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진작가 케빈 쿨리의 사진집  ‘경이의 마법사’ 커버. /김진영
미국의 사진작가 케빈 쿨리의 사진집 ‘경이의 마법사’ 커버. /김진영

무언가가 ‘알려진다’는 것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이미지와 이야기가 빠르게 유통되는 오늘날, 기록과 공유는 곧 노출이 되고, 노출은 종종 통제 불가능한 결과를 동반한다.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 플랫폼은 개인 작업과 삶을 즉각적으로 확산하는 도구가 되었지만, 그 확산 속도와 범위는 당사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는 이제 무엇이 문제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분리될 수 없다. 무언가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 이른바 퍼블리싱은 더 이상 단순한 ‘공개’가 아니라 사회적·법적·윤리적 맥락으로 다시 읽히는 행위가 됐다.

김진영 -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미국 사진작가 케빈 쿨리(Kevin Cooley)의 ‘경이의 마법사(The Wizard of Awe)’는 바로 이런 퍼블리싱 역설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 책은 불꽃과 연기라는 강렬한 시각적 대상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온 한 기술자의 삶을 기록하지만, 그 기록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발생한 결과는 전혀 단순하지 않다.


연기의 마법사 여정 담은 일대기

책의 주인공 켄 밀러(Ken Miller)는 인터넷에서 ‘연기의 구루(The Smoke Guru)’로 불린다. 그는 각종 에어쇼를 비롯해 다양한 산업 분야를 위한 연막 발생 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로 약품을 가열하거나 기화시켜 짙은 연기(스모그)를 만들어냈다. 그는 뛰어난 전문성을 인정받아 존경받는 불꽃과 화약 기술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의 여정에는 찬란한 순간과 불행한 사건이 뒤섞여 있다. 작업 중 일어난 비극적인 폭발 사고로 사업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하워드 스넬슨(Howard Snelson)을 잃었고, 자신 역시 심각한 화상을 입게 된 후, 밀러는 육체적 고통과 자신을 잠식한 죄책감을 견디기 위해 진통제에 의존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불꽃과 연기에 대한 열정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밀러의 작업에 관심을 두게 된 작가는 미국 미네소타주 남부에 있는 밀러의 시골 농장을 방문해 마법과도 같은 불꽃 세계를 기록했다. 밀러의 사유지는 다채로운 불꽃 실험을 위한 시험장이 됐고, 그곳에는 폭발로 생긴 움푹 파인 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작가는 협업을 통해 밀러가 만든 연기와 화염의 폭발력과 아름다움을 기록했다. 불꽃이 폭발하는 순간부터 이후에 남는 연기와 대기의 움직임까지, 사진은 물리적 현상일 뿐인 불꽃에 생명력을 가진 듯한 경이로움을 불어 넣었다.

이 사진 연작은 이후 과학 잡지 ‘파퓰러 사이언스’에 ‘경이의 마법사’라는 제목의 포토 에세이로 실렸다. 그러나 이 공개 기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밀러를 몰락으로 이끌었다. 기사가 미국 주류·담배·화기 단속국(ATF)의 관심을 끌게 됐고, 조사 과정에서 밀러가 다양한 연막 장치 제작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불법 폭발물 제조 및 총기 소지 전과가 있던 그에게 연방법 위반이라는 혐의가 씌워졌다.

한동안 법정 공방이 이어졌고 결국 밀러는 체포돼 2년에 가까운 형을 선고받고 연방 교도소에 갇히면서 더는 불꽃 기술자의 삶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밀러는 작가를 전혀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가 자신을 ‘잘못된 선택’의 길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자기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켄 밀러는 인터넷에서 흔히 ‘연기의 구루(The Smoke Guru)’로 불린다. 불꽃과 화약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각종 에어쇼를 비롯해 다양한 산업 분야를 위한 연막 발생 장치를 제작해 왔다. 하지만 그의 삶의 여정에는 찬란한 순간과 불행한 사건이 뒤섞여 있다. /김진영
켄 밀러는 인터넷에서 흔히 ‘연기의 구루(The Smoke Guru)’로 불린다. 불꽃과 화약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각종 에어쇼를 비롯해 다양한 산업 분야를 위한 연막 발생 장치를 제작해 왔다. 하지만 그의 삶의 여정에는 찬란한 순간과 불행한 사건이 뒤섞여 있다. /김진영

작가 역시 이 모든 작업을 밀러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한 불꽃 기술자의 평생에 걸친 작업과 그 이후 찾아온 구원과 속죄를 강렬하게 증언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한 예술가의 초상, 경이라는 감정 구조

이 책은 단순한 인물 다큐멘터리를 넘어선다. 책은 극적인 폭발과 연기 장면을 한 축에, 정적인 인물, 풍경 사진을 다른 한 축에 두고, 실험적 이미지와 기록적 사진을 혼합해 하나의 시각적 리듬을 구성한다. 이 리듬은 독자로 하여금 이미지 스펙터클에 빠져들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게 한다. 

독자는 화려한 불꽃 뒤에 고된 작업을 이어가는 밀러의 모습을 함께 보게 된다. 이미지 속 불꽃은 찰나의 절정을 보여주지만, 그 절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반복되는 실험과 노동 그리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상의 축적이다. 

이로써 책은 시각적 쾌감에 머무르지 않고, 관람자가 자연스럽게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감탄하는 장면은 누구의 시간과 몸을 대가로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그 대가는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는 것인가.

‘경이의 마법사’는 한 개인의 초상인 동시에, 경이라는 감정 구조를 해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감탄하는 불꽃과 연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그 배후에는 어떤 위험과 책임이 자리하는가. 

작가의 사진은 밀러의 작업을 세상에 소개하는 통로였지만, 동시에 그를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게 한 계기가 됐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책은 한 예술가의 삶과 작업이 막을 내리는 순간을 알린 조용한 장송곡처럼 느껴진다. 불꽃 기술자의 삶을 극적으로 미화하지도, 도덕적으로 단정하지도 않는다. 대신 화려한 불꽃 뒤에 가려진 한 개인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한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