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쿠팡의 고객 정보 유출 사태를 기점으로, 맞물리듯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쿠팡 때리기에 나서더니 급기야 한미 외교 현안으로까지 비화할 조짐을 보인다. 개인정보 관리 소홀은 분명 뼈아픈 실책이며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사고 이후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한국 사회가 가진 ‘기업관(觀)’과 ‘제도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쿠팡을 ‘악마화’하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물론, 규제 관련 전 부처가 총동원돼 쿠팡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국회 청문회 장면이 상징적이었다. 과거 90도 폴더 인사와 읍소로 일관하던 한국 토종 기업 경영진과 달리, 쿠팡의 미국인 최고경영자(CEO)가 당당하게, 때로는 방어적으로 답변에 임하는 모습은 한국 정서에서는 ‘오만함’ 으로 비쳤고, 정치권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이것은 태도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충돌’에 가깝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한국적 정서의 충돌,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기업가는 쿠팡 같은 구조를 한번쯤 꿈꿨을 것이다.
쿠팡 사태는 한국 기업이 처한 ‘지배구조의 딜레마’와 ‘경영 리스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첫째, ‘법적 경영자’와 ‘실질적 지배주주’ 사이의 책임과 권한 문제다. 정치권과 대중은 창업자이자, 쿠팡 이사회 의장인 김범석 의장에게 사과와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 우리 기업이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설 때마다 실질적 오너라면 나와야 한다는 요구가 이번에도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단순히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사회나 경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해 소수 주주에 대한 신인 의무(충실 의무)를 위반했을 때 한해 책임을 묻는다. 김 의장이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사회적 압박은 이어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경제적 갈등이 주로 민사소송과 손해배상으로 해결되는 반면, 한국은 오너가 경영 일선에 나서는 순간 경영상 판단 실패나 실무자의 안전사고 하나로 인해 감옥에 갈 수 있는 구조다. 우리나라에서 경영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은 22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의장이 미국 상장사 이사회 의장직만 유지하며 국회의 인격 모독적인 청문회를 피할 수 있는 현실을 많은 한국 경영자는 부러워했을 것이다.
둘째, 미국 기업이라는 ‘방패’의 효용성이다. 쿠팡은 뉴욕 증시에 상장된 미국 기업이다.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미국은 자국 기업에 대한 해외 정부의 과도한 규제나 간섭을 무역 장벽으로 간주해 왔다. 이번 사태에서도 이러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두 나라 정부가 기업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한국에서 사업하되, 본사는 미국에 둔다’는 쿠팡 모델을 동경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셋째, ‘반기업 정서’의 악순환이다. 문제가 터지면 시스템을 고치는 대신 기업을 악으로 규정하고, 경영진을 국회로 불러 질타하는 정서적 대응은 기업으로 하여금 더욱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고 지배구조를 기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쿠팡을 향한 비판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감정적 매도가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책임 경영 체계를 어떻게 한국 법제 안에 녹여낼 것인가’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쿠팡 사태는 우리에게 묻는다. ‘기업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쫓아낼 것인가’ 우리가 쿠팡을 악마화하는 사이, 혁신적인 기업가는 조용히 미국 델라웨어로 법인을 옮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직면한 진짜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