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조(Kojo Choi) 주한 가나 대사는 흔치 않은 이력의 외교관이다. 1977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중학생 시절 가나로 이주한 그는 국제 학교 대신 현지인이 다니는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가나 사회에 뿌리내린 뒤 가나 기업인으로 성공했다. 그러다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지난해 주한 가나 대사에 부임했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한국 출신을 공식 외교 사절로 보낸 건 처음이다.


최 대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가나인과 학교를 함께 다니며 비로소 가나 사회의 맥박을 직접 느꼈다”며 “함께 직접 살아보지 않았다면 깊게 소통하고 신뢰받기는 어려웠고 지금의 대사 자리에 부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나는 최근 아프리카의 신흥 경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안정된 민주주의 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AfCFTA)의 사무국이 있다. AfCFTA는 54개국, 약 14억 인구를 포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하지만 대다수 한국인은 가나 하면 가나 초콜릿과 축구 정도를 떠올린다. 최 대사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제조 노하우와 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가나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평균연령 20세 안팎의 거대한 젊은 소비·노동 인구가 있다”며 “서로 거의 정반대인 만큼, 가장 잘 맞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가나는 2027년에 수교 50주년을 맞이한다. 최 대사는 “한국의 정밀함과 가나의 따뜻함, 기술과 공동체 에너지가 만나면 경제 거래를 넘어 전혀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신뢰 구축의 50년을 넘어 성장 공유의 50년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한국에 부임하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두 개의 마음이 공존한다. 하나는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노래 가사처럼 ‘불안한 미래지만 새로운 기회를 바라보는’ 설렘, 또 하나는 내 정서적 뿌리인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안정감이다. 하지만 내 삶의 여정에서 배운 것은 편안한 곳을 박차고 나와야 새로운 결과가 있다는 점이다.”

가나에서 공립학교를 다녔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선교사였는데, 국제 학교는 학비가 비싸다 보니 집 앞 현지 중학교에 밀어 넣었다. 당시 주재원 자녀는 모두 국제 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가나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놀았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언어는 습득할 수 있지만 문화는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가나 문화를 몸으로 살아낸 덕분에 그들과 깊게 소통하게 됐다.”

한국과 가나는 왜 서로에게 필요한가.

“한국과 가나는 서로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자본력을 가졌지만, 자원과 미래 세대(인구)가 부족하다. 가나는 그 반대다. 가나 길거리엔 아이들이 넘친다. 여기에 1년에 세 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양, 파도 파도 나오는 금(아프리카 금 생산량 1위)과 초콜릿 원료로 유명한 카카오가 있다. 이런 불균형은 협력의 기반이자,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동반 관계의 기반이 된다.”

가나 경제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사람이 없는 곳에 성장이 있을 수 없다. 가나는 중위 연령이 약 20세로 매우 젊어, 소비 시장과 노동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가나는 AfCFTA 사무국이 있는 거점 국가다. 물류 측면으로도 유럽·미국과 가깝다. 가나는 2023년 만성적인 부채 문제와 세계경제 환경 악화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지만, 최근 금 관리를 체계화하며 경제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소기업에 최고 기회의 땅이 될 것이다.”

정치 안정은 가나의 강점인 것 같다.

“가나에서는 1992년 민주화 이후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어졌다. 극단주의 정당이 없는 게 특징이다. 두 주요 정당인 국민민주회의(NDC)와 신애국당(NPP)은 중도 좌파 성향인데, 그 안에도 진보와 보수가 있다. 초대 대통령인 콰메 은크루마의 유산 덕분이라고 말한다. 주변국이 쿠데타와 테러로 시끄러운 사이 가나는 30년 넘게 안정된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다.”

가나의 ‘24시간 경제’ 정책의 핵심은.

“은크루마가 구상했던 국가 개발 전략을 현대적으로 복원한 것이다. 가나를 남북으로 흐르는 볼타강을 축으로 물류, 농업, 산업단지를 결합한 모델이다. 남부에서 북부로 이어지는 물류 혁명을 일으키고, 내륙 국가를 연결하는 철도와 항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100만 코더(프로그래머)’ 육성 정책을 통해 하이테크 산업으로 도약을 꾀하고 있다. 단순 제조업을 넘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아프리카의 싱가포르가 되는 것이 우리 목표다.”

한국이 가나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우리는 이제 ‘원조 대신 무역(Trade, Not Aid)’을 원한다. 주권을 존중하는 대등한 동반 관계를 요구한다. 한국은 코이카를 통해 다른 나라보다 진정성 있는 도움을 준 국가라는 인식이 강하다. 앞으로는 기술 특허를 공유하고 현지 제조를 통해 AfCFTA 전체를 공략하는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에 진출할 때 유의할 점은.

“한국 기업은 아프리카에서 타당성 조사와 리스크 분석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실행에 들어갈 때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한다. 또 가나에서는 신뢰 관계를 쌓는 데 통상 2~5년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 기업은 대부분 1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문화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인가.

“K-팝보다 K-드라마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K-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접한 가나 젊은이 사이에서 한국 화장품과 식재료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러한 ‘소프트 파워’를 실질적인 교역 확대로 연결하는 정교한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Plus Point

가나, 3년 만의 IMF 구제금융 졸업 선언 비결

가나 아보소 마을 인근의 다망 금광. 골드필즈·로이터연합
가나 아보소 마을 인근의 다망 금광. 골드필즈·로이터연합

아프리카 서부의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불리던 가나는 2022년 말, 치솟는 물가와 부채의 늪을 견디다 못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가나는 이르면 올해 3년 만에 IMF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경제 주권을 회복한다.

가나 정부는 2023년 체결한 30억달러(약 4조3000억원) 규모 IMF의 저소득 국가 대출 프로그램인 장기신용약정(ECF) 프로그램을 2026년 4월 종료한다고 밝혔다. 마하마 대통령은 최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리는 혹독한 시련을 견뎌냈고, 이제 원조 수혜국이 아닌 자립적인 경제 주체로서 국제사회에 다시 섰다”며 “가나 국민의 삶을 우선하는 주권적 경제 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3년 전만 해도 가나의 경제 상황은 어려웠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와 방만한 재정 운용이 겹치며 인플레이션은 54%까지 치솟았고, 자국 통화인 가나세디화 가치는 폭락했다. 거리에선 연일 고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2025년 들어 재정 개혁과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면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올해 1월 기준, 3.8%까지 내려왔다. 국가 부도의 주범이었던 공공 부채 역시 채무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45% 수준으로 절반가량 줄어드는 성과를 거뒀다. 최 대사는 IMF 조기 졸업 비결로 최근 국제 금값 상승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가나는 아프리카 1위 금 생산국으로, 금값 상승으로 외환보유액이 최근 역대 최고 수준으로 회복했다. 환율도 안정세를 찾고 있다. 최 대사는 “자원 부국이 제대로 된 거버넌스를 갖췄을 때 얼마나 빠르게 반등할 수 있는지 증명한 사례”라고 말했다.

박근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