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도심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한 남자. 완벽하게 재단된 네이비 싱글브레스트 슈트 재킷 자락과 넥타이가 바람에 휘날린다. 머리에는 정중한 슈트와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낡은 베이스볼 캡을 뒤로 돌려 쓰고 있고, 등에는 잔스포츠의 빨간 백팩을 메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것을 기묘하게 조화시키는 이 매력적인 조합이 존 F. 케네디 주니어(JFK 주니어)의 아이코닉 룩이다.
지난 2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FX의 새로운 시리즈 ‘러브 스토리: 존 F. 케네디 주니어 & 캐롤린 베셋’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제작 때부터 이슈를 일으켰던 시리즈는 1990년대 뉴욕과 함께, ‘미국의 왕세자’로 불렸던 존 F. 케네디 주니어와 그의 아내 캐롤린 베셋의 1990년대 패션을 근사하게 복원해 냈다. 30년의 세월을 점프해 2026년에도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패션은 여전히 쿨하고 세련됐다. ‘러브 스토리: 존 F. 케네디 & 캐롤린 베셋’은 그의 데일리 룩이 ‘조용한 럭셔리’와 올드 머니 룩의 완벽한 레퍼런스임을 다시 깨닫게 한다.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미학을 정의하는 가장 정교한 단어는 이탈리아어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다.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스타일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듯, 혹은 거울조차 보지 않고 집을 나선 듯한 무심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를 의미한다. 그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보수적인 아이비리그 룩에 뉴욕이라는 거친 도시의 에너지를 이식한 스타일의 혁신가였다. 그가 슈트를 대하는 태도는 권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깨 패드를 제거한 언스트럭처드(unstruc-tured) 재킷, 소재의 질감이 살아있는 옥스퍼드 셔츠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은 가죽 로퍼 등은 그가 옷을 신분의 상징이 아닌, 자기 신체와 영혼을 감싸는 가장 편안한 도구로 여겼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느슨한 클래식’은 2026년 현재 남성복 시장을 지배하는 조용한 럭셔리와 올드 머니 룩의 원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아내 캐롤린과 만남은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스타일을 하나의 전설로 격상시켰다. 캘빈 클라인 홍보 담당자이자, 1990년대 미니멀리즘의 뮤즈인 캐롤린은 존의 클래식한 실루엣에 극도로 정제된 세련미를 더했다. 두 사람이 함께 뉴욕의 인도를 걷는 파파라치 컷은 그 자체로 당대 최고의 패션 화보이자, 2026년의 디자이너에게도 여전히 강력한 영감을 주는 무드 보드다. 캐롤린의 슬립 드레스와 존의 오버사이즈 코트, 혹은 두 사람 모두가 선택한 블랙 터틀넥과 데님 팬츠의 조화는 1990년대가 추구했던 미니멀리즘 미학의 정점이었다. 그들의 스타일은 서로를 보완하며 대칭을 이루었고, 패션이 개인의 취향을 넘어 타인과 깊은 연결과 조화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패션이 오늘날 다시 호출되는 배경에는 디지털 시대가 갈망하는 ‘진정성’이 자리하고 있다. 정보가 과잉되고 트렌드가 매 순간 교체되는 시대에 로고 크기나 화려한 패턴 없이도 소재의 본질과 실루엣만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법을 가르쳐 준다. 묵직한 울 코트의 질감, 베이직 면 셔츠 그리고 손목 위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빈티지 워치는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클래식에 있음을 말해준다. 그는 옷과 함께 나이 들고 주름지는 과정을 즐겼으며, 세월의 흔적조차 자기 스타일 일부로 흡수했다.
너무 일찍 떠나버렸지만 많은 것을 남기고간,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남성에게 옷을 입는다는 의식과 태도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그의 데일리 룩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스타일의 성전과 같다. 스타일의 길을 잃을 때마다 돌아가 확인해야 할 우아함의 기원이라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