디젤발전기 대신 BESS가 주목받으리라는 예상이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MS)는 탈(脫)탄소화를 위해 2023년 스웨덴 데이터센터의 기존 디젤 비상 발전기를 사프트 BESS로 교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마이클 리퍼트 - 사프트 에너지 혁신 이사, 프랑스 네오마 비즈니스스쿨 경영학, 현 유럽에너지저장협회(EASE) 부회장 /사진 사프트
마이클 리퍼트 - 사프트 에너지 혁신 이사, 프랑스 네오마 비즈니스스쿨 경영학, 현 유럽에너지저장협회(EASE) 부회장 /사진 사프트

사프트가 BESS를 주목하는 이유는.

“BESS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다. 풍력·태양광발전 등 재생에너지는 불규칙한 일사량과 풍속 등으로 인해 변동성이 크므로 BESS가 전력망 안정화에 필수적이다. 재생에너지가 전력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고, 향후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BESS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다른 자산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설치가 쉽고 빠르며 부지 규모에 맞춰 완벽하게 확장할 수 있다.

사업 측면에서도 수익 창출 기회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변동성으로 인해 하루 전 시장(거래일 하루 전 전력 시장의 낙찰과 가격 결정이 완료되는 시장)과 실시간 시장(실시간에 인접한 시점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에서 전력 가격 차이가 확대되며 수익성이 높아졌다. 또 계통 운영자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전력 계통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계통 운영 보조 서비스(Ancillary Ser-vice)를 도입하며 보상 체계를 개선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 전력 도매가격과 보조 서비스 가격이 급등했던 시기에 BESS는 매우 뛰어난 수익을 거뒀고, 전 세계적으로 전력 유연성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전반적인 시장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다만 사프트는 BESS 운영 사업자가 아니다. 실제 수익성은 운영 사업자가 기회를 얼마나 포착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프트의 인텐시움 플렉스 BESS. /사진 사프트
사프트의 인텐시움 플렉스 BESS. /사진 사프트

사프트의 일본 BESS 프로젝트는 어떤 사업인가.

“싱가포르 구린 에너지(Gurin Energy)가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구린 에너지는 2025년 6월 사프트를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했다. 2026년 착공, 2027년 완공 계획이다. 사프트는 ‘인텐시움 플렉스(Intensium Flex)’라는 이름의 BESS 컨테이너 219기를 포함해 전력 변환 장치, 전력 관리 설비, AI 관제 및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공급한다. 설치, 시운전, 유지·보수 역시 담당한다. 총 1GWh급 BESS를 단 2㏊(헥타르·1㏊=1만㎡) 부지에 구축한다.

사이버 보안이 확보된 상태에서 높은 성능과 가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어 및 데이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프트는 이를 위해 셀을 비롯한 모든 전자 부품을 직접 개발했으며, 유럽에서 조달한다. 사프트의 엔드 투 엔드(end-to-end·전 과정) 데이터 관리 플랫폼은 전적으로 사프트 통제하에 있으며, 가장 엄격한 사이버 보안 검증을 완료했다.”

인텐시움 플렉스의 특징은.

“인텐시움 플렉스는 사프트의 7세대 BESS다. 2025년 5월 출시했다. 컨테이너 하나당 저장 용량이 5.1MWh 다. 2012년 출시한 1세대 인텐시움(500kWh ) 대비 에너지밀도를 10배 이상 끌어올렸다. 2시간, 4시간 또는 그 이상의 방전 지속 시간이 요구되는 급 프로젝트에 활용되는 제품이다. 사프트는 더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에 적합한 3MWh 저장 용량의 아이-시프트(I-Shift), 1~2시간 방전에 적합한 2.3MWh 저장 용량의 인텐시움 맥스(Inten-sium Max) 등 다양한 BESS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BYD는 2025년 단일 저장 용량이 14.5㎿h인 하오한(浩瀚) BESS를 출시했다. 경쟁사와비교할 때 사프트의 장점은 무엇인가.

“에너지밀도는 중요한 요소지만, 운송·설치·시운전과 연관성 등 시스템 차원에서 살펴봐야 한다.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납품하며, 설치한 뒤 실제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사프트의 큰 강점이다. 

사프트는 배터리 셀에 대한 철저한 시험, 자체 시스템 엔지니어링, 실물 규모의 화재 시험, 공급망에 대한 엄격한 관리 등 A부터 Z까지 전 과정을 직접 통제한다. 사프트 시스템은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긴 수명 동안 기대된 성능을 일관되게 제공한다. 이것이 구린 에너지, 대만 폭스웰 파워(Foxwell Pow-er), 뉴질랜드 제네시스 에너지 등 기업이 사프트를 선택한 이유다.”

BESS 시장에서 사프트의 비전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확보한 입지를 넘어, 중동·인도·아프리카 등 새로운 지역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BESS의 큰 성장 잠재력을 기대하고 있다. 사프트는 스웨덴 MS 데이터센터에 BESS 기반 마이크로그리드(소규모 독립 전력망)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선도 사례가 있다. 마이크로그리드 분야에서 수십 년간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빠르게 성장하는 이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목표다.” 

Plus Point

배터리 3사, 전기차 둔화에 BESS 총력
'1조원 규모' 정부 사업에 LG엔솔·삼성SDI·SK온 수주전

1조원 규모의 국내 BESS 사업에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수주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2차 B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은 540㎿(3.24GWh) BESS를 2027년 말까지 전국에 도입하는 사업이다. 전력거래소는 1월 12일 입찰 제안서 및 사업계획서 접수를 마감했고, 2월 중 우선협상대상사업자를 발표한다. 앞서 동일한 규모(540㎿)로 2025년 진행된 1차 입찰에선 삼성SDI가 물량 76%를 수주했고, 24%는 LG에너지솔루션이 차지했다. 이번 입찰엔 배터리 3사가 모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기차 캐즘(chasm·혁신 제품이 대중화하기 전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는 것)으로 인한 실적 악화로 배터리 3사의 BESS 입찰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그동안 양호한 실적을 보였던 LG에너지솔루션마저 2025년 4분기 122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고, 삼성SDI와 SK온은 2025년 1~3분기 누적 기준 적자를 기록했다. 이석희·이용욱 SK온 사장은 신년사에서 “BESS를 중심으로 수주 성과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고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