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은 지난해 12월 발표된 새로운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문서에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전면에 내세운 급진적 전환으로 드러난다. 에반스 리비어(Evans J.R. Revere)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이른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으로 명명된 트럼프 대통령(이하 트럼프)의 행보에 대해 “미국이 전통적인 자유세계 리더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며, ‘동맹·민주주의·인권’이라는 우선순위가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주한 미국 대사대리 출신으로, 미국 내 대표적 동아시아통(通)으로 꼽힌다.
그린란드·베네수엘라 사안은 ‘서반구 우선’ 전략의 실행을 보여주고 있고, 세력권 개념의 부활과 동맹 체제 약화는 한미 동맹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안보 환경에 중대한 파장을 낳을 수 있다는 게 그의 경고다. 에반스 전 차관보는 “한국은 미국을 관리하는 동시에 일본·호주·유럽 등과 강력한 안보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기와 비교해 트럼프 2기의 외교정책의 특징을 꼽으면.
“트럼프 2기의 외교정책과 국방, 국가 안보 전략 및 우선순위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새로운 미국 NSS 문서에 명확하고도 충격적으로 드러나 있다. 새 NSS는 내가 평생 목격한 것 중 가장 급진적인 미국 외교·안보 전략의 전환이다. 이 문서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MAGA 이념을 외교·안보 전반에 강요하고 있으며,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리더 역할을 더 이상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해 온 미국 중심 동맹 전략은 사라졌고,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이라는 개념도 빠졌다. 미국이 80년간 구축해 온 국제 질서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 대신 그런 질서의 존재 자체와 동맹국의 ‘배신’을 미국 경제와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1기와 달리, 급진적 정책 변화를 견제할 ‘가드레일’이 2기 정부에는 더 이상 없다는 점이다.”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외교 전략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중국은 지정학적 위협이 아닌 경제·무역 문제로 다뤄지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우호적으로 묘사된다. 북한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유럽은 문명적 쇠퇴를 겪고 있다고 비난받고 있다. 기존 아시아·동맹 중심 전략은 사라지고, 서반구에 대한 단일하고 집착적 집중이 이를 대체했다. 미국의 힘은 이제 미주 지역에 대한 위협을 다루는 데 우선 사용될 것이며, 미국은 자국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이 지역을 재편하고 지배하려 할 것이다.”
베네수엘라 사태와 그린란드 편입 압박 등 행보를 어떻게 보는가.
“트럼프가 그린란드에 집착하는 모습과 베네수엘라 공격은 새로운 미국 국가 안보 전략, 즉 서반구 지배를 목표로 한 새로운 NSS가 실제 정책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워싱턴은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 그린란드 문제에서 무력이 사용될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사실상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행정부는 수사(修辭)를 완화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에서도 미국의 목표는 민주주의 회복이나 정권 교체가 아니다. 석유 문제에서 협조만 한다면 권위주의 정권을 용인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는 ‘폭정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증진하며 자유를 확산한다’는 과거 미국 외교의 가치 중심 접근과 명백히 결별한 것이다.”
트럼프 2기 외교의 키워드가 된 돈로 독트린을 어떻게 해석하나.
서반구는 이제 미국 전략의 최우선 순위다. 이는 19세기 제국주의적 정책을 연상시킨다. 트럼프 정부는 돈로 독트린을 통해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으로 서반구 지배를 추구하겠다는 의도를 사실상 드러냈다. 새로운 NSS는 미국이 세력권 개념을 사실상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중국과 대만의 이슈를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은 많은 전문가가 국제법 위반으로 평가한 이번 미국의 공격을 면밀히 지켜봤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공격이 어떻게 정당화됐는지를 주의 깊게 분석했을 것이다. 여기에 워싱턴이 사실상 세력권 개념을 지지하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은 베이징 내 일부 인사에게 이를 미래 행동의 모델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 다만 중국 인민해방군이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이 수행한 것과 같은군사작전을 실행할 능력을 갖췄는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대만에 대한 대규모 군사 행동은 미국, 일본 등 여러 국가의 개입 가능성을 포함해 엄청난 위험을 수반한다.”
미국이 유엔(UN) 관련 기구 등 여러 국제기구에서 발을 빼고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MAGA, 미국 우선주의 진영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구성하는 제도와 관행, 관계를 경멸과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2기에서는 이러한 질서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신속하고 단호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미국을 ‘착취했다’고 여기는 조직·동맹· 협정에서 탈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이 한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국제 제도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은 정책 방향의 급진적 전환을 상징한다. 이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약화시킬 것이다.”
이런 기조가 계속될 경우 규범 기반 국제 질서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규범 기반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창설국인 미국을 포함해 여러 방향에서 공격받고 있다. 이 질서가 붕괴될 경우 무엇이 뒤따를지는 불확실하다. 분명한 건 트럼프 정부가 이 질서를 지지하지 않으며, 미국이 더 이상이를 주도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중심 동맹 체제는 약화하고 있으며, 특히 유럽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는 사상 최저 수준이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도 비판해 왔으며, 과거 한국을 향해 가장 거친 표현을 사용한 적도 있다. 서울과 도쿄는 그동안 추켜세우기와 갈등 회피, 민감한 사안 논의 연기를 통해 트럼프를 비교적 능숙하게 관리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일방주의적 경향은 뚜렷하고 트럼프는 아시아 동맹국의 민감성에 거의 공감하지 못한다. 미·유럽 관계에서 나타난 균열이 아시아에서도 재현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안보·경제 측면에서 향후 미·중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과거 NSS는 중국을 주요 지정학적 위협으로 규정해 왔다. 그러나 새 NSS는 중국을 경제·무역 문제로만 정의하고 있다. 미 정부 내에는 대중 강경파도 존재하지만, 이들의 시각은 NSS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트럼프가 이들의 관점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북·미·중 간 역학 관계에 대한 전망은. 북한의 핵전략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중국과 러시아는 국제무대에서 북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중국은 대북 제재 회피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은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에 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미·북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있으나, 비핵화는 의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미군 전력 축소를 목표로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미 비핵화 논의를 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더 확신하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국제 리더십 포기와 신뢰 하락 역시 북한이 현재 노선을 유지하는 데 자신감을 느끼게 한다.”
한미 동맹에는 어떤 함의를 갖나. 앞으로 한국의 대응을 조언하면.
“한미 간에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방위비 분담, 주한 미군 감축 가능성, 관세, 미국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 등 잠재적 갈등 사안이 많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을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군비 통제 협상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이는 한반도와 일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은 미국을 최대한 관리하면서 갈등이 폭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일본, 싱가포르, 호주, 나토 회원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이 국제 리더십에서 물러나는 상황에서, 한국은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국가와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