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씨 인사이드’ 속 장면. New Line Cinema
영화 ‘씨 인사이드’ 속 장면. New Line Cinema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을 선택하지 못한다.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스스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렇다면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속하는 것일까? 삶이 의무라면, 죽음은 권리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영화 ‘씨 인사이드(The Sea Inside)’는 안락사를 원했던 한 남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 오래된 금기를 끝내 외면할 수 없도록 관객의 턱밑까지 서늘하게 밀어 넣는다.

라몬은 26년 동안 사지마비 환자로 살았다. 손가락을 말아 쥐는 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단단한 대지를 두 발로 딛고 서는 일이 얼마나 경이로운 기적이고 축복인지 건강한 이는 알지 못한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고, 자기 배설물조차 갈무리할 수 없는 현실은 매일 반복되는 형벌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그에게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이자 꿈이다. 

김규나 -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젊은 시절 라몬은 바다처럼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선박 수리 기술자였던 그는 스무 살 무렵부터 세계를 여행하며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잘못된 다이빙이 그의 세계를 멈춰 세웠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날 그 푸른 절벽 위에 서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인생에는 되감기 버튼이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뿐이다. 

라몬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그는 형 부부와 조카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과 보살핌을 충분히 받고 있다. 누구도 그의 부재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생명, 그는 이 무거운 삶을 더 이상 지속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죽음이 전염되기라도 할 것처럼 두려워하며 안락사는 자살이자 죄악이라고 못 박는다. 종교도 그에게 삶의 가치를 설교한다. 인생을 제거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설득한다. 라몬은 되묻는다. 자유가 없는 생이 과연 삶인가? 없는 죄도 만들어 산 채로 화형까지 했던 종교가 왜 자유의지로 죽겠다는 선택을 말리는가?

라몬은 죽을 권리를 얻기 위해 법원으로 향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길, 그는 창밖으로 달리는 세상을 바라본다. 드넓은 들판 위를 흘러가는 구름, 바람에 돌아가는 풍차, 숨 가쁘게 일터로 뛰어가는 사람들, 서로를 다정히 쓰다듬는 연인들. 그도 달리고 싶었다.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모든 풍경은 그가 속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에겐 허락되지 않은 역할이었다.

영화는 집요하게 질문의 칼날을 세운다. 안락사와 자살은 다른가? 무엇이 진정한 삶이며, 무엇이 진실한 사랑인가? 사랑이란 숨이 붙어 있는 한 곁에 묶어두는 집착인가, 아니면 그가 원하는 먼 길을 기꺼이 배웅하는 용기인가? 라몬의 절망을 단 한 뼘도 살아보지 못한 우리가 감히 생명의 고귀함이라는 명분으로 그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는가? 세상은 어디까지 개인의 가치 판단을 존중해야 할까? 죽음의 자유까지 허용해도 괜찮은가? 

라몬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생의 연장은 진정한 의미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죽을 수 있는 자유다. 그러나 조력 존엄사를 인정하는 스위스와 달리 라몬이 살고 있는 나라의 법은 세계 수많은 국가가 그런 것처럼, 그가 계속 살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안락사를 돕는 행위를 법은 살인이라 규정한다. 

이런 일은 영화 밖 우리 현실에서도 현재진행 중이다. 얼마 전 난치병을 앓고 있던 60대 남성이 조력 존엄사를 위해 스위스로 떠나려다 비행기 이륙 직전 경찰에 의해 강제 제지당했다. 가족의 요청이 있었다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고통 속에서 내린 개인의 결단을 국가와 법이 가로막을 권리가 있는 것인가?

영화 ‘씨 인사이드’ 속 장면들. New Line Cinema
영화 ‘씨 인사이드’ 속 장면들. New Line Cinema

줄리아는 죽음 역시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믿는 변호사다. 퇴행성 질환을 앓으며 서서히 기억과 근육을 잃어가고 있던 그녀는 라몬의 의지를 지지하며 법적 싸움을 같이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과 영혼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들의 감정은 어느덧 사랑으로 자란다. 그러나 라몬은 눈앞에 있는 그녀의 가녀린 손조차 잡을 수 없다.

육체의 감옥 안에서 라몬은 긴 막대를 입에 물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시를 썼다. 줄리아는 그가 쓴 시를 책으로 출간하자고 제안하고 작업을 주도한다. 그녀는 약속한다. 시집 초판이 나오는 날, 책을 들고 오겠다고. 그리고 함께 출간을 축하하고 함께 세상을 떠나자고.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 항해를 함께할 수 있을까? 그들의 선택은 비겁한 죽음, 나약한 삶의 포기는 아닐까? 

영화 제목 ‘씨 인사이드’는 ‘내 안의 바다, 내면의 바다’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순한 회상이나 신기루 같은 낭만적 바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라몬의 바다는 인생의 자유, 아직 포기하지 않은 인간의 존엄을 대신한다. 그는 다시 바다로 가고 싶다. 그것은 죽음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 온전히 회귀하고자 하는, 라몬의 꺾이지 않는 마지막 불굴의 의지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삶을 소중히 여긴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죽음은 삶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현재를 단단히 붙들어 주는 생명의 뿌리인지도 모른다.

침대에 결박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이토록 광활한 사유로 확장되는 이유는 그가 죽음을 말하면서도 인간답게 사는 법을 끝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가 끝내 응시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라몬이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살아갈 자유, 사랑할 자유였다.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의 가슴에는 끝없이 펼쳐진, 깊고 푸른 바다가 일렁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각자의 내면에 숨겨진 바다다. 라몬의 이야기는 노년의 문턱에서, 혹은 어느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 모두 맞닥뜨리게 될 파도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 차례가 눈앞에 찾아왔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살아야 할 의무와 인간답게 떠날 권리 사이, 당신은 어디쯤 서 있는가? 

김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