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500년 전 화장터가 발굴된 말라위의 호라-1 유적지 위치(지도의 검은 테두리)와 실제 사진. 2 아프리카 말라위 호라-1 유적지에서 나온 회색 부싯돌(위)과 석기 제작 과정에서 나온 파편. /사진 예일대·뉴욕대
1 9500년 전 화장터가 발굴된 말라위의 호라-1 유적지 위치(지도의 검은 테두리)와 실제 사진. 2 아프리카 말라위 호라-1 유적지에서 나온 회색 부싯돌(위)과 석기 제작 과정에서 나온 파편. /사진 예일대·뉴욕대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9500년 전 화장(火葬)터가 발견됐다. 이전까지 아프리카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화장 사례는 3500년 전으로, 목축을 하던 신석기시대 사람이었다. 이번 화장터는 성인 시신을 불태운 곳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기록도 세웠다.

제시카 톰슨 미국 예일대 인류학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아프리카 남동부 말라위 한 산기슭에서 수렵채집인이 성인 여성을 장작더미 위에서 화장한 흔적을 찾았다”고 1월 2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아프리카 수렵채집 사회에서 화장 풍습이 확인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머리 없이 불태운 유해 흔적 발견

말라위 북부 카시투강 인근에는 110m 높이의 바위로 된 호라산이 있다. 1950년대부터 발굴 작업이 이뤄진 이곳에서 수렵채집인 매장지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앞선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에 사람이 처음 정착한 건 약 2만1000년 전이며, 1만6000년부터 8000년 전 사이 매장지로 사용됐다. 매장된 모든 유해는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예일대 연구진은 2018년과 2019년 발굴을 통해 호라산의 바위 언덕 유적지 호라-1 (HOR-1)에서 퀸 사이즈 침대 크기에 달하는 장작더미 흔적을 찾아냈다.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를 측정한 결과, 이 유적의 연대는 약 9540~9454년 전으로 나타났다. 동위원소란 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이 다른 원소를 뜻한다. 탄소의 경우 질량이 12와 14인 동위원소가 있는데, 이 중 탄소-14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질소로 붕괴한다. 유기물 속에 남은 탄소-14의 비율을 분석하면 정밀한 연대 추정이 가능하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성인 여성을 화장하는 모습을 상상한 그림. /사진 애리조나주립대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성인 여성을 화장하는 모습을 상상한 그림. /사진 애리조나주립대

예일대 연구진은 화장터에서 재와 함께 탄화한 유골 조각 170여 점도 발견했다. 대부분 사지(팔다리) 뼈로 확인된 이 유골의 주인공은 18~60세, 신장 145~155㎝의 성인 여성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열에 의한 골격 변형 상태를 분석해 시신이 사망 후 수일 이내에 화장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뼈에 남은 절단 흔적은 화장 전 시신의 살점을 미리 제거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걸 의미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유적지 현장에서 살점을 발라내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석기와 부싯돌도 함께 나왔다.

논문 공동 저자인 미국 클리블랜드 자연사 박물관의 엘리자베스 소츄크 박사는 “화장터에서 치아나 두개골 조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불에 타도 잘 보존되는 부위여서 화장 전 머리가 제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이 지역에서 과거 시신 일부를 보존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점에서 두개골을 보존해 조상을 기억하고 숭배하는 장례 풍습이 있었을 것으로 해석했다.

화장 유골, 호주 4만 년 전이 가장 오래돼

인류는 구석기시대부터 화장 풍습이 있었다. 현재까지 보고된 가장 오래된 화장의 증거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州) 멍고호수 유적에서 발견된 것이다. 1968년 이곳에서 구석기 후기인 약 4만 년 전 화장된 성인 여성의 유해가 발굴됐는데, 이 유골은 ‘멍고 여인(Mungo Lady)’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멍고 여인의 유골은 우연히 불에 탄 것이 아니라, 고도의 장례 의식을 거친 결과로 분석됐다. 시신을 불에 태운 뒤 남은 뼈를 잘게 부수고, 다시 한 번 태워 구덩이에 묻은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죽음 이후 상태에 대해 복잡한 종교적·문화적 관념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미국 알래스카주 자사나(Xaasaa Na')에서 발굴된 1만5000년 전 화장터 유적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화장터 유적으로 기록돼 있다.

9500년 전 아프리카 말라위 수렵채집 사회의 화장 의식. 뼈에 남은 절단 흔적은 시신 일부가 살을 발라낸 상태였음을 보여준다(C).탄화한 영지버섯과 흰개미 굴은 죽은 나무가 연료로 사용됐음을 보여준다(I). 두개골과 치아 유해가 발견되지 않은 점은 화장 전에 제거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J). 장작더미 위치에 여러 차례 불이 점화됐다는 사실은 해당 장소를 기억하기 위한 행동으로 추정된다(K). /사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9500년 전 아프리카 말라위 수렵채집 사회의 화장 의식. 뼈에 남은 절단 흔적은 시신 일부가 살을 발라낸 상태였음을 보여준다(C).탄화한 영지버섯과 흰개미 굴은 죽은 나무가 연료로 사용됐음을 보여준다(I). 두개골과 치아 유해가 발견되지 않은 점은 화장 전에 제거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J). 장작더미 위치에 여러 차례 불이 점화됐다는 사실은 해당 장소를 기억하기 위한 행동으로 추정된다(K). /사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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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주거지 유적에서 불에 탄 3세 아이 유골이 화덕 안에서 2010년 발견됐다. 예일대 연구진이 발견한 화장터는 이보다는 더 늦었지만, 성인 화장이라는 점에서는 가장 오래됐다. 장례가 주로 성인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호라산 화장터는 사실상 가장 오래된 정식 화장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멍고 여인이 발굴된 이후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화장된 유골이 발견됐다. 이스라엘 베이사문(Beisamun) 유적지에서는 9000년 전 화장된 청년 유골이 나왔는데, 이는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 사례로 남았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시기 유적에서 화장용 항아리 같은 화장 흔적이 확인됐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화장 흔적이 발견되는데, 불교가 들어온 뒤인 5세기쯤부터는 화장 이후 뼈를 추려 용기에 담아 매장하는 화장 묘 풍습이 나타난다.

장작 쌓고 태우려면 큰 노동력 필요

예일대 연구진은 이번 말라위 호라-1 유적을 통해 당시 수렵채집 사회가 대규모 협동 노동을 수행할 만큼 고도로 조직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논문 제1 저자인 제시카 세레조-로만 미국 오클라호마대 인류학 교수는 “화장은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아주 드문 관행”이라며 “시신을 재로 만들 장작더미를 쌓고 화력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노동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일대 연구진은 장작더미를 쌓기 위해 최소 30㎏의 나무를 모았다고 추산했다. 재 퇴적물과 뼛조각 분석에 따르면, 당시 섭씨 500도 이상 고온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나무를 땠던 것으로 추정된다. 커다란 장작더미를 쌓고, 불을 피우며, 계속 장작을 넣으려면 많은 사람이 같이 일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엘 아이리시 영국 리버풀 존무어스대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그렇게 이른 시기에 (해당 지역에) 일시적으로 머물렀던 수렵채집인이 화장터를 만들었다는 점이 놀랍다” 며 “당시 수렵채집인도 고도로 발달된 신앙 체계와 높은 수준으로 사회적 복잡성을 띠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호라-1 유적지에서 화장 이후 약 500년간 여러 차례 대규모로 불을 피운 흔적이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추가로 화장한 다른 시신이 없었기에, 일종의 추모 행사를 했다고 해석됐다. 톰슨 교수는 “(화장 뒤에) 불을 피운 흔적은 시신을 화장한 장작더미 위치를 기억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했음을 시사한다”며 “이 여성은 당시 사회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