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사의 현장은 유독 안전이 강조됐다. 초고압·고온 공정이니 그럴 만했다. 서슬이 퍼런 공장장은 안전 수칙을 위반하는 직원의 무릎을 까기도 했다. 그래도 중간 리더는 지혜로웠다. 그는 직원이 안전 행동을 어기면 앞뒤 공정을 칠판에 그리게 했다. 직원 자신의 행동이 전후 공정에 어떤 위험을 미치는지 자연스럽게 알도록 한 것이다. 전체 공정을 못 그리면 그제야 벌을 내렸다. 사실 벌이라기보다 휴가 취소처럼 직원이 원하는 보상을 거두는 방식이었다.
설비 대(大)교체가 예정된 새해를 앞두고 공장장은 다른 방침을 추가했다. 수명이 5년인 설비를 1년 더 쓰기로 한 것이다. 설비 교체 비용과 몇 개월 공장 가동 중지의 손실을 줄여 생산성을 20% 이상 높이는 목표를 세운 셈이다.
그때부터 중간 리더는 예민해졌다. 겉으로는 ‘원더풀 코리아’ 같았지만, 여기저기 계기판에서 위험 신호가 떴다. 이런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직원에게 중간 리더는 호통치기 시작했다. 잠재 위험에 대한 지식이 얕은 부하들은 ‘상사가 까탈스럽게 변했다’고 수근댔다.
중간 리더는 안전과 생산성 사이에서 탈진(burn-out) 징조를 보였고, 나름의 실무 대책을 마련했다. 압력을 낮추거나 프리미엄 촉매를 쓰는 것이다. 실제로는 변칙에 가까웠다. 압력을 낮추면 생산량이 줄고, 비싼 촉매를 쓰면 비용이 올랐다. 전체를 점검해 보니 설비 연장의 실익은 미미한 반면, 조직 문화만 훼손됐다. 필자를 포함한 자문단은 조화되기 어려운 두 목표 충돌을 지적했고, 공장장에 대한 문책성 인사 조처 후 현장은 정상을 되찾았다.
살다 보면 두 가치가 상충하는 일이 흔하다. 좋은 가치를 모두 취하고 싶지만, ‘상충’이라는 표현처럼 둘을 함께 취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애초에 조화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성장과 분배를 다 취하겠다고 한 것이 오히려 갈등만 키우는 장면이 그렇다.
심리학에도 지속되는 논제가 있다. 인간 행동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상황의 힘으로 만들어지는가. 정답은 상호작용이겠지만, 현실의 의사 결정 앞에서는 둘 중 하나를 취해야 한다.
무엇이 맞다고 하기 어려운 다원화된 시대가 되었지만, 진리가 없다거나 착각으로 몰면 곤란하다. 우선순위를 취할 수는 있다. 인재를 찾는 경영자의 경우, ‘타고난 특성’을 중시하면 그런 인재를 채용해야 하고, ‘만들어지는 힘’을 믿으면 교육체계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 그런 판단의 근본 가정이 결국 인간관이다.
경영관, 인간관, 세계관 같은 관점에는 늘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가 따라온다. 압축 성장을 해온 한국은 양립할 수 없는 것까지 압축해 넣어왔다. 성과도 있었지만, 여유가 생긴 지금은 피로가 쌓였다. 저출산 문제 역시 그런 피로 사회의 결과일 게다. 이제는 중요한 것부터 우선순위를 세우고, 하나씩 취할 여유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도 그렇다. 기업의 가치 체계에서 이윤이 핵심이어도, 이제는 워라밸을 삐딱한 사시(斜視)로 볼 일이 아니다. 생산성을 위한 휴식이라는 목적 중심의 휴식 개념도 넘어야 한다. 인간은 본래 휴식하면서 세상의 원리를 깨닫는다. 조물주도 에덴동산의 인간을 그렇게 창조했다고 한다. 가치가 상충하지 않는 일터의 여유는, 낙원의 회복을 꿈꾸는 힘이 아닐까.
리더가 그 회복을 돕는 순간, 조직에는 통찰력이 응축된다. 잠시 생활이 어려워도 돌이켜 보면 늘 메시지가 남는 성장통이었다. 정년 연장처럼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영역이 커질수록 상충하는 가치를 하나씩 푸는 지혜가 필요하다. 100년 전 일터의 심리학이 출발하며 천명했던 신조는 지금도 유효하다. ‘모든 인간은 매일 일하면서 사람다워야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