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현황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 뉴스1
1월 2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현황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 뉴스1

최근 원·달러 환율을 둘러싼 국내 공론장은 경제 변수에 대한 논쟁이라기보다 하나의 신념 체계에 가깝다. 환율이 상승하면 ‘정부가 무엇을 해도 소용없다’는 평가가 반복되고, 환율이 일시적으로 하락하면 ‘달러를 더 사야 할 기회’라는 해석이 빠르게 확산한다. 환율의 방향성 자체가 정책과 무관하게 이미 결정돼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제 인플루언서의 메시지는 정책 당국의 설명력을 압도하며,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환율 상승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처럼 ‘피할 수 없는 장기 추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기대의 고착은 몇 가지 서사적 요소가 결합한 결과다. 첫째, 한국 경제에 대한 구조적 비관론이다.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격차, 이를 감내하기 어렵다는 기준금리 차이 인식,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이 불러올 원화 가치 하락, 기업 규제 강화와 상속세 부담으로 인한 고액 자산가 및 기업가의 해외 이탈 가능성 등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인다.

둘째, 해외 생산 기지 이전과 대규모 대미 투자에 대한 과도한 우려다. 실제 수치와 장기 전략을 냉정하게 평가하기보다 ‘한국 제조업 공동화’라는 감정적 프레임이 환율 상승의 근거로 소비된다. 셋째,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미국 자산시장으로의 글로벌 자본 쏠림이다. 기술 패권과 금융 수익률이 결합한 이 서사는 달러 강세를 구조적·불가역적 현상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 세 가지 서사는 개별적으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결합하는 순간 강력한 신념 체계를 형성한다. ‘환율은 결국 오른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는 설명이 바로 ‘원화 유동성이 과도하게 늘어 환율이 상승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직관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데이터와 통화정책 작동 메커니즘을 함께 살펴보면 상당 부분이 오해에 가깝다.

첫째, ‘통화량이 과도하게 증가했다’는 진단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M2 지표 기준 통화량 증가율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대응기였던 2020~ 2021년 중 전년 동기 대비 11~12% 수준까지 높아졌으나, 이후 빠르게 둔화해 2022~2023년에는 2% 내외까지 하락했다. 2024년 이후 증가율이 다소 반등하였지만, 최근에도 4~5%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어, 역사적 평균과 비교할 때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선영 -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박선영 -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더 중요한 점은 최근 국면에서 한국과 미국의 통화량 증가율이 유사한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팬데믹 중 M2 증가율이 25~27% 급등했다가 양적 긴축 국면에서는 –4%에서 –5%까지 하락하는 등 큰 변동성을 보였으며, 최근에 이르러서야 한국과 비슷한 4~5%대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유동성만 과잉이어서 원화가 약해졌다’는 단선적 인과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둘째, 중앙은행의 공개 시장 운용에 대한 이해 부족도 유동성 과잉 인식을 키운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은 만기가 짧아 일정 기간 후 자동으로 반대 거래가 이루어지는 구조로, 누적 거래액을 단순 합산해 유동성 공급 규모를 평가하는 것은 실제 시장에 남아 있는 유동성과 괴리가 크다. 통화안정증권 발행과 RP 매각을 포함한 전체 공개 시장 운용을 보면, 지급준비금은 필요 수준에서 관리돼 왔다.

셋째, 통화량 증가가 환율 상승을 초래했다는 주장 자체도 통계적 검증을 통과하기 어렵다. 구매력 평가설은 장기적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일 뿐이며, 장기간 데이터를 이용해 한미 통화량 증가율 차이와 원·달러 환율 변동의 관계를 살펴보면 두 변수 간 상관관계는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문다. 이는 인플레이션 기대가 안정된 환경에서는 통화량 변화가 환율로 직선적으로 전이되는 경로가 약화돼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도 ‘유동성 과잉→환율 상승’이라는 단순화된 설명은 시장에서 빠르게 확산한다. 이러한 설명은 환율 변동의 복합적 원인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환율 상승 기대를 정당화하는 서사로 기능한다. 그 결과 환율이 하락해도 정책 효과로 해석되기보다 개인투자자의 달러 매수 수요를 자극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환율이 오를 경우 수입 물가 상승과 비용 압박이라는 실물 경제 부담이 있음에도, 일부 투자자는 환차익 기대를 통해 오히려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환율이 거시 경제의 안정 변수에서 개인의 투자 자산 가격으로 인식이 전환되는 순간, 정책 당국의 대응은 구조적으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환율이 오를 경우 실제로 누가 피해를 보는가, 그리고 그 피해는 감당 가능한가. 대외 건전성이 견조하고 외환 유동성에 구조적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면, 환율 상승의 부정적 효과는 생각보다 제한적일 수 있다. 수입 물가 상승은 유류세 인하나 관세 조정 같은 정책 수단을 통해 일정 부분 완충할 수 있으며, 원자재를 수입해 내수에 공급하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서는 재정·금융 지원을 통해 충격을 흡수할 여지도 있다. 환율 상승이 곧바로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이어진다는 서사는 과도한 단순화에 가깝다.

그럼에도 현재 공론장에서는 이러한 분석적 구분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다. 환율이 오르면 곧바로 위기 담론이 확산하고, 정부는 이를 진화하기 위해 미시적 대응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즉 정부가 환율을 어떤 변수로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정책 목표하에서 대응하고 있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환율이 특정 수준을 넘어서면 왜 문제가 되는지, 정책 당국이 염두에 두고 있는 관리 가능한 환율 구간은 어디인지 그리고 그 구간에서 물가·성장·금융 안정 측면에서 기대하는 정책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더 분명해질 필요가 있다. 환율 수준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더라도 환율 변동이 거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경우에 대응 강도를 조정하는지에 대한 정책 함수는 더 투명하게 공유될 필요가 있다.

정책 신뢰 측면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것은 ‘환율을 잡으려 애쓰지만 실제로는 잡히지 않는 모습’이다. 결국 환율 정책은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내러티브의 문제다. 환율을 억지로 끌어내리겠다는 제스처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수준의 환율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무엇이 진짜 위험이고 무엇은 관리 가능한 위험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