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베시 다이마루백화점에 있는 그랜드 세이코 매장. / 사진 박혁신 F&L 대표
일본 고베시 다이마루백화점에 있는 그랜드 세이코 매장. / 사진 박혁신 F&L 대표
글로벌 시계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2013년 스마트워치 탄생 후 전통적인 손목시계를 사용하지 않거나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시계 이용 목적도 달라졌다. 아날로그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한 용도로, 스마트워치는 정보 단말기 및 신체 상태를 알기 위해 이용한다. 스마트워치는 헬스케어(심박수, 혈압, 수면 등) 서비스가 가능해 건강 관리용으로 사용하는 소비자가 많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가 대중화했지만, 롤렉스·오메가   등 고가 손목시계를 애용하는 고소득층 소비자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일본 1위 시계 메이커 세이코(精工·SEIKO)의 최고급 브랜드 그랜드 세이코(GRAND SEIKO), 킹 세이코(KING SEIKO)도 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세이코는 2000년대 초반 위기를 극복하고, 매년 실적이 좋아졌다. 주가는 2025년 6월 4000엔(약 3만7500원)에서 2월 2일 7780엔(약 7만2900원)까지 뛰었다. 약 두 배 상승이다. 

올해 창업 145주년을 맞은 세이코는 럭셔리 시계 시장에서 존재감이 더 커지고 있다. 이 회사는 고급화 경쟁 속에 ‘정밀함’과 ‘섬세함’을 내세워 일본 제조업의 저력을 보여준다. 200년 장수 기업을 향해 가는 세이코의 현재와 미래 비전을 따라가 본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미래 에셋증권 일본리포트 연재,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미래 에셋증권 일본리포트 연재,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브랜드 고급화 전략으로 성공

세이코는 1881년 도쿄 긴자에 시계 수입· 판매 매장을 열었다. 이 회사는 창업 후 소비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명품 시계 브랜드로 성장했다. 세이코는 1924년 ‘SEIKO’ 브랜드 손목시계를 처음 시판했다. 이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그랜드 세이코, 킹 세이코를 1960년대에 선보였다. 이들 두 개 브랜드가 세이코를 대표하는 고가 손목시계다. 세이코는 1970년대에 판매 종료한 킹 세이코를 50여 년이 흐른 2022년에 부활시켰다. 회사 측은 “예전에 수십 종이 넘는 세이코 브랜드가 난립해 소비자에게 혼란을 줬다”라며 “2010년부터 브랜드 재구축 작업을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2017년에는 그랜드 세이코를 독립 브랜드로 만들었다. 현재 킹 세이코 손목시계의 문자판 위쪽에는 SEIKO가 큰 글씨로, 아래쪽에는 ‘KING SEIKO’가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고가 제품일수록 ‘브랜드’ 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중장년층 소비자를 고려한 조치다. 

히라오카 세이코 홍보실장은 “럭셔리 시계는 ‘세대’보다 ‘기호’가 더 작용하며, 젊은 세대도 클래식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이 찾는다”라며 “기계식 시계의 특성인 구동음이나 시곗바늘의 정밀한 움직임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많다”고 했다. 세이코는 시계 동력원으로 ‘스프링 드라이브’를 사용하는 기계식 시계를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운다. 손목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소유자의 인생과 함께하는 ‘삶의 파트너’라는 인식에서다. 

스마트폰 위기 딛고 실적 더 좋아져

세이코는 2020년대 들어 매출과 이익이 많이 늘어났다. 고가 시계의 판매 호조와 함께인공지능(AI), 카셰어링 등 시스템 솔루션 실적이 꾸준히 개선된 덕분이다. 세이코의 시계 생산관리 시스템에서 출발한 이들 사업은 결제 정산, AI, 카셰어링 등 다양한 분야로 수요가 확산하는 추세다. 

2025년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처음으로 4000만 명을 넘어선 것도 실적 호전 배경이다. 부유한 외국인 관광객이 그랜드 세이코 시계를 많이 구입한다. 2024회계연도(3월 결산)에 세이코 매출은 3000억엔(약 2조8100원), 영업이익은 200억엔(약 1874억원)을 넘어섰다. 3월 말 끝나는 2025회계연도에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증가할 전망이다. 

Plus Point

Interview 핫토리 신지 세이코 회장 겸 CEO
창업가 6번째 CEO, 핫토리 회장의 경영 비법은

핫토리 신지 세이코 회장 겸 CEO  / 사진 세이코
핫토리 신지 세이코 회장 겸 CEO / 사진 세이코

세이코는 창업가 출신인 핫토리 신지(服部眞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14년째 이끌고 있다. 게이오대를 졸업한 핫토리 회장은 미쓰비시상사에 입사한 후 1984년 그룹 계열사인 부품 메이커 ‘세이코플레시존’으로 옮겨 2001년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2003년 세이코워치 사장을 거쳐 2012년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다. 창업자의 증손자인 그는 세이코의 10대 CEO이며, 창업 가문 출신으로는 여섯 번째 CEO다. 핫토리 회장은 1월 중순 NHK와 인터뷰에서 세이코의 미래 비전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미국에 수출하는 시계에 15% 관세가 부과됐다.

“트럼프 정권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관세 조치에 대응해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상황에 맞춰 대처할 계획이다. 손목시계에서 가장 비싼 부품인 1000달러(약 145만원)짜리 무브먼트의 경우 150달러(약 22만원)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번 관세 인상으로 연간 7억엔(66억원) 이상의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세이코 소비자가격을 5% 정도 인상할 방침이다.”

세이코에 미국 시장은 어떤 의미인가.

“미국은 스위스산 등 고급 럭셔리 시계 메이커가 경쟁하는 거대 시장이다. 세이코는 2017년 그랜드 세이코 브랜드를 독립시켜 미국 판매에 나서 성과를 거둬 럭셔리 브랜드 대열에 진입했다. 미국에서 일본 제조업 강점인 ‘모노즈쿠리’를 반영한 ‘일본산(Made In Japan)’ 시계로 시장을 확대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정확성’이라는 기술적 가치에다 ‘일본다움’의 감성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할 계획이다.”

창업 가문 출신 CEO 장점이 있다면.

“창업자 핫토리 킨타로는 ‘정교한 시계를 생산한다’는 목표로 제조 공장 이름을 세이코샤(精工舍)라고 짓고, 제조부터 조립까지 일관 생산 체제를 갖췄다. 1913년에 손목시계를 처음 생산하는 등 일본 시계 산업을 선도했다. 창업가 출신 CEO는 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 가치를 육성할 수 있다는 게 큰 강점이다. 나도 죽은 뒤 20년 후를 생각하며 회사 경영을 한다.”

창업 가문 경영자의 단점은 없나.

“조직 운영에서 ‘상명 하달(top- down)’식 결정이 일어나는 건 단점이다. 그런 창업 가문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부하 직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늘 ‘톱다운’과 ‘보텀업’의 균형을 생각하며 일한다. 위기 때는 톱다운 방식을, 경영 상태가 좋을 때는 보텀업을 채택하는 편이다.”

경영자로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리먼 쇼크 당시, 생필품이 아닌 시계의 매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세이코의 시계 사업 실적이 급속히 악화해 2008회계연도 결산에서 57억엔(약 534억원) 적자로 전환됐다. 미국에서 곧바로 코스트 삭감에 나서 ‘광고비’를 ‘제로(0)’로 했다. 그러자 미국 시장에서 세이코가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서 더 큰 위기를 만났다. 광고비는 어떤 일이 있어도 0로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시계 사업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사업에서 돈을 벌어 보충해야 한다. 시스템 솔루션 사업이 해결책이다. 전자 기기(디바이스)도 ‘시계’를 보완할 수 있게 ‘이익 창출’ 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시계, 시스템 솔루션, 전자 기기 등 세 개 사업군이 세이코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3대 핵심 축이다.”

세이코의 장기 비전은.

“럭셔리 시계 시장에서 ‘톱 10 브랜드’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스위스의 롤렉스, 스와치그룹과 비교하면, 우리 회사 규모는 아직 작다. 해외 소비자로부터 평가받는 ‘장인 정신’과 자연 친화적인 ‘일본적 감성’ 을 살려 차별화된 시계를 만들면 10위 안에 진입할 것으로 확신한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