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스닥 시장을 1·2부 리그 체계로 나누기로 했다. ‘성숙 기업’과 ‘성장 기업’으로 나눠 승강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 이름을 공개해 주가 부양을 유도하기로 했다. 모회사가 상장된 상태에서 자회사를 상장하는 ‘중복 상장’도 원칙적으로 금지해 주가 하락으로 일반 주주가 피해를 보는 일도 방지하기로 했다.
이억원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위원장은 3월 18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자본시장 체질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
코스닥 이중 리그 체계 추진
이 위원장은 이날 코스닥 시장을 성숙한혁신 기업 중심의 ‘프리미엄’ 구간과 성장 단계에 있는 ‘스케일업’ 기업 구간으로 나누는 이중 리그 체계를 공개했다. 현재 코스피가 대형·성숙 기업 중심 시장이라면, 코스닥은 기술·성장 기업 중심 시장으로 초기 기업부터 중견기업까지 폭넓게 포진해 있다. 정부는 다양한 규모의 중소·중견기업이 스케일업 과정에서 불이익받지 않도록 2단계로 나눠 승강제를 적용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상위 시장으로 이동하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하위 시장으로 내려가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부실 우려 기업은 별도 관리군으로 분리해 시장 신뢰를 높이기로 했다.
또 프리미엄 시장에 최상위 대표 기업 중심의 지수를 신규 개발하고 연계 상장지수펀드(ETF)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맞춤형 기술 특례 상장 제도를 확대해 기존 바이오·인공지능(AI)·우주·에너지에 더해 올해 첨단 로봇, K-콘텐츠, 사이버 보안 등 6개 분야를 추가한다.
정부는 앞서 2002년과 2011년에도 비슷한 방안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다 2022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증시를 3단계로 재편하면서 2024년 하반기부터 이중 리그 체계 추진을 본격화했다.
코스닥은 초기 성장 기업부터 성숙 기업까지 하나의 시장에 섞여 있어 기업 간 편차가 크고, 이에 따라 시장 전체의 가치 평가가 낮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20년간 신규 상장 기업은 1300곳이 넘었지만, 퇴출 기업은 400여 곳에 그쳤고, 시가총액은 8배 넘게 늘었지만, 지수 상승은 1.6배에 머물렀다. 개인투자자 비율도 80~90%에 달한다. 체력은 따라오지 못한 채 기업 수만 늘어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과거 코스닥 시장을 대표하던 네이버, 카카오, 셀트리온 같은 기업이 코스피로 이전 상장하게 된 배경도 이런 한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한편에선 코넥스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코스닥 1·2부 구분이 실효성이 있느냐는 조심스러운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밖에 부실· 저성과 기업의 신속한 시장 퇴출을 위해 내년 6월까지 ‘상장폐지 집중 관리 기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중복 상장’ 막고, 저PBR 기업명 공개
금융 당국은 이른바 ‘쪼개기 상장(물적 분할 후 상장)’이 소액주주 권리를 훼손하고, 국내 증시 저평가를 낳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는 문제의식 아래 원칙적으로 중복 상장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성장성을 보고 회사에 투자했던 주주는 핵심 사업이 물적 분할돼 분리 상장하면 주식 가치가 하락하는 피해를 본다. 물적 분할은 기존 모회사 주주에게 주식이 배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카카오의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상장은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금융위는 올해 2분기 중 구체적인 중복 상장 심사 기준 제도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이날 “저PBR 기업에 대해 ‘네이밍 앤드 셰이밍(naming and shaming·이름 붙여 망신 주기)’ 방식으로 반기마다 리스트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PBR이 동일 업종 내 2개 반기 연속 하위 20%에 해당하면 한국거래소 밸류업 홈페이지에 공표되고, 종목명에는 ‘저PBR’이라는 태그가 부착되는 방식이다. PBR은 주가를 1주당 순자산(BPS)으로 나눈 값이다. 1 미만일 경우 기업의 시가총액이 청산 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의미로, 자산 대비 시장 평가가 과도하게 낮다는 신호다. 이는 저PBR에도 불구하고 상속 등 문제로 대주주가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하려는 관행을 개선하고 시장가치가 청산 가치에도 못 미치는 저평가 기업이 스스로 기업 가치 제고에 나서도록 채찍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PBR이 0.3~0.4밖에 안 돼서 당장 청산해도 2~3배 (이익이) 남는 게 비정상적이지 않나”라며 “이런 거래 시스템을 정리해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편하게 시장에 참가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고 했다. 금융 당국은 다만 기업 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수행하면 공표와 태그 표출을 일정 기간 면제해 기업의 자발적인 개선을 끌어내는 당근책도 내놨다.
이날 간담회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국내외 증시가 요동치는 가운데 열렸다. 이 대통령은 이날 한국 증시가 만성적으로 저평가받는 원인을 기업 지배구조 및 경영권 남용, 주가조작 등 불공정성, 지정학적 리스크, 산업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 등 크게 네 가지로 진단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중동에서 발발한) 전쟁 때문에 주가가 폭락했다가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데, 모든 일은 양면이 있다”며 “이럴 때야말로 필요한 조치, 개혁 과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단순한 증시 부양책을 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근본 원인을 뿌리 뽑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李 “주식 오늘 팔았는데 왜 돈은 모레 주나…”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왜 주식을 오늘 팔았는데 돈을 모레 주느냐는 얘기가 있다”며 ‘미수 거래’와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 필요하면 조정을 하는 의제 중 하나로 검토해 보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박용진 규제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의 의견을 인용하며 이 같이 직접 화두를 던졌다.
현재의 매매일(T)로부터 2거래일(T+2) 결제 주기는 과거 증권사가 주문을 모아 수기로 처리하던 관행과 수조원의 거래 데이터를 대조해 정산하는 물리적 시간 확보 차원에서 유지됐다. 주식 매수금의 일부만 증거금으로 내고 외상으로 주식을 사는 미수 거래의 정산 과정도 관련이 있다.
이 시스템은 최근 미국을 기점으로 변하고 있다.미국은 2021년 ‘게임스톱 사태(증권 중개업자 유동성 위기)’ 당시 발생한 유동성 위기와 투자자 접근 제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4년 5월부터 결제 주기를 1거래일(T+1)로 단축했다. 유럽 또한 2027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내년 10월 유럽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T+1로 결제 주기를 단축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