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에서, 특히, 인사관리(HR)의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영역은 오랫동안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권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다. 우리는 그들이 만든 규칙에 적응하는 데 익숙해졌고, 그것이 곧 정답이라 믿었다. 그러나 최근 필자가 겪은 몇 가지 상징적인 사건은 이러한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전통의 서구권 다국적기업이 이제는 진정한 ‘글로벌화’를 위해 오히려 아시아의 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유수의 한 독일계 기업은 글로벌 신(新)인사 제도의 아시아 시장 연착륙을 위해 필자에게 HR 관련 자문을 구해왔고, 스페인의 한 기업 역시 리더십 프로그램의 핵심인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설계를 아시아인인 필자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국내 대표 글로벌 기업 HR 담당자와 세미나였는데, 그들은 ‘관리’를 넘어 세계 현지의 리더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가장 한국적인 글로벌 인사관리 시스템’ 구축에 뜨거운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봤을 때 비즈니스의 무게중심은 이미 이동하고 있다. 과거 서구권 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글로벌 본사’의 역할이 이제는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로 옮겨지는 중이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가전과 자동차, 조선 등 전통적인 제조 강국을 넘어 반도체, 콘텐츠, 그리고 플랫폼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한국 기업이 점점 세계시장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는 아시아 주요 국가에도 적용된다. 미국 경제 잡지 ‘포천’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아시아 기업 비중은 2000년대 초반에는 20%대에 불과했으나, 2025년 기준으로 40%를 넘고 있는데, 이는 비즈니스 지형이 변화하고 있는 흐름을 증명한다. 한국·일본·중국 기업은 이제 수만 명의 외국인 인재를 거느린 ‘글로벌 헤드쿼터(HQ)’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의 높은 비즈니스 이해도와 압도적 실행 속도, 우수한 IT 활용 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현지의 인프라나 속도가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때는 맥락을 짚어주는 교육과 시스템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사업의 성패를 함께 고민하는 진정한 파트너십이 한국 주도의 글로벌 HR의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HR 스탠더드, 아시아로 이동
문화적 포용과 그라운드 룰 필요
K-HR이라는 새 기준 제시해야


한국적 HR 경영의 고도화 

비즈니스 영토가 확장되면서 전 세계 곳곳에 깃발을 꽂고 있으나, 정작 그 깃발 아래 모인 다양한 국적의 비즈니스맨을 어떻게 관리하고, 리드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필자가 보기에 우리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글로벌 기업’이 돼버렸는데, 서울 본사 가이드라인이 타지에서 ‘우리와 맞지 않는다’는 냉소적 반응에 부딪힐 수 있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여기에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주도의 HR이라는 기술적 광풍까지 불어닥치고 있으며, 하이테크의 효율성과 HR의 본질적 철학 사이 혼란은 계속해 가중되고 있다. 이 혼돈을 잠재울 한국 주도 글로벌 HR의 3대 핵심 전략을 제안해 본다. 

필자가 생각하는 첫 번째 핵심 전략은 ‘푸시(push·외부 강제)’가 아닌 ‘얼라인(align·내부 동기화)’의 통찰이다. 과거 서구 기업은 자사 방식을 이식하는 것이 곧 선진화라 믿었고, 이를 밀어붙였다. 우리는 이런 서구 시스템을 수용하면서도 우리만의 끈끈한 공동체 문화를 지켜온 독특한 DNA가 있다. 입장이 바뀐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지 문화를 존중하되, 기업의 핵심 가치(core value) 안에서 정렬시키는 포용적 리더십이 HR 담당자의 제1 덕목이 돼야 한다. 우리 역시 불편을 겪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두 번째 전략은 우리만의 ‘최적화 HR 모델’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필자는 여러 매체를 통해 한국적 HR, 즉 K-HR의 잠재력을 지속해 어필해 왔다. 우리의 높은 비즈니스 이해도와 압도적 실행 속도, 사람 중심의 관리 그리고 우수한 정보기술(IT) 활용 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다만, 현지 인프라나 속도가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맥락을 짚어주는 교육과 시스템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사업의 성패를 함께 고민하는 진정한 파트너십이 한국 주도의 글로벌 HR의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전략은 실전 운영 체계다. 글로벌 팀 모두가 동의하고 실천할 수 있는 ‘비즈니스 오퍼레이션 루틴’을 설정해야 한다. 본사와 지사 그리고 현지 인사 책임자가 함께 지켜야 할 일종의 ‘그라운드 룰(ground rule)’을 만드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1│명확한 목표와 기대 수준의 설정

모호한 격려 대신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는 기대 수준을 설정하고 합의한다.

2│커뮤니케이션 채널과 주기의 구조화

시차와 언어를 극복할 채널(팀스·슬랙 등)과 주기적인 보고 체계를 확립한다.

3│하이테크 협업 도구의 정열

AI와 협업 툴 활용법, 데이터 보안 가이드라인에 대한 사전 합의가 필수적이다.

4│심리적 안정감과 포용 문화

갈등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조정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고, 문화적 차이를 해소할 리더십 프로그램을 정례화해야 한다.


미국식 시스템이 정답이 아닌 현장에서 

필자가 꽤 오래전 근무했던 다국적기업의 미국 본사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연말까지 한국 지사의 연구개발(R&D) 본부 전 직원을 해고하고, 팀 해체를 ‘지시’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필자는 처음으로 한국 지사장과 연합 전선을 형성해 본사에 “아니(No)!”라고 항변하고, 그 지시를 한국 현지에 맞게 바꾼 일이 있었다. 매우 유감스러운 경영적 판단인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이를 수행하기 위한 시기와 구조조정 프로젝트 마감 시간, 커뮤니케이션 매너, 현지 임직원에 대한 보상 문제 등을 다루는 데 있어 다국적기업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양성과 포용성의 아이콘이라고 자부했던 그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닌가. 

이제 막 서막이 오른 한국 주도의 글로벌 HR 시대. 준비되고 훈련된 리더에게 글로벌 무대는 더없이 넓은 운동장이다. 우리가 만들 K-HR은 단순히 서구 모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인간, 본사와 현지를 잇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남다른 노선을 걷기 시작한 한국 기업의 건승을 빈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