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 사진 로이터연합
케빈 워시 / 사진 로이터연합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이하 워시)가 지명됐다. 워시는 인플레이션을 매우 경계하며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매파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최근 발언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과 보조를 맞춰 금리 인하에 동조하는 듯해 향후 기준금리 예측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반응도 혼란스러웠다. 워시가 의장에 지명된 직후 매파적 성향이 부각되며 금·은 가격이 급락하고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였으나, ‘워시 쇼크’ 이후 시장은 하루 만에 반등하며 회복세로 돌아섰다. 워시는 2019년 10월부터 쿠팡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워시는 매파인가 비둘기파인가

워시는 1970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대에서 공공정책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 로스쿨과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을 졸업했다. 1995년 모건스탠리에 입사해 2002년까지 인수합병(M&A) 업무 등을 담당했다.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모건스탠리 M&A 부문 부사장까지 올랐다. 2002년엔 월가를 떠나 워싱턴으로 향했다. 조지 W. 부시 정부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수석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6년 35세의 나이로 최연소 연준 이사가 됐다. 2011년까지 연준에 근무했는데, 그의 재직 기간은 공화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부터 민주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걸쳐 있다. 연준 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엔 억만장자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개인 자산을 굴리는 펀드인 듀케인 패밀리오피스에 합류해 파트너로 일해 왔다. 스탠퍼드 후버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워시는 과거 발언에서 매파 성향을 보였다. 2010년 연준 이사 재임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2차 양적 완화(QE2)에 반대하며 “연준의 대차대조표 확대는 공짜 선택이 아니다”며 “2008년부터 이어진 대규모 양적 완화는 한두 분기 동안 국내총생산(GDP)을 증가시켰을지 모르지만, 경제를 더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궤도에 올려놓는 데는 거의 도움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적 완화는 비상수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으며, 자신이 2011년에 연준 이사직에서 임기(2018년)보다 훨씬 일찍 사임한 이유가 6000억달러(약 870조5400억원) 규모 2차 양적 완화에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준 역할이 비대해지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하며 인플레이션 억제를 중시해 왔다.

반면 최근에는 금리 인하에 우호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워시는 2025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인공지능(AI)은 생산성을 높이고 미국 경쟁력을 강화해 상당한 디플레이션 효과를 가져올 것” 이라면서 “연준은 향후 몇 년 동안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 동반한 물가 상승)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대해진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축소할 경우 기준금리를 더 낮게 유지할 여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기준금리 인하를 주저해 온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조에 반대하면서, 금리보다 통화량 조정이 우선이라는 의견을 펼쳤다. 트럼프는 워시를 지명하면서 “나는 워시를 오랫동안 봐 왔고, 워시는 금리를 낮추고 싶어 할 것”이라고 밝혔다.

WSJ도 ‘워시는 연준 의장으로 적합한 인물’이라는 사설을 냈다. WSJ은 “워시는 현재의 연준처럼 ‘경제성장이 강해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따라서 금리는 필연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믿지 않는다”면서 “매파가 금융시장에서 더 큰 신뢰를 얻어 금리를 낮게 유지하기 더 쉽다는 점이 통화정책의 역설”이라고 분석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가 원하는 정책 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에 워시가 의장에 지명됐겠지만, 최근까지 유력하게 거론됐던 케빈 해싯 NEC 위원장, 릭 리더 블랙록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보다 워시의 정책 성향은 덜 완화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기준금리 인하를 주장하며 과거보다 완화적인 색채가 강해졌으나, 연준 정책 프레임에 대한 오랜 불만이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워시, 2019년부터 '쿠팡 사외이사'

워시는 2019년 10월부터는 쿠팡 지분 100%를 소유한 모회사이자,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쿠팡Inc 이사회 사외이사로 활동해 왔다. 2025년 6월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 따르면, 워시는 쿠팡 주식 47만582주를 보유하고 있다. 1주당 20달러로 환산하면 약 941만달러(약 136억5297만원)어치다. 그는 이사회에 합류하며 “쿠팡은 혁신의 최전방에 서 있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다만 연준 의장에 취임하려면 연방 이해충돌법 등에 따 라 민간 기업 이사직을 사임해야 하며, 주식도 매도해야 한다.

워시는 미국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 집안의 사위이기도 하다. 워시는 2002년 에스티로더 인터내셔널 전 회장이자 세계유대인회의(WJC) 회장인 로널드 로더의 딸 제인 로더와 결혼했다. 로더는 트럼프의 오랜 후원자이자 육십년지기로, 1960년대 비슷한 시기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함께 다녔다. 로더는 트럼프에게 ‘그린란드를 사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인물로도 알려졌다. 트럼프 1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2018년 말 트럼프가 집무실로 불러 ‘로더가 그린란드를 사라고 조언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밝힌 바 있다.

워시 쇼크…은 30% ↓ , 비트코인 7만불 붕괴

워시가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이후 세계 금융시장은 출렁였다. 크게 올랐던 금·은·주식 가격이 하락하고 비트코인이 8만달러(약 1억1607만원) 아래로 내려가는 등 암호화폐로까지 충격이 번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워시가 지명된 1월 30일(이하 현지시각) 금은 현물 가격은 각각 9.5%, 27.7% 폭락했고, 비트코인은 9개월여 만에 8만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승승장구하던 코스피도 2월 2일 5.3% 급락하며 5000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시장은 곧 안정을 되찾고 반등했다. 코스피는 2월 4일 5371.10에 거래를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또다시 갈아치웠다. 금 현물 가격은 2월 4일 오전 3시 31분 기준 전장보다 5.2% 오른 온스당 4906.82달러로 반등했다. JP모건은 “단기적인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상승 모멘텀은 유지될 것” 이라고 했다. 금·은·주식과 달리 비트코인은 2월 5일 7만달러 아래로 떨어지며, 15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한편, 파월이 의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연준을 떠나지 않고 이사직에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 월가와 워싱턴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파월의 의장으로서 임기는 5월까지이지만, 연준 이사로서 임기는 2028년까지다. 통상 연준 의장은 임기가 끝나면 이사직에서도 물러나는 게 관례지만, 관례를 깨고 친트럼프 성향 이사들과 맞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파월이 이사로 남을 경우 1948년 매리너 에클스 이후 78년 만이다. 

Plus Point

워시, 17번째 연준 의장
의장 평균 재임 기간은 81개월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의장 선임 절차가 완료되면 워시는 17번째 연준 의장이 된다. 연준 의장 임기는 4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연임 횟수 제한은 없다. 1914년 취임한 초대 의장 찰스 섬너 햄린부터 15대 재닛 옐런까지 총 15명의 연준 의장은 평균 81개월(6년 9개월) 임기를 지냈다. 16대 의장 파월은 올해 5월 임기가 끝나면 8년 임기를 완료한다. 최장수 의장은 9대 윌리엄 마틴이다. 1951년부터 1970년까지 19년 동안 연준 의장을 지냈다.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까지 5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고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