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매립지를 태양광발전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모두 덮어도 반도체 클러스터를 가동하기엔 전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새만금 이전’ 주장에 대해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태양광발전으로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을 충당하려면 새만금 매립지 면적의 약 세 배에 달하는 부지가 필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시장은 1월 21일 인터뷰에서 “국내 태양광발전 설비 평균 이용률은 15.4%에 불과하다”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 15GW(기가와트)를 태양광발전으로 충당하려면 설비 규모가 97GW 이상 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설비 규모 100GW 급 태양광발전소를 구축하려면 최소 1000㎢의 부지가 필요하다. 새만금 매립지가 291㎢인데, 이 정도 설비를 지으려면 매립지의 2.9~3.0배 면적이 필요한 셈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하자는 목소리가 여권에서 커지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력·용수가 풍부한 지역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도록 기업을 설득하거나 유도해야 한다고 한 발언이 기폭제가 됐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정부가 용인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을 은근히 압박해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인지,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면서 “대통령의 발언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혼선을 정리한 게 아니라, 지역이나 사람에 따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저마다 입맛에 맞는 주장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를 흔드는 시도가 계속될 것 같다. 그럴수록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과 국가 경제는 멍이 들 것”이라며 “정부가 이미만든 계획을 실행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매우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용인시에 따르면, 현재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팹(공장)이 들어설 부지에는 45m 깊이로 말뚝이 박혔다. 2기 팹 예정 부지도 마찬가지다. 이 시장은 “반도체 생산 공정은 작은 진동에도 영향받는다”라며 “향후 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진동을 고려해 미리 파일을 박아둔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용수 문제를 언급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삼성전자)과 일반산단(SK하이닉스)은 2023년 7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정부에 의해 지정된 곳이다.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시행령 제31조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대해 국가가 가스·용수·전기, 집단 에너지 공급 시설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령대로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성실하게 실행하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다. 남의 일처럼 말해선 안 된다. 송전선을 둘러싼 지역 갈등이 있다면 정부가 반도체 산업 발전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나서서 조정하고 해결해야지, 반대가 있으니 어렵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면 대통령 스스로 정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유도·설득' 발언을 어떻게 보나
“정부가 용인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을 은근히 압박해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인지,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회견 발언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혼선을 정리한 게 아니라, 지역이나 사람에 따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저마다 입맛에 맞는 주장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환영 논평에 ‘용인 반도체 산단을 가져가겠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대통령이 분명하게 보여줬다’는 내용이 나온다. 앞으로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를 흔드는 시도가 계속될 것 같다. 그럴수록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과 국가 경제는 멍이 들 수밖에 없다.”
현재 용인 현장의 공사 진척 상황은 어떤가.
“SK하이닉스는 팹 부지에 45m 깊이로 콘크리트 말뚝을 박았다. 15m짜리 파일 세 개를 이어 붙여 박은 것이다. 팹 하나는 절반가량 공사가 진행됐고, 아직 시작하지 않은 부지에도 말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시공사 측에 물으니 ‘반도체는 초미세 공정이라 미세한 진동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지반 고정 작업이 필수’라고 하더라.”
삼성전자 부지는 단계가 조금 다르지 않은가.
“지금 토지 보상이 한창이다. 소위 ‘세 번째 대못’을 박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 첫 번째 대못은 2024년 말 정부 승인을 받은 것이고, 두 번째는 2025년 12월 삼성전자가 LH와 산업 시설 용지 분양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 뒤를 잇는 토지 보상이 이미 20% 정도 진행됐다. 사업이 이미 본궤도에 올랐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전력 확보'를 이유로 클러스터 이 전설이 계속 나온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이 무책임하게 선동하고 있다. 일각에선 새만금을 대안으로 꼽는데, 새만금을 태양광발전 패널로 다 덮어도 반도체 클러스터를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들어서면 필요한 전력 총량이 약 15GW에 달한다. 원자력발전소 15기를 동시에 가동하는 양이다.”
태양광발전으로는 전력원을 대체할 수 없다는 뜻인가.
“국내 태양광발전 평균 전력 이용률은 15.4%(2025년 3분기) 수준이다. 15GW를 공급하려면 설비 용량이 97GW는 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새만금 매립지 면적의 약 세 배에 달하는 부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밤에는 발전이 안 되지 않나. 들쭉날쭉한 발전량을 잡으려면 막대한 비용의 ESS가 필수인데 그 비용과 공간은 누가 책임질 건가.”
전력 외에 다른 기술적 제약도 있나.
“새만금은 매립지라 지반이 매우 약하다. 용인은 45m를 파면 암반이 나오지만, 새만금은 그만큼 파도 암반이 나올지 미지수다. 미세 진동에 민감한 반도체 라인을 세울 수 있는 땅이 아니다. 용수 문제도 심각하다. 인근 주암댐은 생활용수도 빠듯하다. 만약 충주댐에서 관로를 끌어올 경우 그 거리만 200㎞ 안팎에 달해 현실성이 없다.”
만약 정치적 논리에 의해 반도체 단지 이전 논의가 본격적으로 계속된다면.
“대한민국 반도체는 망하는 거다. 예비타당성 조사부터 모든 행정 절차를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 허송세월하는 사이 중국에 추월당하고 만다. 반도체 산업을 박살 내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 경제 전체를 망치는 일이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이전 정부는 일곱 차례에 걸쳐 관계 부처 합동으로 ‘국가산단 범정부 추진지원단’ 회의를 열어 국가산단 조성 상황을 점검하고 지방의 의견을 들었는데, 현 정부는 나라 경제를 살리자고 말하면서도 국가산단 15개를 챙기는 추진단 회의를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중앙정부가 말 따로, 행동 따로의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최대한 빨리 중앙정부 주도로 15개 국가산단 조성과 지원을 위한 범정부 점검 회의를 열어야 한다. 새만금 인근의 완주(수소), 익산(식품) 산단도 아직 정부 승인을 못 받고 있다. 기존에 계획된 지역 산단부터 빨리 승인하고 조성하는 것이 순서다.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국가 백년대계를 정치적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
여당이 쏘아 올린 '이전론'… 李 대통령도 "방향 전환 가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론’은 최근 전북지사 출마를 선언한 안호영 의원이 선거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김성환 기후에너지부 장관이 나서 “옮겨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거들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지역 균형 발전을 강조하며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의 반도체 벨트부터 인공지능(AI) 실증 도시와 재생에너지 집적 단지까지, 첨단산업 발전이 지역 발전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설계할 것”이라고 말한 게 ‘반도체 클러스터 새만금 이전’을 찬성한다는 취지로 해석되기도 했다. 클러스터 이전 논란은 이재명 대통령의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을 계기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지산지소(地産地消), 전기가 생산되는 지역에서 쓰이게 해야 한다. 이게 대원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전기를 지방에서 생산해 대대적으로 송전탑을 만들어 수도권으로 다 몰아주는 건 안 된다”라며 “정부 정책으로 결정한 걸 내가 뒤집을 수는 없지만, 지방 균형 발전과 모두의 발전을 위해 국민이 힘을 모아주면 거대한 방향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