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은 2025년 1월 재집권 직후 인도를 향해 ‘관세의 왕(tariff king)’이라고 공격했다. 이는 과거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정부가 인도를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으로 대우하며 전략적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기술이전을 전폭 지원했던 것과는 정반대 행보였다. 트럼프 정부는 그해 4월 인도에 26%의 상호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지만, 다섯 차례 협상 끝에 8월 50%로 높였다. 기존보다 1%포인트 낮춘 상호 관세 25%에 보복성으로 25%를 더한 것이다. 인도의 높은 대미 무역 흑자가 문제 됐지만,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인도가 중단하는 문제를 놓고 양국이 이견을 보인 탓이 컸다.
특히 인도가 공을 들여온 정보통신(IT) 서비스와 의약품 수출이 직격탄을 맞으며 양국 관계는 1970년대 냉전기 이후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에너지와 농업 분야에서 파격적인 양보를 제시하며 진화에 나섰다. 2026년 2월 2일(이하 현지시각) 전격 발표된 미국과 인도의 잠정 무역 합의는 인도가 향후 5년간 5000억달러(약 723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수입 원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러시아산 원유를 포기하는 조건을 담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 소셜에 “모디 총리가 간곡히 요청해 내가 우정의 마음으로 수락한 거래”라고 썼다. 인도를 동등한 전략적 파트너가 아닌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 ‘거래 상대’로 규정한 것이다. 다만 이런 합의는 인도 내부에서 심각한 주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필자는 이번 합의가 인도의 고질적인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특히 미국이 인도의 에너지 수입 정책을 ‘국가 안보 위반’과 연계해 언제든 관세를 재부과할 수 있도록 한 행정명령은 인도를 사실상 미국의 경제적 속국으로 취급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필자는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지위를 스스로 포기했다”라며 “인도가 최근 유럽연합(EU)과 체결한 세기의 합의(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미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행보는 트럼프발 불확실성이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지난 20년 이상 미국은 인도를 ① 필연적인 파트너(natural partner)로 간주해 왔다. 인도는 지리적 위치, 군사력 그리고 민주주의적 자격으로 인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없어서는 안 될 신흥 강국이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지난 다섯 번의 미국 정부는 내리 인도를 단순한 시장이 아닌 장기적인 전략적 베팅 대상으로 대우하며,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인도와 쌓아온 우호적인 관계는 트럼프가 2025년 미국 대통령으로 복귀한 이후 급속도로 훼손됐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미국 관세를 지정학적 강압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공개적 모욕 주기를 반복하고 뼈아픈 무역 전쟁을 야기했다. 2월 2일 발표한 미국과 인도 간 잠정 무역 합의로 경제적 대립은 멈췄으나, 모든 전략적 파트너십의 필수 통화인 ‘신뢰’가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미국은 인도산 제품에 대한 실효 관세 부담을 50%에서 18%로 낮췄다. 새롭게 발표된 합의는 인도에 단기적인 안도감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는 인도가 미국의 공산품 및 각종 농산물에 대해 무관세에 가까운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요구를 비롯한 수많은 조건이 붙어 있다. 국가 최대 고용 창출처인 ② 농업 분야를 미국산 수입품에 개방하겠다는 인도의 결정은 이미 국내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도는 향후 5년 동안 무려 5000억달러(약 723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너지, 항공기 및 항공 부품, 귀금속 등)을 구매하고 ③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할인된 가격으로 수입하던 러시아산 원유 대신, 미국 에너지를 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으로 수입하기로 했다. 반면 미국은 인도에 어떠한 확실한 약속이나 책임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일방적인 거래는 안정적이고 호혜적이며 규범에 기반한 무역 파트너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며, 미국의 무역정책이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전략적 화해가 아닌 전술적인 긴장 완화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번 합의가 발표된 방식은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일반적으로 양자 협정이나 ‘공동성명’은 동등한 파트너십을 나타내기 위해 양국 수도에서 동시에 발표한다. 인도가 최근 EU와 체결한 FTA는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약 25%와 세계무역의 3분의 1을 아우르는 무역 회랑(trade corridor)을 형성했고, 양측 모두 이를 두고 ‘세기의 합의(mother of all deals)’라고 평가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과 인도의 합의는 트럼프가 먼저 발표했는데, 그는 트루스 소셜에서 모디 총리에게 베푸는 호의로 묘사하면서 ‘우정과 존경의 마음으로’ 합의에 대한 모디의 ‘요청’을 승낙했다고 표현했다. 며칠 후 백악관은 인도 표준시로 오전 5시에 합의 조건을 요약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는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의 직간접적인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위반했다고 판단될 경우 징벌적 관세의 재부과를 승인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인도 에너지 수입 문제를 미국의 국가 안보 문제로 규정함으로써, 트럼프 정부는 경제협력을 규정 준수 테스트로 변질시켰다. 미국이 인도에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율성은 오직 미국이 승인한 한도 내에서만 용인된다는 것이다. 인도 고위 관리는 인도가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더 낮은 관세를 적용받게 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번 합의를 승리로 포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트럼프가 언제든 판을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합의 세부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트럼프는 마음을 바꾸고 거래를 파기하며 새로운 요구 사항을 겹겹이 쌓아 올린 오랜 전력이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인도는 과거 트럼프의 배신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주요국의 GDP 성장률(약 3.2%)을 앞지르고 있는 인도를 ④ 2025년 7월 ‘죽은 경제(dead economy)’로 낙인찍은 것 같은 그의 무시를 간과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트럼프는 인도에 호의를 베푼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외교정책에 있는 노골적인 거래주의를 폭로하는 방법으로 ‘트럼프 정부는 신뢰할 수 없는 전략적 파트너’라는 점을 보여줬다. 그 결과, 인도 정부는 미국에서 벗어나 해외 경제협력 관계를 다변화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미국과 새로운 무역 합의와 무관하게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전략적 파트너십은 관세와 위협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 상호 존중을 통해 유지된다. 이런 파트너십은 미국의 이익에도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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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① 미국과 인도는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며 중국 견제와 인도·태평양의 안보 및 공급망 안정을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긴밀히 협력해 왔다. 이런 전략적 이해관계는 일본, 호주와 함께하는 4개국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를 통해 자유로운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② 인도는 자국민의 50% 가까이가 종사하는 농업을 위협하는 미국산 저가 농산물 및 유제품의 대규모 유입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입관세 인하와 시장 개방이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 미국과 경제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농민의 거센 정치적 반발과 식량 주권 약화라는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③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인도는 러시아산 우랄 원유를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20~25달러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해 왔다. 판로가 막힌 러시아가 인도에 가격 할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5년 11월 미국이 러시아 최대 석유 기업에 대해 신규 제재를 단행하면서 거래 위험과 물류비용이 급증, 할인 폭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④ 트럼프는 2025년 7월 30일 트루스 소셜에 “인도가 러시아와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그들끼리 죽은 경제를 망치든 말든 관심 없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혐오스러운 비관세장벽을 세웠지만, 우리는 인도와 거의 거래하지 않고 있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