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7월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금융사인 뱅커트러스트에서 최연소 부사장까지 올랐던 당시 서른 살의 제프 베이조스는 200만달러(약 28억원)를 들여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차고에서 ‘카다브라’라는 이름의 온라인 서점을 창업했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약 32년 뒤 아마존은 월마트를 제치고 연간 기준, 전 세계 매출 1위 기업이 됐다.
아마존이 2월 5일(이하 현지시각) 발표한 2025년 연간 매출은 7169억달러(약 1036조2790억원)였다. 반면 2월 19일에 발표한 월마트의 같은 기간 매출은 7132억달러(약 1030조9300억원)였다. 전년 대비 4.7% 증가한 액수지만, 세계 최대 매출 기업의 자리는 아마존에 내줘야 했다. 월마트는 2012년 엑손모빌을 누른 후 13년 연속 글로벌 최대 매출 기업 지위를 지켜왔다.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했지만, 베이조스의 꿈은 창업 초기부터 원대했다. 카다브라를 아마존으로 개명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카다브라는 마술사의 주문인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에서 따왔다. 뭐든 마술처럼 제공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간혹 카다벌(cadaver·시체)이라고 잘못 듣는 경우가 생겨 베이조스를 고민에 빠뜨렸다. 새로운 이름을 물색하기 위해 영어사전을 뒤적이던 베이조스는 면적이나 유량으로 볼 때 압도적인 세계 최대 강(江)인 ‘아마존’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마침 알파벳 순서로 나열할 때 맨 앞에 오는 ‘A’로 시작하는 이름을 찾고 있기도 했다.
아마존이 기업 미래 가치를 반영한 시가총액(시총)에서 월마트를 넘은 건 2015년 7월로, 10년이 넘었다. 2월 23일 기준 뉴욕 증시에서 아마존 시총은 2조2000억달러(약 3180조원)로 엔비디아,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이은 5위다. 반면 같은 날 월마트 시총은 1조달러(약 1445조5000억원)로, 아마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베이조스는 ‘포브스’ 추산 보유 자산 2196억달러(약 317조4318억원)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와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에 이어 세계 4위 부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애틀의 차고에서 출발한 아마존이 32년 만에 매출 세계 1위 기업에 등극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성공 비결 1│ 파괴적 혁신 출발점 된 ‘가젤 프로젝트’
“치타가 병약한 가젤(아프리카 영양)의 뒤를 쫓는 것처럼 아마존은 영세 출판사를 공략해야 한다.”
베이조스가 아마존 설립 초기에 한 말이다. 아마존의 ‘가젤 프로젝트’는 ‘최저가-가두기 전략’으로 요약된다. 어떤 분야건 진출 초기에는 상당한 손실을 감내하면서 저가·점유율 경쟁을 벌이며 경쟁사를 초토화한다. 그런 다음 전에 없던 고객 경험을 앞세워 고객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경쟁자가 사라진 시장에서 충성도 높은 고객을 통해 확보한 수익은 또 다른 시장을 초토화하는 밑천이 된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했을 때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정가의 40%까지 싸게 팔았다. 여기에 더해 최첨단 물류 창고를 지어 하루에 책 100만 상자를 배송했다. 고객은 아마존의 빠른 배송에 중독됐고, 수많은 오프라인 서점이 파산했다.
성공 비결 2│ 초심 잊지 않는 ‘고객 집착’ 원칙
아마존의 공식 채용 페이지에는 14개 리더십 원칙이 등장한다. 최고경영자(CEO)인 앤디 재시가 각각의 항목을 영상으로 설명한다. 그중 첫머리에 오는 건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이다. “리더는 고객에게서 출발해 거꾸로 생각한다. 고객의 신뢰를 얻고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리더는 경쟁자를 주시하되, 집착의 대상은 언제나 고객”이라는 것이 해당 원칙의 핵심이다. ‘고객에게 집착하라’는 원칙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아이팟 스토리’다. 오래전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아마존은 인기 MP3 플레이어였던 핑크색 아이팟 4000대를 주문받았는데 갑작스러운 부품 문제로 제조사인 애플이 공급 불가를 통보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고객에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주문을 취소하고 환불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아마존 직원은 미국 전역의 소매점을 누비며 핑크색 아이팟 4000대를 정가로 구매해 소비자에게 약속한 할인가에 배송했다. 비용 손실이 불가피했지만, 베이조스는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국내에도 출간된 아마존 임원 출신 비즈니스 전략가 존 로스만의 저서 ‘아마존 웨이’에 실린 일화다.
성공 비결 3│ 고객 만족, 비용 절감 두 마리 토끼 잡는 기술 활용
아마존이 고객 못지않게 집착하는 대상은 ‘첨단 기술’이다. 아마존은 월마트와 경쟁하는 혁신적인 유통 기업이기도 하지만 클라우드 서비스에서는 IBM·MS와 정보기술(IT) 생태계 패권을 놓고는 애플·구글과 맞서는 기술 기업이기도 하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기업이 자체 서버를 구축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저장 공간이나 연산 능력을 빌려 쓰는 기술을 뜻한다. 아마존이 이번에 세계 1위 매출 기업에 등극한 것도 월마트와 유통 경쟁에서 승리했다기보다 클라우드 사업인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기술 부문 성장이 견인한 것으로 봐야 한다. AWS 매출을 제외하면 아마존의 2025년 매출은 5880억달러(약 849조9540억원) 수준이 된다. 첨단 기술 접목은 고객 만족 극대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비용 목적으로도 위력을 발휘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공지능(AI) 투자 확대가 대표적인 예다. 아마존의 최근 3개월간 누적 감원 규모는 약 3만 명에 달한다. 30년 역사상 최대 수준이다. “관료주의를 줄이고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 개편”이라는 게 아마존 측의 설명이지만, 감원 시점이 AI 투자 확대와 겹치면서 직원은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마존은 얼마 전부터 내부 시스템 ‘클래리티(Clarity)’를 통해 직원의 AI 도구 사용 형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이를 승진 및 인사 고과에 전격 반영하기 시작했다.
성공 비결 4│ 최고의 인재를 향한 집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최고의 인재만을 채용하고 육성하는 것도 아마존의 주요 원칙 중 하나다. 로스만은 아마존에 입사하면서 6주간 무려 23번의 면접을 치러야 했다. 9시간씩 걸리는 면접도 있었다. 아마존 자회사인 신발 전문 쇼핑몰 자포스는 신입 직원에게 퇴직 보상금을 지급한다. 신입 직원에게 2000달러(약 290만원)를 받고 바로 퇴사하거나 회사에 올인하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잘못 채용한 직원을 내보내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한 힘든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아마존 리더십 원칙에서 ‘성과’를 강조하는 이유다. 다른 원칙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업무 성과가 뛰어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것이다.
아마존 매출, 구글·메타보다 많다
아마존이 세계 매출 1위라는 상징적 타이틀을 거머쥐었음에도 불구하고, 월가에서는 대규모 AI 투자 비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아마존은 2월 5일 2025년 매출을 공시하면서 2026년 자본 지출 전망치를 2000억달러(약 289조1000억원)로 제시했다. 구글(1850억달러), 메타(1350억달러)보다도 많다.
앤디 재시 아마존 CEO는 기존 사업 수요와 AI, 반도체, 로봇, 저궤도 위성의 중장기 기회를 강조하며 투자 자본의 높은 장기 수익률을 자신했다. 하지만 아마존 주가는 실적 발표 이후 과도한 자본 지출에 대한 경계심이 작동하며 9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시총이 4500억달러(약 650조4750억원) 넘게 증발하기도 했다. 막대한 선투자가 단기 수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월가의 우려 때문이다. 반면 “AI 인프라 선점만이 장기적인 시장 지배력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아마존의 공격적 투자를 지지하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