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쥐 심장 근육세포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사진 미국 국립보건원 2 조직에 침투하는 암세포(붉은색)를 공격하는 면역 세포(파란색). /사진 셔터스톡
1 쥐 심장 근육세포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사진 미국 국립보건원
2 조직에 침투하는 암세포(붉은색)를 공격하는 면역 세포(파란색). /사진 셔터스톡

전쟁이 발발하면 방공망 같은 군사 시설과 함께 발전소가 가장 먼저 공격을 받는다. 인체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마찬가지다. 암세포가 인체 방어군인 면역 세포의 에너지 기관인 미토콘드리아를 가장 먼저 탈취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병리학과 데릭 오콴-두오두 교수 연구진은 “암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빼앗아 적의 공격을 무력화한 뒤, 면역 세포가 집결한 림프절(림프샘)로 전이한다”고 1월 12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 발표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질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소기관이다. 세포핵과 달리 별도의 DNA도 갖고 있다. 과학계는 미토콘드리아가 원래 독립 세균이었다가 동물 세포에 들어와 공생하면서 에너지 기관으로 진화했다고 본다. 식물 세포의 에너지 기관인 엽록체도 마찬가지다.

발전소 훔쳐 인체 면역반응 회피

연구진은 생쥐 실험을 통해 미토콘드리아가 암세포의 비밀 무기로 작용하고 있음을밝혀냈다. 암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탈취해 인체 방어군인 면역 세포의 공격력을 떨어뜨리고, 동시에 정찰력과 감시망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적군을 무장 해제하는 셈이다. 

실험에서 생쥐에게 이식된 암세포는 다양한 면역 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를 탈취했다. 면역 세포는 암세포의 성장과 확산을 막는 인체의 방어군이다. 이러한 미토콘드리아 이동은 암세포가 림프절에 이식됐든 피부에 이식됐든 장소에 관계없이 동일한 비율로 발생했다.

에너지원인 미토콘드리아를 상실한 세포 독성(공격력) T세포나 자연살해(NK) 세포 등 면역 세포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세포 독성이 급격히 저하됐다. 정찰력도 약해졌다. 암세포는 MHC1(주조직 적합성 복합체 1형) 단백질도 역이용했다. 원래 MHC1은 면역 세포에 암세포의 특징을 알려줘 공격을 유도하는 정찰병 역할을 하는데, 미토콘드리아를 빼앗은 암세포는 MHC1 발현을 조절함으로써 면역 세포 공격을 교묘히 피했다.

암세포(붉은색·파란색)는 신경세포(녹색)에 가는 관을 연결해 미토콘드리아를 훔치고 다른 곳으로 전이된다. /사진 사우스 앨라배마대
암세포(붉은색·파란색)는 신경세포(녹색)에 가는 관을 연결해 미토콘드리아를 훔치고 다른 곳으로 전이된다. /사진 사우스 앨라배마대

동시에 면역 세포를 피하는 암세포의 위장력도 강화됐다. 인체는 침입자를 막다가 정상 세포까지 다치지 않도록 면역 관문이라는 단백질로 표식을 한다. 미토콘드리아를 탈취한 암세포는 면역 관문인 PD-L1(면역 관문 단백질)을 내세워 자신을 정상 세포처럼 위장했다.

미토콘드리아를 흡수한 암세포는 제1형 인터페론 경로와 연관된 유전자를 발현하기도 했다. 인터페론은 면역 세포가 분비하는 신호 단백질이다. 암세포는 이 인터페론을 분비해 면역 세포의 감시를 피했다. 방어군의 통신을 도청하고 역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연구진은 인터페론 유전자를 억제하면 암세포의 림프절 이동 능력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앞선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암세포가 미토콘드리아를 탈취해 에너지를 더 얻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미토콘드리아 탈취 목적이 에너지 확보보다 인체 방어군을 무력화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암세포가 빼앗은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 운반 분자인 ATP(아데노신삼인산)를 생산하지 못해도 암세포의 면역 회피 능력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는 미토콘드리아 에너지 생산이 암세포의 림프절 공략에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미국 유타대 생화학과 미나 로-존슨 교수는 “기존 연구에서는 탈취된 미토콘드리아가 암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에 국한된다는 가정이 대부분이었다”라며 “이번 연구로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 탈취 목적이 다른 곳에 있다는 점이 밝혀져 매우 흥미롭다” 라고 했다. 로-존슨 교수도 2023년 국제 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전이된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 대사 기능을 상실해도 암세포의 성장을 여전히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유방암의 뇌 전이도 미토콘드리아가 도와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될 때, 미토콘드리아부터 빼앗는다는 사실은 앞선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사우스 앨라배마대와 텍사스대 의대 공동 연구진은 2025년 ‘네이처’에 신경세포의 미토콘드리아가 암의 뇌 전이를 돕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이 연구를 ‘2025년 최고의 연구 성과’ 중 하나로 선정했다.

연구진은 생쥐의 유방암 세포와 신경세포를 채취해 각각 빨간색·녹색 형광 물질로 구별했다. 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암세포가 세포막을 실처럼 뻗어 신경세포 안으로 침투하고, 미토콘드리아를 하나씩 끌어당기는 모습이 관찰됐다. 암세포가 신경세포에 빨대를꽂은 것이다. 

연구진은 생쥐 유방 조직에 암세포를 넣어 몸속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지 실험했다. 애초 유방의 암세포는 2%만 신경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갖고 있었지만, 뇌까지 퍼진 암세포는 그 비율이 14%에 달했다. 미토콘드리아를 훔친 암세포일수록 생존력과 전이 능력이 훨씬 높다는 의미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암세포에서도 나타났다. 유방암 환자 여덟 명의 조직을 분석했더니 다른 장기로 전이된 암세포는 유방에 있는 암세포보다 미토콘드리아가 17% 더 많았다. 전립선암 조직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신경에 가까운 암세포일수록 미토콘드리아가 더 많이 쌓여 있었다.

연구진은 이런 ‘에너지 절도’는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될 때 혹독한 환경을 버티도록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암세포를 과산화수소에 노출시켜 전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화학적 스트레스 환경을 모사한 실험 결과, 미토콘드리아를 훔친 암세포는 생존율이 훨씬 높았다.

암전이 추적하고, 차단하는 새 길 열려

과학자들은 앞으로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 탈취 기전을 공략해 암전이를 막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우스앨라배마대 연구진은 앞으로 미토콘드리아 절도를 차단해 암전이를 막는 신약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이먼 그렐레 사우스앨라배마대 교수는 “암이 치명적인 이유는 전이 때문”이라며 “전이를 돕는 공범을 알아냈고, 이는 곧 전이를 막을 수 있는 신약의 새로운 표적을 뜻한다”고 말했다.

신시아 라인하트-킹 미국 라이스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여러 연구실에서 암세포가 미토콘드리아를 훔쳐 면역반응을 회피하는 데 대응할 수 있도록 면역 세포를 강화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암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유래를 가리고, 활동을 추적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암세포의 전이 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오콴-두오두 교수는 “암세포가 빼앗은 미토콘드리아가 암의 생존과 증식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