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하 파월)은 1월 11일(이하 현지시각) 연준 홈페이지에 올린 영상 성명을 통해 “연준은 1월 9일 미 법무부로부터 대배심 소환장을 받았고, 지난해 6월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한 내 증언과 관련해 형사 기소 가능성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는 연준 본부 청사 리모델링 사업의 예산 초과 및 관리 책임 문제와 관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파월은 2022년부터 진행한 청사 리모델링 비용(25억달러·약 3조6860억원)이 최초(19억달러)보다 늘어난 이유를 묻는 질문에 “1930년대 건립 이후 첫 리모델링 공사로, 유해 물질 제거에 많은 비용이 들었다”고 답했다. 이에 백악관은 “연준이 기존 계획을 준수했는지 심각하게 의문이 제기된다”며 공사 총책임자인 파월에게 책임을 물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은 직접 연준 청사 공사장을 방문해 공사비 문제와 금리 인하를 놓고 파월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파월은 이번 수사가 “전례 없는 조치”라며 “형사 기소 위협의 진짜 이유는 연준이 대통령 선호가 아닌 공공 이익에 근거해 금리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금리를 1%까지 낮춰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연방 정부 차입 비용을 대폭 절감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연준은 물가 안정을 이유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금리를 세 차례만 인하했다. 현재 미 기준금리는 3.50∼3.75% 수준이다. 이에 트럼프는 그간 파월에 대해 공개 비판을 거듭하며 해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다만 영상 발표 이후 트럼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연준에 소환장이 발부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수사 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월가와 미 정치권 등에서는 파월에 대한 기소가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① 앨런 그린스펀과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등 전 연준 의장, 로버트 루빈 전 재무 장관 등 경제계 원로 13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파월에 대한 수사는검찰 수사권을 휘둘러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전례 없는 시도”라며 “법치주의가 경제 성공의 토대이자 가장 강력한 힘인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필자 역시 미국에서 중앙은행 독립 시대가 막을 내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연준이 당파적 정치에 휘말릴 경우 신뢰도는 훼손되고, 인플레이션 통제는 더욱 어려워지며, 이를 되돌리는 데 훨씬 큰 비용이 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7월 24일 워싱턴 D.C에 있는 연준 청사 리모델링 현장을 방문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7월 24일 워싱턴 D.C에 있는 연준 청사 리모델링 현장을 방문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AFP연합

트럼프가 파월에 대한 수사를 거론하며 연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다시 한번 끌어올리면서, 미국에서 중앙은행 독립의 시대가 막을 내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위협은 물가 안정에 대한 위험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등장해 금융시장을 극도로 불안하게 하고 있다.

파월 개인과 연준을 겨냥한 트럼프의 압박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서서히 진행되는 재앙이다. 점점 데워지는 물속에 놓인 우화 속 개구리처럼, 처음에는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물이 끓는 위험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뛰쳐나오기에는 너무 늦은 것처럼, 인플레이션의 고통 역시 물가 상승이 경제 전반에 깊이 고착되기 전까지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은 보통 아주 작은 불균형, 즉 너무 많은 돈이 너무 적은 상품을 사려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초기 가격 상승은 별다른 저항 없이 초과 수요를 흡수하지만, 소비자와 투자자, 수출 그리고 공공 부문을 모두 포함한 총수요는 수입을 고려하더라도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경제 역량을 초과하게 된다.

앤 크루거 -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석좌교수, 현 스탠퍼드대 국제개발센터 선임 연구위원, 전 국제통화 기금(IMF) 및 세계은행 부총재
앤 크루거 -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석좌교수, 현 스탠퍼드대 국제개발센터 선임 연구위원, 전 국제통화 기금(IMF) 및 세계은행 부총재
물가가 상승하면 사람은 당연히 자기 구매력을 지키려고 한다. 노동자는 더 높은 명목임금을 요구하고, 기업은 대출이나 자산 매각을 통해 추가 자금을 조달하며, 정부는 복지 혜택을 조정하거나 재정 적자를 늘려 실질 지출 수준을 유지한다. 높은 지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신용이 팽창하고 통화 공급이 증가한다. 이런 조치는 단기적으로는 숨통을 틔워주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 압력과 경제적 불확실성을 키운다. 소비자가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저축은 줄어들고, 물가 상승은 더 빨라지며, 자본은 장기적 생산성 향상보다는 단기 수익을 약속하는 분야로 이동한다.

인플레이션은 특정 집단에 훨씬 더 큰 타격을 준다. 고정된 명목소득으로 생활하는 연금 수급자 등이 특히 큰 타격을 입고, 공공 부문 임금은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피해를 보는 집단이 늘어날수록 정치인은 가격 통제나 임대료 규제 같은 단기적이고 왜곡적인 조치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대중의 반발이 거세지며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지출 증가에 제동을 거는 것은 언제나 인기가 없다. 그래서 정치인은 종종 다음 선거가 끝날 때까지 문제 해결을 미루거나, 최소한 인플레이션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이 될 때까지 버티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조치가 늦어질수록 피해는 커지고, 물가 상승을 억제하라는 정치적 압박은 더 거세진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사례가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후 독일에서 발생한 ②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은 재앙적인 수준에 도달해 저축을 무너뜨리고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며, 정치체제를 불안정하게 해 결국 나치즘(Nazism)을 향한 길을 냈다. 이 경험은 독일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고, 오늘날까지도 독일이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경계하는 이유가 됐다. 이러한 긴장은 현대 통화정책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결정을 미루는 것이 유리해 보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는 오랫동안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해 왔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정책 결정자를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보호하고, 금리 및 기타 수단을 통해 보통 낮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정의되는 물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중앙은행의 유일한 목표가 인플레이션 억제다. 반면 미국처럼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 책무(dual mandate)’를 부여받은 국가도 있다. 이를 위해 중앙은행 직원은 정기적으로 유입되는 데이터를 분석해 정책 결정자에게 경제 상황에 대한 명확한 판단 근거를 제공한다.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연준 역시 오랫동안 독립성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파월이 5월 임기 만료를 앞둔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방향과 미국 경제의 기초 체력에 대한 불확실성은 이례적으로 높은 상태다. 인공지능(AI)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가 활발한 반면, 인플레이션은 연준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고, 노동시장은 경제가 완전고용 상태에 근접해 있음에도 냉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려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적절한 대응책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연준은 2025년 12월에 금리를 내렸으나, 앞으로 추가 금리 인하 횟수가 줄어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파월을 향한 트럼프의 최근 압박 수위가 높아진 계기가 됐을 수 있다.

이 논쟁은 연준의 독립성이 왜 중요한지를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독립성의 핵심 목적은 통화정책이 단기적인 정치적 압력보다 경제 분석에 기반한 전문적 판단을 반영하도록 보장하는 데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연준에 금리 인하를 반복적으로 압박하고 차기 연준 의장은 “금리를 훨씬 낮춰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이 원칙을 위태롭게 흔들고 있다. 그 파장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트럼프가 능력과 건전한 판단력이 아니라 개인적인 충성심을 기준으로 연준 의장을 임명한다면, 미국의 통화정책은 필요 이상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향후 경기 침체에 대응할 연준의 능력을 약화하며, 글로벌 경제 안정성을 훼손할 것이다.

차기 연준 의장 선출은 트럼프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개인적 변덕이 아니라, 의회가 설정한 목표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연준이 당파적 정치에 휘말릴 경우 신뢰도는 훼손되고, 인플레이션 통제는 더욱 어려워지며, 이를 되돌리는 데 훨씬 큰 비용이 들게 될 것이다. 

Tip

앨런 그린스펀과 벤 버냉키는 각각 장기 호황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를 이끈 연준 의장이다. 그린스펀은 1987~2006년 약 18년 동안 연준 의장을 맡았다. 연준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의장이다. 그는 비교적 시장 친화적이고 점진적인 금리 조정으로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라 불릴 만큼 금융시장 안정에 무게를 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그린스펀의 후임인 버냉키는 2006~2014년 의장으로서 2008년 금융 위기 때 양적 완화 등 비전통적 정책을 동원해 시스템 붕괴를 막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헬리콥터 머니’ 발언으로 ‘헬리콥터 벤(Helicopter Ben)’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두 사람 모두 정권 성향을 초월해 연준 의장직을 수행했고,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기반한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로 평가된다.

인플레이션이 악화되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상태일 때 사용하는 경제학 용어. 보통 초인플레이션은 ‘한 달 사이에 전 달 대비 물가가 50% 이상 상승’한 것을 말한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고도 한다.

앤 크루거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석좌교수

정리=이선목 기자,김주현 인턴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