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HR(인적자원) 관리는 물론, 전체 비즈니스 운영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일하는 방식과 장소를 바꿨고, 국내 노동시장 구조를 경력직 중심으로 완전 재편했다. 효율성을 높였다. 혹자는 힘든 시간이었으나, 가야 할 방향이었는데, 수동적인 우리를 변화할 수밖에 없게끔 바이러스가 코너로 몰았다고 평했다.
새해가 밝았다. 2026년은 파괴적 혁신의 복판에 우리를 세우고 있다. 연초 비즈니스 현장을 뛰고 있는 여러 지인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HR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고객에게 다양한 프로젝트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입장에서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지난 몇 년간 ‘디지털 전환(DX)’이라고 부르며 빠르게 경험하고, 준비한 모든 것이 거대한 파도가 돼 전통적 HR 관리의 해안선을 완전히 바꿔 놓은 느낌이다. 과거 HR 로드맵이 인재를 ‘선발’해 ‘육성’하고, ‘보상’하면서잘 관리하는 선형적 구조였다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인공지능(AI)에 의해 찢겨 재구성된 비선형적 미로에 가깝다. 어쩌면 우리는 익숙했던 모든 HR 관리 공식을 폐기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다.
새해 먼저 주목해야 할 키워드
이미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우선적으로 주목할 몇 가지 HR 트렌드를 짚어보고자 한다. 각 키워드는 전통적 HR의 상식을 흔들고 있다.
1┃AI 증강(augmented) HR 관리, 도구에서 동료로 변화
첫 번째 변화는 ‘AI 증강’의 일상화다. 2026년 현재 글로벌 선도 기업의 HR 관리는 더 이상 사람이 데이터를 입력하지 않는다.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스스로 조직의 건강도를 체크하고, 인력 공백을 예측하며, 실시간으로 성과를 코칭한다. AI는 이제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HR 담당자의 의사 결정을 돕는 ‘디지털 동료’다. 예를 들어글로벌 모 기업 AI는 직원의 기술 데이터와 프로젝트 참여 이력을 분석해 누가 언제 퇴사할 가능성이 큰지 90%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예측을 통해 매니저에게 퇴사 방지를 위한 면담 시점을 전문가처럼 제안한다. 데이터 뒤에 숨어 행정 처리에 매몰됐던 HR 관리는 갑자기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대신 AI가 내놓은 분석에 ‘인간적 가치’와 ‘윤리적 책임’을 입히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어쩌면 HR 관리에 있어 유일한 가치 부여의 영역일지 모른다.
2┃채용의 종말과 생산성의 역설
두 번째 주목할 현상은 ‘채용의 종말’과 ‘1인당 생산성’ 극대화다. 이미 대규모 공채나 정기 채용은 물 건너간 지 꽤 됐다. 신입(주니어)을 뽑지 않은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 기업은 필요 스킬을 필요 순간에 수급하는 ‘스킬 기반 공급망’을 갈망한다. 글로벌 AI 연구 기업인 앤트로픽(Anthropic)과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AI와 결합한 지식 노동자의 업무 품질과 속도는 비활용 그룹과 비교해 비약적으로 높다. 특히 고난도 추론이 필요한 영역에서 숙련된 노동자의 생산성이 이전에 비해 사실상 ‘두 배’ 수준으로 폭증할 수 있음이 데이터로 증명됐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AI의 도움을 받는 한 명의 개인이 과거 수십 명 규모의 팀이 하던 일을 해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이제 리더의 핵심 과제는 ‘몇 명을 뽑을 것인가’가 아니라, ‘남은 인재의 잠재력을 AI로 어떻게 열 배 증폭할 것인가’로 전환하는 게 시간문제일 것이다.
3┃상시적 구조조정, 성장을 위한 슬림화
상시적 구조조정 일상화는 한국 기업에 가장 뼈아픈 일일 것이다. 필자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간 미국과 영국의 톱 클래스 다국적기업 인사 책임자로 상시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때의 스토리와 작금의 그것은 결이 매우 다르다. ‘성장 중에도 단행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은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성장 방정식이 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사상 최대 실적에도 1만5000명을 감원했다. 특히 본사 캠퍼스의 상징이던 ‘직원 도서관’을 폐쇄하고, 디지털·AI 기반 학습 경험장으로 전환한다고 했다. 구글도 마찬가지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2024년부터 지속적으로 “AI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조직 계층의 파괴와 속도”를 강조하고 있다. 더욱 촘촘하게 연결된 오늘의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이런 방정식은 국내 대기업 CEO의 정책에 영향을 주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는 2026년 신년사에서 ‘기술 초격차’를 넘은 ‘인적 초격차’를 강조했다. 대규모 강제 해고가 어려운 국내 여건상 ‘희망퇴직 상시화’와 ‘내부 인력 소프트웨어 전환’이라는 카드가 불가피해 보인다. SK·LG그룹도 이전과는 톤이 다른 운영 효율화와 재교육, 조직 재편의 형태를 띤 한국형 슬림화의 징후가 나타난다. 과거 구조조정이 마른 수건 짜기였다면, 2026년 이후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구조조정은 가히 ‘엔진 교체’라고 할 수 있다.
키워드 너머 저편에 있는 것들
전대미문의 HR 관리 트렌드 변화와 함께 기업 인사부는 계속 전략적이고,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을 것이다. 누군가는 고도의 전략가이자, 인적자원 디자이너로 거듭날 것이다. 구성원 역량은 중요한데, 무엇을 어떻게 개발시켜야 할지가 숙제로 떠오를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교육훈련(L & D) 역시 사형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가중된 부담으로 등장한 구성원의 몰입도, 문화적 충돌, 저성과자 관리 이슈는 여전히 집요하다. 각 구성원도 방심은 금물이다. 스스로 개인 차원의 생존 기술 혁명(reskilling revolution)을 이뤄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연공서열에서 역량으로, 다시 역량에서 직무 중심으로 HR 관리의 정답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2026년, 이제 직무라는 틀마저 무너지고 스킬의 시대가 들이닥쳤다. AI가 찢어 놓은 전통적 HR 관리의 로드맵은 더 이상 복구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찢긴 틈새 사이로 새로운 기회의 빛은 분명히 들어온다. 2026년의 리더와 HR 전문가에게 필요한 건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기술이라는 날카로운 도구를 손에 쥐고, 인간 본연의 창의성과 진정성을 조직이라는 캔버스에 어떻게 다시 그려낼 것인지 고민하는 ‘설계자’의 자세다. 누구는 채용의 종말을 운운하고, 조직 슬림이 가속화하고 있는 이 격변의 시대야말로 무엇이 가장 뛰어난 HR 관리 경영인지를 증명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