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월 8일 자민당 당사에서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 AFP연합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월 8일 자민당 당사에서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 AFP연합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이하 다카이치)의 승부수가 통했다. 2월 8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다카이치가 이끄는 자민당은 전체 465석 중 약 68%인 316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기존(198석)보다 118석 늘었으며, 개헌 발의가 가능한 의석(3분의 2·310석)을 초과했다. 일본 단일 정당이 단독으로 개헌 발의석을 넘은 것은 태평양전쟁 종전(1945년) 이후 처음이다. 다카이치는 취임 4개월 만에 자민당 창당 이후 역대 최다 의석을 확보하며 일본 정치사를 새로 썼다. 

총선 압승 부른 사나카츠

이번 총선은 1월 23일 다카이치의 전격적인 중의원 해산에 따라 치러졌다. 다카이치는 정권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조기 총선을 단행했다. 선거 전 자민당(198석)과 연립 여당 일본유신회(34석)는 총 232석으로, 과반에 1석 모자랐다. 다카이치는 “여권이 과반을 차지하는 데 실패하면 즉각 퇴진할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결과는 압승이었다. 자민당은 316석을 확보했고, 일본유신회(36석)를 더하면 여권 의석은 352석에 이른다.

역사적 압승을 거둔 주된 이유는 다카이치 개인의 인기다. 다카이치 인기에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이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유착 의혹은 주목받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사나카츠(サナ活)’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다카이치의 대중적 인기가 높다. 사나카츠는 ‘사나에’와 팬 활동을 의미하는 오시카츠(推し活)를 더한 말로, 다카이치를 열렬히 응원하는 팬 활동을 의미한다. 젊은 여성 사이에선 다카이치가 쓴 볼펜·가방을 따라 사는 문화가 유행이다. 자민당이 유튜브에 게시한 ‘다카이치 총재 메시지’는 정치 영상으로는 이례적으로 조회 수 1억 회를 넘겼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자민당 압승의 1차 요인은 다카이치 개인의 높은 지지와 동원력”이라며 “다카이치는 총리 취임 이후 특유의 역동성과 ‘현장에서 일하는’ 이미지를 전면에 부각하며 대중적 호감을 확장했고, 이는 기존 자민당 지도자상이 보여 온 관료적·권위적 이미지와 대비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카이치는 중산층 출신으로 유리천장을 돌파한 최초 여성 총리라는 서사가 있으며, 새벽 출근 및 자가 이발 등 상징적 행위로 근면·검약의 이미지를 강화했다”며 “정책 역량 과시보다 성실함과 친근함을 매개로 지지 기반을 형성했다”고 평가했다.

다카이치는 1961년 나라현 태생으로, 도요타 계열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지역 경찰인 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대학 입시 당시 도쿄 명문 와세다대와 게이오대에 합격했지만, “남동생의 학비를 위해 포기하라”는 부모의 말에 지역 명문 고베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오토바이를 즐기고 헤비메탈 밴드 드러머로 활동했다. 졸업 이후 ‘일본 정치인의 요람’인 마쓰시타 정경숙에서 정치를 준비했고, 시사 평론가를 거쳐 1993년 중의원 선거에 당선됐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 총무상 등을 맡았고, ‘여자 아베’라고 불릴 만큼 우익 성향 행보를 보였다.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자는 개헌을 주장하고, 야스쿠니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하며 보수층 지지를 얻었다.

 ‘적극 재정’ 사나에노믹스 가속

정책 주도권을 확보한 다카이치는 핵심 경제정책인 ‘적극 재정’을 앞세운 사나에노믹스를 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카이치는 2025년 11월 총리 취임 이후 첫 경제 정책으로 21조3000억엔(약 199조원) 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최대 규모의 경제 대책으로 △고물가 대응을 위한 에너지 요금 지원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투자해 ‘강한 경제’ 실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의 국방비 지출을 달성하기 위한 안보 투자 등 내용을 담았다.

다카이치는 “지금 일본이 시행해야 할 것은 과도한 긴축으로 국가 역량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제적인 재정 정책을 통해 국가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예상보다 높은 세수 등 여러 요소로 재정을 조달할 계획이나, 부족분은 국채 발행을 통해 충당하겠다”고 했다. 다카이치는 2025년 12월엔 2026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 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인 약 122조3000억엔(약 1140조원)으로 편성하기도 했다. 이번 총선 유세 기간에는 식료품 소비세를 2년간 한시적으로 감면(8→0%)하겠다고 공약했다.

다카이치의 총선 압승에 일본 주식시장은 재정 확장을 기대하며 상승했다. 일본 주식시장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2월 9일 5만6363으로 장을 마감하며 종가 최고치를 경신했다. 어드반테스트가 11.52%, 가와사키중공업이 15.73% 급등하는 등 반도체와 방위산업 관련주가 상승을 주도했다. 박성우 DB증권 연구원은 “정책 주도권을 확보한 다카이치는 AI, 반도체, 조선, 국방 등 장기 성장과 안보에 직결된 분야를 중심으로 정부 주도 투자를 가속할 것”이라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점에서 일본 주식시장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고 전망했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닛케이지수의 올해 예상되는 상단을 6만으로 상향한다”면서 “총선을 앞두고 주요 야당이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강조한 점도 일본 주식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반면 사나에노믹스로 일본 재정 건전성이 악화한다는 우려도 짙다. 일본 국채 금리가 상승(국채 가격은 하락)한 이유다. 일본의 국가 채무는 사상 최대치로 치솟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일본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37%로, 미국(121%)의 두 배 수준이다. 또 일본 경제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바뀐 국면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아베노믹스식 정책을 취하는 것은 고물가 대책과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양적 완화로 엔저가 장기화하면 미·일 통상, 환율 이슈로 비화할 가능성,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기조 등도 정책의 제약 요인이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아베와 달리 확장적인 재정지출을 펼칠수록 일본 장기물 금리가 상승(가격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는 점은 다카이치의 부담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자위대 헌법 명기’ 개헌 논의 본격화

다카이치는 압도적 의석수를 앞세워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자민당은 자위대 존재를 헌법에 명기하고, 긴급사태 조항 등을 담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해 왔다. 다카이치는 유세 기간 “자위대의 자부심을 지키고, 확실히 실력 있는 조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한 헌법 개정을 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다만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참의원은 여소야대 구조다. 새 참의원 선거는 2028년에 치러진다.

외교적으로는 중·일 갈등 관리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대만 유사 사태를 ‘일본의 존립 위기’로 언급한 다카이치 발언 이후 중·일 갈등은 깊어졌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일본 집권 당국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직시하며 평화 발전의 길을 걷고 군국주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안보전략연구원은 “중·일 갈등 반작용으로, 다카이치는 한·미·일 협력 중요성을 한층 더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고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