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은 애당초 분명했다. 처음 병을 따서 한 입 먹는 순간, ‘하루 지난 소스’ 같은 맛이 나도록 하는 것. (중략) 이건 이웃집 이탈리아 할머니가 종일 정성껏 끓여낸 소스 맛이 아니다.”
이것은 미식 가이드 잡지에 실린 냉정한 음식 평론가의 별점 한 개짜리 리뷰 일부가 아니다. 틀림없이 스파게티 소스 개발사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려둔 제품 홍보 문구다. 노이즈 마케팅인가. 사실 이 소스는 미국의 전설적 래퍼 에미넘이 운영하는 ‘엄마표 스파게티(Mom’s Spaghetti)’가 2023년 출시한 제품이다.
성공한 래퍼는 왜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어 파는가. 저 소스는 왜 ‘흑백요리사’나 미식이 아닌 B급, C급을 지향하나. 2021년 출범한 엄마표 스파게티의 주재료는 시칠리아의 토마토가 아니다. 다름 아닌 한 래퍼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다. 이류 음식을 지향하는 저 소스가 출시 몇 시간 만에 ‘완판’된 것도 외려 그 때문이다.
에미넘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빈민가에서 자랐다. 그 이야기는 에미넘이 주연한 자전적 영화 ‘8마일’과 그 주제곡 ‘Lose Yourself’에 압축해 담겼다. 에미넘은 흑인이 주도하는 힙합계에서 백인이란 이유로 차별받았다. 게다가 그는 더럽게 가난했다. 당장 시내 클럽에서 열리는 랩 경연에서 우승하는 게 취미가 아닌 생계의 절박한 수단이 됐다. 그래서 ‘Lose Yourself’의 도입부는 성공의 부담으로 초긴장 상태인 초짜 래퍼의 실감 나는 무대 출정기다.
‘그의 손바닥엔 땀이, 무릎은 떨리고, 팔은 무겁지/ 윗도리엔 이미 토 자국이, 엄마표 스파게티⋯”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랩 곡으로서 최우수 주제가상을 거머쥔 ‘Lose Yourself’는 이렇게 에미넘의 삶의 주제가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입지전적 성공을 거둔 에미넘이 2021년 고향 디트로이트 시내에 오픈한 것이 바로 엄마표 스파게티 매장이다.
엑스재팬 리더 요시키는 의류 사업 진출
지난 글에서 억만장자가 된 가수에 대해 다뤄봤다. ‘쌍억만 부부’ 제이지, 비욘세 커플을 비롯해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적잖은 이가 콘서트나 음악 관련 상품 판매, 권리 매각 등을 통해 천문학적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자신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십분 이용해 비음악 사업에 나서 성공한 이도 많다.
1970년대 음악계 ‘굿즈’ 산업을 선도한 록 밴드 키스도 이미지와 스토리를 상품화한 케이스다. 티셔츠부터 도시락 가방까지, 이들이 판 수많은 아이템 중엔 뜻밖에 커피도 있다. 2006년 사우스캘리포니아주에 커피 전문점 ‘키스 커피하우스’를 연 것. 이들의 모토는 ‘우리의 폭발적 등장 이전에 커피 시장에는 아직 성깔 있는 커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메뉴명은 키스의 기괴한 분장과 무대장치만큼이나 자극적이다. 키스 프로즌 로쿠치노(Kiss Frozen Rockuccino), 디먼 다크 로스트(Demon Dark Roast), 아이스 로키아토(Iced Rockiato), 로켓 라이드 에스프레소(Rocket Ride Espresso) 등 다양한 풍미의 커피 외에도 시나몬 롤오버(Cinnamon Rollover), 그라울러(Growler), 디프 프라이드 트윙키스(Deep Fried Twinkies·바싹 튀긴 얼간이들) 등의 씹을 거리까지 준비돼 있다. 카페인을 뺀 커피에는 ‘디카프(Decaf)’ 대신 ‘언플러그드(Unplugged)’라는, 매우 음악적인 명명을 했다. 매장 안팎은 키스를 상징하는 대형 부츠 모형과 로고, 밴드 사진, 희귀 소장품 등으로 채웠다.
가까운 일본에는 요시키가 있다. 록 밴드 엑스재팬의 리더이자 드러머. 기묘한 분장, 요란한 사운드로 유명한 엑스재팬에서도 요시키는 기묘함, 신비감의 중추였다. 성별도, 국적도, 혈액형도 ‘X’로 표기했던 그의 프로필부터가 엽기였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요시키를 만나 인터뷰했다. 역시 “날 (소속이나 혈통 따위가 아닌) 음악으로만 평가해 주길 바란다”며 알 수 없는 웃음을 빙그레 지었던 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2011년, 요시키는 의류 사업에 뛰어든다. 브랜드 이름은 ‘요시키모노’. 많은 앨범 표지와 화보를 통해 모호한 성별의 모델로 활약한 요시키에게 이보다 ‘찰떡 궁합’인 사업 아이템이 있을까. 더구나 엑스재팬은 전통 가부키를 미래적으로(더 정확히는 디스토피아적으로) 뒤튼 듯한 화장과 패션으로 유명했다. 요시키모노는 일취월장했다. 도쿄 걸스 컬렉션의 런웨이에서 출발해 도쿄 패션 위크로 나아갔고, 2020년에는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기모노 특별전에도 초청됐다. 도쿄 국립 박물관의 기모노 회고전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면, 세계적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부터 ‘마블의 아버지’ 스탠 리의 작품까지 협업자를 넓혔다.
사업 아이템과 음악이 어우러져 시너지 창출…팬심 굳건
에미넘, 키스, 요시키의 예를 보면 비욘세, 리애나, 설리나 고메즈처럼 뷰티 사업에 뛰어들거나 제이지, 존 레전드처럼 주류 사업에 뛰어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것을 보여준다. 에미넘, 키스, 요시키의 사업은 저들만큼 ‘대박’은 아니었다. 사업 아이템부터가 대중적 확장성이나 매출 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업은 단기적 성패로는 계산할 수 없는 미래 가치를 창출한다. 음악가의 삶 이야기와 시너지를 일으키며 당장의 연간 매출로는 측정하기 힘든 효과를 거둔다. 팬덤의 충성도를 높이고 자기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굳건히 한다.
예술가여, 미래에 무엇을 팔 것인가. 먼저 이미지와 스토리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뒤, 그 이미지와 스토리에 기반한 아이템을 구상하고 론칭해야 한다. 큰 성공을 못 거둔다 해도 좋다. 무형의 가치, 장기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