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마쿠하리에서 열린 '케어쇼재팬 2026' 전시장. /사진 최인한
도쿄 마쿠하리에서 열린 '케어쇼재팬 2026' 전시장. /사진 최인한

2026년 일본은 초고령사회 21년째를 맞았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고령자를 겨냥한 케어푸드(care food) 시장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케어푸드는 특별한 영양 공급이 필요한 노인이나 환자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넣어 만든 음식을 뜻한다. 지난 2월 말 일본 수도권 유료 노인홈(한국 실버타운) 두 곳과 ‘케어쇼재팬(Care Show Japan) 2026’ 전시장을 찾아 고령자용 식품과 식당의 최신 동향을 살펴봤다. 

최인한 -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미래에셋증권 일본리포트 연재 중,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미래에셋증권 일본리포트 연재 중,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레스토랑 같은 고령자 시설 구내식당

2월 25일 지바현 사쿠라시에 있는 ‘유유노사토 사쿠라’를 방문했다. 1970년대에 문을 연 고급 유료 노인홈의 선구적 시설이다. 수도권 부유층 고령자를 유치하기 위해 만든 곳인 만큼 오픈 당시 일본 최고 실버타운으로 꼽혔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로 둘러싸인 거주 시설은 고급 리조트타운처럼 아름다웠다. 반세기가 지나 건물은 낡았지만, 내부에 들어서자, 입주자를 위한 다양한 편의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수영장, 피아노가 놓인 고급스러운 공연장, 책이 빼곡한 도서관, 각종 취미 교실 등이 있다. 외부인에게 잘 공개하지 않는 구내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이날 메뉴는 라멘이었는데, 도쿄 시내 유명 라멘집 수준 이상으로 식단이 깔끔하고 장인의 손맛이 느껴졌다. 회사 관계자는 “고령자 음식이라 염분 등 자극적인 소스를 사용하지 않지만, 어르신 입맛에 맞도록 정성을 다한다”고 했다. 유유노사토 사쿠라는 다양한 식단과 영양 밸런스에 특히 신경을 쓴다. 일반 고령자용과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용 두 개의 식당을 운영 중이다. 

솜포케어, 식당으로 입주자 만족도 높아

이날 오후 찾은 ‘솜포케어 라비레 후나보리’와 데이서비스센터(주야간 보호센터) 내 식당은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였다. 후나보리 노인홈은 도쿄 변두리 주택가여서 시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목재로 만든 건물과 식당은아주 고급스러웠다. 사이토 가즈히로 솜포케어 팀장은 “모든 입주자에게 ‘마음을 담은 맛’을 제공한다는 게 식당 운영의 기본 방침” 이라고 소개했다. 셰프와 영양사가 식당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입주자에게 곧바로 제공한다. 주방은 개방형으로 만들었고, 식당 입구에 1개월 치 메뉴판이 걸려 있다. 데이서비스센터는 ‘레스토랑 같은 데이 서비스’를 식당 콘셉트로 내세운다. 점심 메뉴는 ‘샐러드-수프-채소-빵(또는 밥)-메인 요리-디저트-커피(또는 홍차)’ 순서로 나오는 코스 요리다.

개호식품협의회, 케어푸드 성장 이끌어

일본 경제는 20년 이상 장기 침체를 겪고있지만, 케어푸드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케어푸드는 △고령자식(비교적 건강한 고령자 대상 식품) △개호식(介護食∙장기 요양 등급자 대상 식품) △환자식(당뇨, 신장병 등 환자용 식품) 등으로 구성된다. 개호식이 일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8년이다. 식품 업체 큐피가 일본 최초 시판용 개호 식품을 개발했고, 이듬해에 소화 기능이 약한 고령자용 식품 ‘큐피 야사시이 곤다테’를 선보였다. 그전까지 고령자가 있는 가구는 유아용 식품을 대량 구입해 ‘고령자식’으로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유아용 식품은 염분을 뺀 데다 맛도 없어 성인용 식품으로 부족했다. 당시 개호식 제품이 나오자마자 고령층 소비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큐피 등 6개 식품 업체는 2002년 ‘일본개호식품협의회’를 발족하고, 다양한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먹기 쉬운 식품을 유니버설 디자인푸드(UDF)로 개발했다. 이 협회는 개호식을 강도 및 점도 기준으로 △쉽게 씹을 수 있음 △잇몸으로 먹을 수 있음 △혀로 먹을 수 있음 △ 씹어 먹지 않아도 좋음 등 네 개로 분류했다. 현재 97개 식품 업체가 일본개호식품협의회에 가입했고 2000개 이상 식품이 UDF에 등록돼 있다.

‘케어쇼 재팬’, 토털 식당 운영 서비스 눈길

도쿄 마쿠하리에서 열린 케어쇼재팬 2026 전시장을 2월 25일 방문했다. 케어푸드 시장 동향을 보기 위해 ‘메디케어푸드전’을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고령자 시설의 급식 운영 변화에 따라 케어푸드 시장도 달라지고 있다. 인력 부족과 인건비 및 식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고령자 시설에서 자체 식당 운영을 줄이고, 위탁 운영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급 노인홈이나 대기업을 제외하면, 다수 시니어리빙 업체가 식품 회사로부터 조리된 식품을 공급받거나 외부에 식당 운영을 맡긴다. 특히 식품 회사가 운영하는 ‘센트럴키친’에서 만든 식품이나 식당 운영 솔루션을 도입하는 곳이 많다. 식품 업체 닛토베스트는 고령자 시설의 급식 효율화를 위한 신제품과 운영 솔루션을 선보였다. 라쿠데리패키지는 급식 ‘식단 작성-식자재 조달-조리’ 등을 효율적으로 종합 관리하는 패키지 상품이다. 본사의 관리 영양사가 28일 주기(약 1개월분)로 메뉴를 작성한다. 대표 식품인 ‘냉동 죽 세트’ 는 보통 사람이 먹는 일반 죽부터 환자가 먹는 부드러운 죽까지 다양한 강도를 갖췄다. 무스식 제품도 있고 덮밥·카레·면류 등 메뉴도 다양하다. 회사 관계자는 “고령자 시설의 인력 부족과 입주자의 만족도 향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급식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케어푸드, 주요 타깃은 후기 고령자

고령자의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전기 고령자(65~74세)보다 후기 고령자(75세 이상) 증가가 케어푸드 시장 확대와 특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본에서는 2025년 기준 후기 고령자가 2124만 명을 기록하면서 전기 고령자(1495만 명)보다 훨씬 많다. 같은 기간 80세 이상도 1289만 명(총 인구의 10.5%)에 달한다. 후기 고령자는 소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씹기 쉽고 목 넘김이 쉬운 음식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개호식을 포함한 케어푸드 시장은 2017년 1조3988억엔(약 13조1320억원)에서 2028년에 1조7000억엔(약 15조9460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초고령사회 2년째를 맞은 우리나라도 케어푸드 시장이 본격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Plus Point

[기고] 류재광 간다외대 외국어학부 교수
고령 인구 1000만 시대, 한국형 케어푸드 변곡점

류재광 - 일본 간다외대 외국어학부 교수
류재광 - 일본 간다외대 외국어학부 교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한 분야는 단연 케어푸드다. 80세 이상 고령 인구가 1300만 명에 육박하면서 신체 기능이 저하되어도 먹는 즐거움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욕구가 시장의 강력한 엔진이 됐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일본 케어푸드 시장 규모는 1조5555억엔(약 14조5906억원)을 넘어섰고, 매년 견고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본 케어푸드의 핵심은 ‘식감의 과학’에 있다. 잇몸이나 혀만으로 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원재료의 형태와 식감을 그대로 살려낸 연화식(soft food) 기술은 이미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과거 케어푸드가 단순한 영양 보충제에 그쳤다면 지금은 당뇨, 고혈압, 신장 질환 등 만성질환별 맞춤형 식단은 기본이다. 여기에 장보기가 어려운 재택 고령자를 위한 고품질 가정간편식 배달 서비스가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요양 현장의 실무적 변화다.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한 일본 장기 요양 기관은 직접 조리 대신 반조리·완조리 팩을 적극 도입했다. 전문 조리사 없이도 간단히 데우는 공정만으로 수십 명에게 균일한 맛과 영양을 제공하는 방식이 일반화된 것이다. 이는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위생 사고까지 방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제 한국도 고령 인구 1000만 명 시대에 진입했다. 그동안 병원 내 환자식에 머물렀던 국내 케어푸드 시장은 이제 노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산업으로 진화해야 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일본의 사례가 증명하듯 지금은 식품 기업의 과감한 기술혁신과 서비스 고도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고령자의 먹는 즐거움이 복원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초고령사회 돌봄은 완성된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