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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젊은 물리학자였던 리처드 파인먼은 세계 최초 핵무기를 개발하는 군사 작전,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파인먼은 계산팀을 이끄는 팀장 역할을 맡았는데, 이 팀에는 수학 실력이 뛰어난 미국 전역의 학생이 팀원으로 투입됐다. 계산팀은 원자폭탄의 임계질량을 계산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임계질량은 원자폭탄의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으로, 정확한 값을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목적은 물론, 참여자인 팀원은 자신이 어떤 것을 계산하는지조차 극비로 부쳐져 몰랐다는 점이다. 팀원은 매일 반복적인 계산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이내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파인먼은 프로젝트 수장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설득, 정부의 특별 허가를 받아 ‘우리는 지금 핵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중이며, 이 계산은 폭탄 개발에 가장 중요한 핵심 임무’라는 사실을 팀원에게 알렸다.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팀원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을 새워 계산했고, 잘못된 접근은 개선했으며,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 작업 속도는 이전보다 거의 10배나 빨라졌다고 한다. 파인먼의 자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맨해튼 프로젝트 계산 임무에 투입된 팀원이 그토록 지루해했던 계산에 몰입하게 된 계기는 그 일을 왜(why) 하는지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업무가 달라진 건 아니지만, 일의 의미가 드러나자 태도가 달라졌고, 이에 따라 성과 역시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목적(purpose)’이 구성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목적이 분명한 팀은 무엇이 다를까. 목적, 즉 일의 의미는 팀 전체가 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이정표가 돼 준다. 가야 하는 방향을 제대로 알려주면, 그곳에 가기 위한 방법은 팀원 스스로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팀장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는 팀’이 될 수 있다." 

유희영 IGM인사이트 연구소 책임연구원 - 현 IGM세계경영연구원  프로그램·콘텐츠 기획 담당, 전 모네상스 최고경영자(CEO) 교육 프로그램 기획·운영 담당
유희영 IGM인사이트 연구소 책임연구원 - 현 IGM세계경영연구원 프로그램·콘텐츠 기획 담당, 전 모네상스 최고경영자(CEO) 교육 프로그램 기획·운영 담당

추상적 비전보다 구체적 목적

많은 리더는 목적을 회사 전체의 미션이나 비전 차원에서 생각한다. 목적은 이미 정해져 있으며, 구성원은 그 방향에 맞춰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올바른 목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미션이나 비전은 조직 전체의 활동을 포괄해야 하기에, 추상적이다. 보고서를 수정하거나, 고객에게 메일을 쓰는 등 일상 업무에 치이는 구성원에게 그다지 와닿지 않는 이유다. 구성원의 행동에 진짜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목적이 그들 더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그 단위가 바로 팀이다. 팀은 구성원이 업무를 함께하는 실질적인 단위 조직으로, 같은 회사에 소속돼 있더라도 업무의 성격과 난이도, 필요 역량은 팀마다 제각각이다. 성과 관리와 피드백, 동기 형성 역시 대부분 팀 안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구성원이 자기 일을 이해하는 방식은 팀이 그 일의 목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목적이 분명한 팀은 무엇이 다를까. 목적, 즉 일의 의미는 팀 전체가 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이정표가 돼 준다. 가야 하는 방향을 제대로 알려주면, 그곳에 가기 위한 방법은 팀원 스스로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팀장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는 팀’이 될 수 있다. 

미국 뉴욕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의 이야기는 목적이 분명한 팀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잘 알려준다. 2017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World’s 50 Best Restaurants)’ 1위에 올랐던 일레븐 매디슨 파크는 단순히 음식의 완성도뿐 아니라, 탁월한 고객 경험 설계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이 레스토랑의 직원은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을 정도로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컨대 눈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외국인 가족 손님을 위해 저녁 식사 후 센트럴파크에서 썰매를 탈 수 있도록 준비했다. 휴가 항공편이 취소된 후 실망감을 달래려고 방문한 커플을 위해서는 프라이빗 룸에 실제 모래를 들여와 해변처럼 꾸미고, 칵테일과 해변 의자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는 당시 일레븐 매디슨 파크의 총지배인인 윌 구이다라가 강조한 목적 덕분이다. 구이다라는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파인 다이닝을 찾는 고객이라면, 단순히 훌륭한 식사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적 경험을 원한다고 봤다. 그는 레스토랑의 모든 서비스가 지향해야 할 의미를 ‘우리는 고객에게 놀라운 환대(unreasonable hospitality)의 경험을 제공한다’라고 정의했다. 이 한 문장이 일레븐 매디슨 파크 직원이 상황에 맞게 창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이끄는 기준이 된 것이다.

일하는 방식으로 정착되는 ‘목적의 공유’

팀의 목적은 회사 전체의 미션과 팀의 역할에 기반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적을 정하는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어떻게 공유하느냐다. 회의 시간에 멋진 슬로건을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팀원의 사소한 업무까지 목적의 의미를 연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마케팅팀의 목적이 ‘더 많은 사람에게 브랜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전달한다’라면, 공식 블로그에 달린 댓글에 답하는 일이나 소셜미디어(SNS) 이벤트로 제공할 사은품 구성을 정하는 일까지 목적을 생각하며 일하도록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목적에 맞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팀원을 리더가 꾸준히 인정해 주는 것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다. 이 과정이 제대로 자리 잡을 때 목적은 구호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으로 정착된다.


AI 시대 리더십, 의미 설계자로 전환

하루가 다르게 인공지능(AI)이 발전하고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의 지평이 무한히 넓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상이다. 하지만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결과물을 내놓을지는 결국 구성원 태도에 달려있다. 기술이 상향 평준화할수록, 역설적으로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의 ‘진심’이 결과의 차이를 만드는 핵심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현업 팀장의 리더십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이 일을 왜 하는가’라는 물음에 매출 목표나 성과급, 프로젝트 완수 같은 답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업무의 결과물일 뿐, 근본적인 의미가 될 수는 없다. 팀이 존재하는 이유, 업무의 가치에 대해 마음으로 공감할 때, 구성원은 비로소 최대한의 기량을 발휘한다.

조직의 방향은 위에서 내려오지만, 그 안에서 진짜 의미를 만드는 사람은 다름 아닌 팀장이다. 이제 팀장은 업무를 단순히 관리하는 사람을 넘어, 팀이 나아가야 할 목적을 정의하고 제안하는 설계자로 거듭나야 한다. 

유희영 IGM인사이트 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