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어' 포스터. /사진 아마존 스튜디오
영화 '에어' 포스터. /사진 아마존 스튜디오

2007년 1월 9일(현지시각), 샌프란시스코 무대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애플은 전화기를 다시 발명합니다.” 당시 휴대전화 시장의 주도권은 노키아가 쥐고 있었고, 기업용 스마트폰의 상징은 블랙베리였다. 그에 비해 애플은 이동통신 분야에서 사실상 신인이었다. 키보드가 없고 배터리 수명이 짧다는 우려가 컸으며, 가격도 기존 휴대전화보다 비쌌다. 그럼에도 아이폰은 출시 첫해 140만 대가 팔렸고, 3년 뒤에는 연간 4000만 대를 넘어섰다. 불과 몇 년 만에 시장의 강자였던 노키아와 블랙베리는 급격히 존재감을 잃었다. 도대체 애플은 어떻게 불리한 조건에서 기존 강자가 지배하던 시장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었을까.

1984년의 나이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농구화 시장은 컨버스가 54%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아디다스가 29%로 그 뒤를 이었으며, 나이키는 17%로 한참 뒤처져 있었다. 이 때문에 나이키 내부에서는 농구화 사업 철수를 논의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선택하는 길은 대개 보수적이다. 예산을 여러 선수에게 나눠 투자해 위험을 분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나이키는 달랐다. 벤 애플렉 감독의 영화 ‘에어(Air, 2023)’는 바로 그 순간을 다룬다.

신재훈- 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서울대 경영학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 MBA, 서강대 경영학 박사, 현 리버스톤 자산운용 사장, '비욘드 시네마' '비욘드 스트래티지' 저자
신재훈- 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서울대 경영학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 MBA, 서강대 경영학 박사, 현 리버스톤 자산운용 사장, '비욘드 시네마' '비욘드 스트래티지' 저자

한 선수에게 모든 것을 걸다

나이키 농구 사업부의 회의실에서 마케팅 책임자 롭 스트래서(제이슨 베이트먼)는 1984년 드래프트 명단을 펼쳐 놓고 영입할 선수에 대해 의견을 묻는다. 그러나 참석한 누구도 확신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 당시 나이키는 직원의 25%를 해고한 직후였다. 최고경영자(CEO) 필 나이트(벤 애플렉)는 스카우트 담당인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에게 농구화 사업의 철수 가능성을 내비친다.

그날 밤 바카로는 대학 농구 경기 비디오를 분석하며 영입할 선수를 고민한다.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 장면을 반복해서 돌려 보던 그의 표정은 어느 순간 확신으로 굳어진다. 공중에서 멈춘 듯한 점프, 순간을 장악하는 침착함, 관중을 끌어당기는 에너지. 그는 조던이 단순한 유망주가 아니라 새로운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선수라고 판단한다. 

문제는 조던이 나이키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조던은 아디다스를 선호했고, 그의 에이전트 역시 나이키를 협상에서 배제하려 했다. 당시 업계 관행은 여러 선수에게 예산을 분산투자하는 방식이었기에, 한 선수에게 모든 것을 거는 전략은 위험해 보였다. 처음에는 나이트도 예산 제약과 이사회의 반대 가능성을 언급하며 기존 방식 유지를 주장한다. 그러나 바카로는 확신을 굽히지 않는다.

결국 바카로는 회사의 절차를 어겨가며 조던 가족을 직접 찾아간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자택에서 조던의 어머니 델로리스(비올라 데이비스)와 마주 앉은 그는 화려한 계약 조건 대신, 조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이야기한다. 이후 나이키 본사를 방문한 조던 가족에게 바카로는 조던이 스포츠 역사에서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역설하며, 단순한 광고 모델이 아니라 조던의 이름을 건 독립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설명한다. 이에 더해 미국프로농구(NBA) 규정을 위반한 농구화의 색상 때문에 벌금이 발생하면 회사가 전액 부담하겠다고 제안한다. 며칠 후, 델로리스는 나이키의 제안에 한 가지 조건을 덧붙인다. 조던의 이름을 딴 신발 매출의 일정 부분을 조던에게 달라는 것이다. 전례 없는 요구였지만 나이키는 이마저 받아들인다. 그렇게 탄생한 ‘에어 조던’의 첫 해 판매액은 1억6200만달러(약 2400억원)였고 이후 연 매출은 40억달러(약 5조9400억원)에 달했다. 

1 영화 '에어' 속 선수들의 영상을 분석하는 바카로. 2 에어 조던 신발. 3 바카로와 조던의 어머니 델로리스의 만남. /사진 아마존 스튜디오
1 영화 '에어' 속 선수들의 영상을 분석하는 바카로. 2 에어 조던 신발. 3 바카로와 조던의 어머니 델로리스의 만남. /사진 아마존 스튜디오

명확한 목표, 전략의 시작

전략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명확한 목표가 필요하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전략은 수단의 나열에 머물고, 실행 단계는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다. 누구는 시장점유율을 우선시하고, 누구는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비용 절감을 주장한다면 전략은 방향을 잃고 조직은 흔들린다. 반대로 목표가 선명하면 모든 의사 결정의 기준이 분명해지고, 자원과 노력이 한 방향으로 모인다. 

헨리 민츠버그는 전략을 의도한 전략(in-tended strategy), 실행된 전략(realized strategy) 그리고 실행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창발적 전략(emergent strategy)으로 구분했다. 목표가 분명하면 실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창발적 요소도 의도한 전략을 보강하는 역할을 하지만, 목표가 모호하면 창발적 요소는 본래의 전략 방향을 변질시킨다. 그로 인해 실행된 전략은 의도한 전략과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나이키의 경우, 에이전트의 반대, 내부의 회의론, 전례 없는 로열티 조건, 규정 위반 논란은 모두 실행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창발적 요소였다. 그러나 ‘조던을 반드시 영입한다’는 목표가 명확했기에 이 변수는 끝내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계약을 완성하고 브랜드를 강화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었다. 

명확한 목표가 만든 반전

명확한 목표로 성과를 거둔 사례는 또 있다. 2006년 일론 머스크는 이른바 ‘비밀 마스터 플랜(Secret Master Plan)’을 공개했다. 고급 전기 스포츠카 로드스터로 시작해 중형 세단 모델 S를 내놓고, 대중형 모델 3로 확산하겠다는 로드맵이었다. 당시 창업 3년 차에 불과했던 테슬라는 자금난과 기술적 불확실성으로 회의적 시선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명확한 목표는 2012년 모델 S 출시와 2017년 모델 3 양산으로 이어졌고, 2023년 테슬라는 약 18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공급망 차질과 자본시장 불안이라는 변수에도, 로드맵이라는 명확한 목표 덕분에 전략은 방향을 잃지 않았다. 

아마존의 아마존웹서비스(AWS)도 같은 맥락이다. 2006년 아마존은 ‘세계 인프라의 전력망이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내걸고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자상거래 기업이 인프라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고, 초기 수익성이 낮아 투자 부담도 컸다. 그러나 목표가 선명했기에 갈피를 잃지 않았다. 그 결과 AWS는 2023년 매출이 약 900억달러(약 1337조원)에 이르고, 영업이익이 아마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사업이 되었다. 나이키, 테슬라, 아마존의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불확실성과 반대 속에서도 명확한 목표로 창발적 요소를 흡수하며 의도한 전략을 실행된 전략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나이키가 시장을 뒤집은 것은 조던을 중심에 두겠다는 명확한 목표로 조직 전체를 한 방향으로 모았기 때문이다. 에이전트의 거절도, 내부의 반대도, 전례 없는 로열티 요구도 그 목표 앞에서는 걸림돌이 아니라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애플도 다르지 않다. ‘전화기를 다시 발명한다’는 목표가 분명했기에, 키보드의 부재와 짧은 배터리 수명이라는 불안 요소도 그 목표 아래 흡수되었다. 

전략은 계산과 분석의 토대 위에 사람의 믿음과 확신이 모여야 비로소 힘이 생긴다. 구성원이 목표를 믿고 공유할 때 수치와 계획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집중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확하게 공유된 목표는 전략을 움직이는 근본 에너지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전에 ‘무엇을 위해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기준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 조직의 목표는 무엇인가. 구성원 모두가 그 목표를 명확히 이해하고 공유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전략을 다듬기 전에 목표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의도한 전략을 실행된 전략으로 만드는 힘은 바로 목표의 명확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신재훈 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