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방향으로) 검룡소 용틀임폭포. 바람의 언덕. 철암 역두 선탄장. /사진 최갑수
(시계 방향으로) 검룡소 용틀임폭포. 바람의 언덕. 철암 역두 선탄장. /사진 최갑수

흔히 탄광 도시로만 기억하지만, 태백은 예상보다 훨씬 풍요로운 곳이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 신비로운 동굴, 고생대 박물관, 석탄 산업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골목까지. 이 모든 것을 1박 2일 안에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태백을 특별하게 한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는 여행지이면서, 어른들에게는 잊힌 시간을 되새기는 여정이기도 하다.

민족의 두 젖줄이 시작되는 고원

태백 여행의 첫걸음은 검룡소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514㎞를 달려 서해로 향하는 한강의 긴 여정이 바로 이 작은 샘에서 출발한다. 발원지라고 해서 험준한 산세를 각오할 필요는 없다. 주차장에서 비포장길을 따라 20분쯤 느릿하게 걸으면 닿는, 다정한 길이다. 피나무와 물푸레나무가 터널을 이룬 호젓한 숲길로, 아이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더없이 좋다.

검룡소 물은 바닥의 조약돌까지 선명하게 들여다보일 만큼 맑다. 하루 수천t의 지하수가 석회 암반을 뚫고 솟구치며 사계절 내내9도 안팎의 온도를 유지한다. 샘 아래로는 ‘용틀임폭포’로 불리는 와폭이 이어진다. 서해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암반을 오르며 몸을 비튼 흔적이 이 폭포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층이 깎인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이야기가 단순한 옛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최갑수 - 시인,여행작가,'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밤의 공항에서' 저자
최갑수 - 시인,여행작가,'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밤의 공항에서' 저자
놀라운 것은 이 고원에 낙동강의 뿌리도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시내 중심의 황지연못은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의 발원지로,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돼 있다. 상지·중지·하지 세 연못으로 구성되며, 상지의 깊은 수굴에서 하루 약 5000t의 물이 솟아난다. 연못 둘레는 공원으로 꾸며져 시민의 휴식 공간이 됐다.

검룡소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해발 1304m 매봉산 ‘바람의 언덕’이 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경사의 배추밭 능선 위로 직경 52m짜리 풍력발전기 8기가 천천히 돌아가는 풍경이 이국적이다. 그 직전 삼수령 피재는 한강, 낙동강, 동해로 흐르는 오십천, 세 강의 발원지가 나뉘는 분기점이다. 작은 주차장과 정자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검은 노다지의 기억, 철암

태백 주민은 오랜 세월 탄광에 의지해 살아왔다. 석탄은 태백이 주민에게 내린 축복이었다. 정부가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을 시행하기 전까지 약 50개 광산이 운영됐고, 한때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640만t을 생산했다. 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지역 경기가 활황이었다.

철암은 태백을 상징하는 광산촌이다. 현재는 작은 마을이지만 과거 인구 3만 명에 달하던 큰 마을이었다. 철암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쓸쓸하다. 회색빛 낡은 건물과 한산한 거리, 검은 선탄장이 어우러진 풍경은 석탄 산업 전성기인 1970~80년대에 멈춘 듯하다.

(왼쪽부터)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용연동굴 /사진 최갑수
(왼쪽부터)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용연동굴 /사진 최갑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을 중앙의 철암 역두 선탄장이다. 7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상징물로, 1935년 지어져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 시설이며, 국가등록문화재 제21호로 등재돼 있다. 건물에는 지금도 석탄 가루가 쌓여 있다. 이 검은 가루가 한때 ‘검은 노다지’였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여기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안성기와 박중훈이 빗속에서 싸우는 장면을 찍었다. 선탄장 맞은편에는 옛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는 4~5층 건물이 늘어서 있다. 지금은 철암탄광역사촌으로 재구성돼 박물관과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곳곳을 둘러보며 탄광촌의 생활상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남쪽 신설교에서는 철암 천변의 탄광촌 상징인 ‘까치발 건물’ 11채를 관찰할 수 있다. 까치발 건물은 부족한 주거 면적을 확보하려고 하천 바닥에 목재나 철재 지지대를 세워 집을 확장한 것이다. 물에 기둥을 박아 지은 수상가옥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철암역과 광산이 내려다보이는 삼방동 일대는 벽화마을로 변신했다. 주인 떠난 빈집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지만, 담벼락에빛과 색이 깃들고 관광객이 찾아들면서 마을은 온기를 되찾았다.

아이도 어른도 즐거운 태백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 명소다. 전국 유일의 고생대 지층 위에 세워진 전문 박물관으로, 삼엽충·두족류 화석과 공룡 화석, 입체 디오라마가 전시돼 있다. 지하 1층에는 화석 발굴 체험과 30억 년 지층 파노라마 등 다양한 체험 공간도 운영한다. 화전동의 용연동굴도 꼭 들러야 한다. 국내 동굴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920m에 자리하며, 1억5000만~3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길이 1.5㎞에 석순·종유석·석주가 가득하고, 폭 50m 길이 130m의 광장과 인공 분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여름에도 내부 온도가 10도로 유지돼 시원하다.

태백의 맛

태백을 찾았다면 연탄불 갈빗살을 먹어봐야 한다. 서울의 갈빗살이 생갈비를 자르고 남은 자투리라면, 태백에서는 처음부터 갈빗살 위주로 정형하기 때문에 육질과 육즙이 다르다. 연탄 불향이 배어든 고소함에 된장국에 소면까지 말아 먹으면 한 끼가 완성된다.

물닭갈비도 별미다. 볶음식으로 유명한 춘천닭갈비와 달리 여러 식재료를 쇠판에 넣고 육수를 부어 끓인다. 전골처럼 국물이 자작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태백에는 일명 물닭갈비라고 불리는 닭갈비 요리점이 많다. 양념한 닭고기에 육수를 부어 끓여 먹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춘천닭갈비보다 기름기가 적고 맛이 담백하다.

여행수첩

물닭갈비. /사진 최갑수
물닭갈비. /사진 최갑수

일출을 보고 싶다면 오투리조트를 지나 만항재로 오르는 도로를 이용하자. 해발 1330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도로다. 이른 새벽 능선을 붉게 물들이는 해돋이를 만날 수 있다. 태백을 찾은 날 끝자리가 5일이라면 통리장을 놓치지 말 것. 열흘마다 서는 이 전통시장에는 삼척과 울진에서 올라온 어물전부터 농산물·약초까지 재래시장의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태백닭갈비 원조는 황부자네닭갈비, 김서방네 닭갈비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30여 년 전부터 광부에게 닭갈비를 팔아왔다.

태백닭갈비는 석탄 산업이 번성했던 시절 광부가 즐겨 먹던 음식이다. 얼큰한 국물이 있는 닭갈비에 소주 한잔. 그것은 태백 광부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이 요리법은 태백에서 식당을 하던 어느 아주머니가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춘천식 닭갈비는 메인 메뉴를 충분히 즐긴 후 사리를 추가하는 방식이지만, 태백식 물닭갈비는 애초 사리를 추가해 주문하는 것이 특이하다. 탄광에서 나와 식사 겸 반주를 위한 자리였을 테니 우동 사리 등으로 우선 급한 허기를 달랜 광부의 주문 방식,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갑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