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주사는 오전에 맞고 신형 백신은 오후 늦게 접종해야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암이나 면역반응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세포가 24시간 생체 리듬에 맞춰 이동하기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알려진 현상이 임상시험을 통해 인과관계가 잇따라 밝혀졌다. 연구가 발전하면 약물 투여 시간만 간단하게 조절하는 방식으로 치료 효과를 더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중난대 의대의 장용창(張永昌) 교수 연구진은 “임상 3상 시험에서 비소세포 폐암 환자가 오후 3시 이전에 면역 항암제 주사를 맞으면 그보다 늦은 시간에 치료받은 환자보다 질병 진행이 더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월 3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중국과 홍콩, 프랑스 연구자들이 같이 진행했다.
암 환자 생존 기간 70% 가까이 늘려
폐암은 암세포 크기에 따라 작은 소세포암과 큰 비소세포암으로 나뉜다. 비소세포암은 폐암의 80%가량을 차지한다. 연구진은 진행성 비소세포 폐암 환자 210명을 무작위로 나눠 한쪽은 오후 3시 이전에, 다른 쪽은 그 뒤에 면역 항암제인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 또는 티비트(신틸리맙)를 3주 간격으로 4회 투여했다. 두 약 모두 PD1 계열 면역 관문 억제제다.
T세포는 외부 침입자나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 세포이지만, 과도하게 작동하면 정상 세포까지 손상을 입는다. 면역 관문은 이를 막는 일종의 면역 브레이크다. T세포는 자신의 면역 관문인 PD-1 단백질이 정상 세포의 PD-L1과 결합하면 그대로 지나간다. 암세포는 이를 역이용한다. 암세포의 PD-L1이 T세포의 PD-1과 결합하면 정상 세포처럼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는다.
이번에 투여한 키트루다와 티비트는 면역 관문을 억제해 T세포가 원래대로 암세포를 공격하게 한다. 둘 다 암세포보다 먼저 T세포의 PD-1과 결합하는 항체 의약품이다. 반대로 암세포의 PD-L1을 억제하는 방식의 면역 항암제도 있다. 티쎈트릭, 임핀지, 바벤시오 등이 그렇다.
연구진은 첫 치료 후 29개월간 환자들을 추적 관찰했다. 임상시험 결과, 오후 3시 이전에 치료받은 환자는 평균 28개월 생존했지만, 오후 늦게 항암제를 투여받은 환자는 17개월 생존했다. 논문 공동 교신저자인 프랑스 파리-사클레이대의 프랜시스 레비 교수는 “항암제를 이른 시간에 투여해 생존 기간이 거의 두 배로 늘어난 놀라운 결과”라고 밝혔다. 병세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 무진행 생존 기간도 조기 투여군이 11.3개월, 지연 투여군이 5.7개월이었다. 병세가 악화하는 위험이 60% 감소한 것이다. 일찍 항암제를 투여하면 혈액에서 암세포를 공격하는 세포독성T세포가 늘었고, 활성도도 높았다.
그동안 면역 관문 억제제를 이른 시간에 접종하면 암 환자의 사망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수십 건 나왔다. 하지만 모두 치료 결과를 사후 분석한 연구였다. 환자를 무작위로 나눠 항암제 투여 시간을 달리하며 실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침형 면역 세포에 맞춘 치료 전략
연구진은 면역 항암제 조기 투여군에서 치료 효과가 더 컸던 것은 T세포가 아침에 종양 주변에 모여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T세포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순환계로 이동한다. 이른 시간에 항암제를 투여하면 T세포가 암세포를 더 많이 공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아군이 적군을 포위했을 때 공격 신호를 내리는 셈이다.
이번 임상시험에 참가한 환자들은 상당수가 여전히 치료받고 있다. 항암제 조기 투여의 장기적인 이점을 평가하려면 계속 추적 관찰해야 한다. 혈액에서 T세포의 증가를 확인했지만, 아직 종양 조직의 변화까지는 분석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다.
레비 교수는 “앞으로 항암제 투여 시간대를 대략 몇 시간 정도로 하기보다 오전 11시처럼 구체적인 시간에 하는 것이 나은지 더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사람마다 생체 리듬이 조금씩 다르므로 항암제를 투여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도 개인차를 보일 수 있다. 레비 교수는 “아침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은 면역 체계도 하루 동안 뚜렷하게 달리 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백신은 오후에 젊은 층에게 더 효과
백신도 생체 리듬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의 엘리자베스 클러먼 교수와 영국 옥스퍼드대 제인 매키팅 교수 연구진은 2021년 국제 학술지 ‘생체 리듬 저널’에 코로나19 백신은 아침보다 오후에 접종할 때 효과가 더 컸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코로나19 대유행기에 의료인 2190명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 후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항체가 얼마나 생기는지 조사했다. 분석 결과, 일반적으로 오후에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의 항체 반응이 더 높게 나왔다.
백신은 독성을 없앤 병원체나 그 일부를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원리다. 소수의 적군을 붙잡아 어떤 무기를 가졌는지, 어떻게 공격하면 좋을지 사전 훈련을 하는 셈이다. 그러면 나중에 적군이 대규모로 공격해도 바로 역공할 수 있다.
연구진은 오후에 백신을 맞으면 항체가 더 많이 생기는 것은 그 시간대에 면역 학습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면역 체계는 외부 활동이 많은 낮에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침입자에 대비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수지상 세포는 바이러스나 세균의 단백질(항원)을 인식하는 정찰병 같은 면역 세포다. 일반적으로 오후에 면역 세포 집결지인 림프샘으로 이동한다. 침입자를 공격하는 T세포와 B세포 밀도도 오후에 림프샘에서 정점에 이른다. 따라서 이때 백신이 들어오면 인체가 대비 태세를 갖추는 데 가장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백신은 무조건 오후에 맞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노년층 대상 임상시험에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은 아침에 투여해야 더 효과가 있었다. 연구진은 코로나19 백신과 인플루엔자 백신은 작용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백신은 완전히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항하므로 면역 학습 효과가 높은 오후에 접종하는 게 낫지만, 노년층이 오랫동안 경험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면역 세포의 정찰 시간인 아침에 백신을 투여하는 게 낫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