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글로벌 채권시장에 연쇄적인 ‘발작 쇼크’가 일어났다. 일본 국채 40년물 금리는 25 (1 =0.01%포인트) 급등해 4.2%로 치솟았다. 사상 처음으로 4%를 돌파한 것이다. 지표물인 10년물 금리도 12 오른 2.38%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충격은 곧바로 전 세계로 확산했다. 한국에서는 국채 5년물과 10년물이 각각 7.9 와 8.8 상승해 3.465%와 3.653%까지 올랐고, 미국 뉴욕 채권시장에서도 국채 10년물, 30년물 금리가 3~5 씩 오른 4.295%와 4.921%로 뛰었다. 유럽에서도 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국 국채 금리가 일제히 상승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의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 요구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며 금리 상승세가 제한적으로 되돌려졌지만, 채권시장은 여전히 기조적 약세에 빠져있다. 1월 30일 기준 일본 국채 40년물 금리는 3.9% 안팎에 있고, 한국과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도 기준금리 대비 50~110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 장기 국채 금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오르면서 미국·영국·독일 등의 금리 상승을 촉발하고 있다”면서 “각국 장기금리 상승이 글로벌 경제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1│日, 감세로 요동친 장기금리
이번 장기금리 발작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지표나 중앙은행의 정책이 아니라, 정치권발(發) 재정 리스크에서 비롯됐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총선 감세 공약이 촉매로 작용했다는 측면에서다.
1월 19일 중의원 해산 기자회견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식료품에 적용되는 8% 소비세를 2년간 면제하겠다고 공약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연간 약 5조엔(약 46조4000억원)에 달하는 식품 소비세 면제는 최근 회계연도 세입 예산의 약 6%에 해당하는 세수 공백을 초래한다.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내세운 다카이치 총리가 총선용 감세 카드를 꺼내자, 일본의 재정 악화가 관리 가능한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했다. 포퓰리즘 정치 공약이 재정 규율을 압도하는 상황에 시장은 장기 금리 급등으로 대응했다. 사흘 뒤인 1월 22일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경제 재정 운영 기본 방침’은 이러한 우려를 확인시켰다. 2026 회계연도에 8000억엔(약 7조4400억원) 적자가 예상되면서, 2025~ 2026 회계연도 기초 재정 수지 흑자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일본 정부는 흑자 목표 달성 시기를 2027년으로 넘겼다. 국가 채무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본의 재정 관리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2│韓, 재정 악화 우려에 선제 대응
정부의 적극 재정 의지가 장기금리를 끌어올린 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할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1월 20일 이재명 대통령 발언이 시장에 전달되면서 국채 금리가 크게 상승했다. 시장 분위기를 의식한 이 대통령이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몇조원, 몇십조원씩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추경은 안 한다”고 하면서 금리 상승분이 일부 되돌려졌지만, 시장의 경계감은 여전히 팽배하다. 역대 최대 폭인 54조6000억원(8.1%) 증가한 728조원 규모의 2026년도 예산안으로 국가 채무가 1413조8000억원까지 불어날 전망인 상태에서, 대통령의 추경 언급만으로 시장이 발작했다. 이재명 정부의 2025~2029년 국가재정운영계획에 따르면, 정부 재정 지출은 연평균 5.5% 늘어나 2029년 834조7000억원에 달하고, 매년 54조~69조원의 재정 적자가 쌓이면서 국가 채무는 2029년 1789조원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3│美, 포퓰리즘이 자산 매도 촉발
일본과 한국에서 장기금리를 자극한 것이 정치 논리에 따른 재정 기조였다면,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은 트럼프의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포퓰리즘을 축으로 재정·통상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 훼손이 얽힌 결과다.
우선, ‘셀 아메리카(Sell America·미국 자산 매도)’ 기류가 강해졌다. 최근 덴마크 최대 연기금인 아카데미커펜션은 보유 중인 미국 국채 1억달러(약 1440억원)를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요구 이후 미 국채 비중을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트럼프 감세안에 따른 세수 기반 약화로 국가 채무 증가 등 재정 악화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외국 투자자의 국채 매도는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해 9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75 인하했음에도,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4.2% 안팎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외환보유액이 6000억달러를 넘는 대만 중앙은행이 금리 변동성에 따른 외화 자산 손실을 줄이기 위해 미 국채 보유 비중을 낮추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등, 악순환이 심해지고 있다. 미국 국채의 안전 자산 지위가 흔들리는 신호로 해석된다.
4│장기금리 상승은 거버넌스 불안의 대가
전문가는 최근 글로벌 장기금리 상승이 정치 포퓰리즘이 재정 규율을 훼손한 데 따른 반작용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시장 금리가 각국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정책 신뢰를 평가하는 잣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외 경제 여건에 따른 불확실성이 큰 한국 경제에서 장기금리 상승은 성장 둔화에 그치지 않고 양극화를 심화할 수 있다. 재정 악화에 따른 장기금리 상승이 리스크 프리미엄 확대를 통해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약세)으로 이어질 경우, 수출과 내수 간 불균형은 더 확대될 수 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처럼 대외 경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환경에서는 정치적 배경에서 추진되는 추경이나 감세가 국채 장기금리 상승과 환율 불안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며 “재정 정책의 단기 효과보다 시장 신뢰 훼손이라는 비용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달러 약세 유도한 트럼프, 원·달러 환율 1420원대로 하락
1월 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22.5원에 오후 3시 30분 기준 주간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23.7원 하락했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달러당 1470원을 오르내렸던 원화 환율이 급격히 하락한 것은 엔화 강세를 유도하기 위한 미·일 외환시장 공조 관측이 퍼지는 가운데,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트럼프 발언으로 달러 가치가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1월 27일(이하 현지시각)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장 마감 무렵 95.76으로 전장 대비 1.32% 하락했다. 달러인덱스가 95까지 떨어진 것은 지난 2022년 2월 이후 약 4년 만이다. 트럼프는 이날 아이오와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달러가 크게 하락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달러는 제자리(fair level)를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발언 이후 달러 약세가 지속할 거라는 기대감에 달러인덱스는 95.55까지 급락했다. 이 발언 영향으로 달러·엔 환율은 1월 28일 2.1엔(1.35%) 내린 152엔까지 후퇴했다.
달러는 연초 이후 확산되는 ‘셀 아메리카’ 추세 속에서 약세 압력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금 가격이 온스당 5000달러를 넘어선 것도 달러의 신뢰 저하를 반영한 결과로 해석한다. 트럼프가 달러 약세를 지지한 것은, 달러당 160엔 선을 위협하던 엔화 약세를 완화하지 않을 경우 일본 외환 당국의 미 국채 매도가 가속화돼 미국 장기금리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