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뉴욕 금융가와 언론은 하루가 멀다고 위워크(WeWork) 이름을 불렀다. ‘일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구호와 함께 위워크에서는 새 지점이 열릴 때마다 파티가 열렸다. 창업자 애덤 뉴먼은 “우리는 부동산 회사가 아니라 커뮤니티 회사”라고 주장했다. 공간 임대 사업을 ‘사람을 연결하는 사업’으로 재정의하자, 위워크는 플랫폼 기업으로 평가받으며 투자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이러한 기대는 수치로도 확인되어 위워크의 기업 가치는 한때 470억달러(약 68조7900억원)까지 치솟았다. 단순 임대업을 넘어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위에서 새로운 수익을 뽑아낼 회사라는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상장을 준비하며 공개된 실적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2018년 매출이 18억달러(약 2조6300억원) 수준으로 늘었지만, 손실도 19억달러(약 2조7800억원) 안팎으로 불어났다. 2019년 상반기에도 적자가 약 9억달러(약 1조3100억원) 규모로 이어졌다. 장기 임대 계약으로 공간을 먼저 확보한 뒤, 월 단위 단기 계약으로 잘게 쪼개 파는 구조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해 사무실 수요가 줄면서 장기 임차료라는 고정비에 발목을 붙잡혔다. 결국 2023년 11월, 위워크는 파산 보호(챕터11)를 신청했다.
성장하면 자연히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39개국에서 777개 지점을 운영할 정도로 몸집을 키운 회사가 무너진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장부상 이익이 만든 제국
알렉스 기브니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엔론: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Enron: The Smartest Guys in the Room, 2005)’은 위워크의 문제가 다른 산업에서 어떻게 반복되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텍사스주 휴스턴의 엔론 본사 건물을 비추며 시작한다. 햇빛을 반사하는 유리 건물은 한때 언론이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치켜세우던 엔론의 상징이었다.
엔론은 원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회사였다. 그러나 규제 완화의 물결을 타고 에너지 거래와 금융을 결합한 혁신 기업으로 변신한다. 그 중심에 있던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스킬링은 엔론을 단순한 에너지 기업이 아니라, 거래와 위험 관리 역량으로 수익을 내는 회사로 설명하며 투자자와 내부를 설득했다. 애덤 뉴먼이 위워크를 부동산 회사의 틀에서 떼어냈던 것처럼, 스킬링 역시 엔론을 시장이 더 비싸게 평가할 만한 기업으로 다시 그려낸 것이다.
사업을 새롭게 정의하자, 시장은 더 큰 값을 매긴다. 이때 등장하는 핵심 장치가 ‘마크 투 마켓(mark-to-market)’ 회계다. 장기 계약에서 향후 벌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을 계약 체결 시점에 당겨 인식하면, 미래의 약속이 오늘의 성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상이 빗나가면 그 차이는 언젠가 비용으로 돌아온다. 엔론은 이 방식으로 장부상 이익을 빠르게 부풀렸고, 실제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때 생기는 현금 흐름의 구멍과 위험은 복잡한 거래 구조와 특수목적법인으로 가렸다. 그렇게 손실을 보이지 않게 가리자, 주가는 올랐다. 주가가 오르자, 회사는 더 쉽게 자금을 조달했고 더 큰 프로젝트를 약속했다. 영화는 그 설득의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발표장에서 미래를 오늘로 가져오는 논리에 박수와 찬사가 이어지는 동안, 미래의 약속은 어느새 오늘의 성과로 둔갑했다.
하지만 치솟는 주가를 떠받쳐야 할 현금 흐름과 운영 기반은 놀랄 만큼 빈약했다. 실상을 감추기 위해 경영진은 브로드밴드 사업 등 미래 사업에 대한 비전을 발표했지만, 정작 현장 시스템은 준비돼 있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에 내부 고발자의 경고가 등장하고, 신뢰의 마지막 문지기였던 외부 감사 기능마저 무너지면서, 엔론의 성장은 한순간에 허상이 된다. 주가가 무너지자, 직원의 퇴직연금과 저축도 함께 사라진다. 장부상 이익으로 빛나던 제국은 그렇게 무너졌다.
수치가 사람을 움직이는 순간
이 영화가 탁월한 이유는 엔론의 붕괴를 단순히 회계 부정 사건으로 축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가 집요하게 보여주는 것은 비즈니스 모델의 빈틈이 조직 문화로 굳어지는 과정이다. 장기 성과 대신 단기 수치에 보상이 집중되면, 조직은 ‘좋은 사업’보다 ‘좋아 보이는 수치’에, ‘사업을 잘하는 사람’보다 ‘수치를 잘 만드는 사람’에게 집착하기 쉽다. 내부 경고는 분위기를 망치는 소리가 되고, 실패 가능성과 비용은 미래로 미뤄지며, 오늘의 수치를 맞추는 일이 실력으로 추앙된다. 계약을 따내는 순간, 성과가 확정되는 구조에서는 거래의 질보다 양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치는 목표가 되고, 목표는 사람을 움직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익이 남는가’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수치가 나오나’라는 질문만 남는다. 엔론은 이처럼 부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앞세웠고, 그것이 비판 없는 조직 문화로 굳어지면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위워크 역시 다르지 않다. 시장의 기대를 받았던 ‘커뮤니티’라는 말은 매력적인 포장이었지만, 비용 구조와 현금 흐름의 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되었고, 장기 임차라는 비용의 시간표와 단기 회원 계약이라는 매출의 시간표는 어긋나 버렸다. 그 결과 조직이 성장할수록 새로운 자금 조달로 연명하는 구조가 되면서 침몰한 것이다.
현금 흐름이 증명하는 비즈니스 모델
전략은 그럴듯하지만, 돈이 남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의 사례는 여럿 있다. 퀴비(Quibi)는 2020년 4월 모바일 전용 쇼트 폼으로 출범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이미 무료 동영상 플랫폼이 장악한 시장에서 유료 구독과 광고라는 수익 구조를 끝내 만들지 못하고 같은 해 12월 서비스를 접었다.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와 배우를 앞세워 17억5000만달러(약 2조5600억원)의 자금을 모았음에도, ‘누가 왜 돈을 계속 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4년 여름에 있었던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두 회사 모두 특가와 대규모 할인 전략으로 사용자를 빠르게 늘렸지만, 할인을 줄이면 고객이 이탈하고 할인을 유지하면 적자가 커지는 구조로 인해 지속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전략이 ‘어디서, 누구를, 무엇으로 이길 것인가’를 말한다면, 비즈니스 모델은 ‘그 승리를 어떻게 반복 가능한 수익과 현금으로 바꿀 것인가’를 설명한다. 따라서 경영자는 방향을 만드는 전략과 더불어 그 전략을 현실로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을 점검해야 한다. 한 건의 매출이 발생했을 때, 고객이 지불하는 가격에서 어떤 비용이 빠지고 무엇이 남는지, 그 남는 것이 현금으로 들어오는 시점은 언제인지, 성장할수록 그 구조가 좋아지는지 혹은 나빠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위워크의 기업 가치 470억달러는 미래 현금 흐름에 붙은 기대치였고, 엔론의 장부상 이익은 미래를 오늘로 당겨온 수치였다. 수치가 커질수록 검증은 더 치열해야 한다. 비즈니스 모델이 반복될수록 현금이 단단해지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만 성장 신화는 성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