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그동안 유지되던 불안한 균형을 일거에 붕괴시켰다. 전쟁이 마무리되더라도 과거로의 복귀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 셔터스톡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그동안 유지되던 불안한 균형을 일거에 붕괴시켰다. 전쟁이 마무리되더라도 과거로의 복귀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 셔터스톡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 전문위원 -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 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 전문위원 -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 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2월 28일(현지시각)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은 점점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봉쇄 위협을 이어가고 있으며,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약 14만9900원)를 넘어서기도 했다. 미국은 이란 원유 수출의 90%를 차지하는 하르그(Kharg)섬을 공격하면서 이란에 대한 위협 수위를 다시 높이고 있다.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은 점차 잦아들고 있지만, 여전히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인접 지역의 각종 시설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UAE에 대한 천궁-2 대공미사일 공급과 더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이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에 이란이 봉쇄 중인 호르무즈해협을 유조선이 통과할 수 있도록 미국을 도울 군함 파견을 요구하면서 점차 당사국으로 위치가 변화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세습과 강경 노선

최고 종교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사망에 따른 이란의 후계자 선택은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이하 모즈타바)다. 세습에 대해 부정적이던 이슬람 공화국이 세습을 선택한 것은 실력보다는 필요에 따른 것이다. 잇단 공습으로 정권 핵심 인사 상당수가 사망한 상황에서 이란은 연속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세습을 선택했다. 이념적 원칙과 헌법적 규범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이란이 저항을 상징하는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하게 했다. 전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란 국민은 저항했을 것이며, 온건 엘리트도 다양한 방식으로 불만을 토로했을 것이다. 후계 구도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진행됐다면, 모즈타바 선출은 광범위한 시위를 촉발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폭격에 직면한 국민으로서는 혼란보다는 불완전한 질서를, 외세의 지배보다는 독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란 전쟁은 이란 내부의 온건 엘리트를 견제하고 공개적인 반대 의견 표출의 여지를 차단했다. 트럼프는 모즈타바에 대해 ‘하찮은 존재’라고 언급하면서 ‘용납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새로 선출된 최고 지도자는 물론 미래의 정치 및 군사 엘리트를 계속 암살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이런 발언은 이란 정권과 국민에게 국가적 굴욕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고 강경 혁명수비대(IRGC)의 목소리와 주도권이 강화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란 강경파는 모즈타바가 앞으로 이란 내부의 이견과 반대 의견을 탄압하고,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정권 유지를 최우선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립의 종말과 각자도생의 길

후계자로 발표한 첫 번째 성명에서 모즈타바는 중동에 있는 미군 기지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겠다고 위협했고, 호르무즈해협을 폐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에도 전쟁 참여를 촉구했다. 이란의 강경론자가 주도하는 강 대 강 구도가 당분간 고착될 것임은 명백해 보인다.

당분간 이란은 겉으로는 종교 지도자가 통치하지만 실제로는 혁명수비대가 주도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개혁을 둘러싸고 대립하던 세력 역시 실용적 동맹 관계를 맺고 외세와 맞서는 형태로 운영될 것이다. 이란은 미국이 더 이상 이란을 공격하거나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할 것처럼 보인다. 미국 역시 이란이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즉 한쪽이 항복하지 않는 한 이 전쟁은 쉽게 끝나지않을 수 있다. 자존심과 존엄성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압도적인 적을 마주하더라도 계속 싸워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강대국에 공격받은 자는 항복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굳건히 버티는 것을 선택한다. 객관적으로 가망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신념을 가지고 계속 싸운다. 이란처럼 강압적인 정권 아래에서도 민족적 자긍심과 정체성 그리고 외국 지배에 대한 저항은 있다. 페르시아만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이란을 둘러싼 갈등과 긴장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지만, UAE와 카타르 같은 소국이 강대국 간 틈바구니에서 중립적 국가로서 역할하면서 번영을 누리는 모순적 공간이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두바이의 화려함은 적대적 세력 모두가 이들의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란의 공격을 받았던 걸프 국가는 이제 미국에 의존하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하거나 조용히 테헤란과의 외교 채널을 재개하거나, 혹은 두 가지 모두를 병행할 수 있다. 이스라엘보다 더 많은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은 UAE는 첨단 방어 체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의 경제력을 보유하지 못한 일부 이웃 국가는 오히려 이란 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 중립적 입장이던 오만은 이미 새 최고 지도자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승자 없는 소모전과 끊임없는 전쟁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더 많은 국가가 관여하는 확전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전쟁은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휴전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유조선 운항은 결국 재개될 것이고, 미군의 폭격도 중단될 것이다. 이란과 대리 세력도 어느 시점부터는 드론 공격을 자제할 것이다. 이란은 휴전 조건에 대해 협상을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이란의 군사력이 대부분 파괴되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군사적 성공이 정치적 승리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은 다시 명백해지고 있다. 가자 지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지금의 이란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은 끊임없이 다시 나타난다. 이스라엘은 반복되는 폭력의 악순환을 ‘풀 깎기’라는 식으로 거칠게 표현하며,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47년 동안 이란과 전면전을 피해 온 미국 역시 이제 비슷한 악순환에 빠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란과의 중규모 전쟁, 미국의 영향력 반감시킬 듯

트럼프는 “미국은 중상급 무기를 무제한 보유하고 있고, 전쟁을 영원히 수행할 수 있다”라고 이란 전쟁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일련의 실수와 오판으로 인해 미국은 새로운 전쟁에 휘말리고 있다. 미국은 이란 전쟁에서 자국이 보유한 군사력 가운데 제한된 전력만을 투입했다. 하지만 상황이 기대와 다르게 흐르자, 해병대를 파견하는 등 점진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은 우리에게 이러한 방식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베트남전쟁과 마찬가지로 이란의 상황도 이와 유사한 궤적을 따를 가능성이 있다.

이란 전쟁은 소규모 분쟁보다는 규모가 크고 전면전은 아닌 중규모 전쟁으로 분류될 수 있다. 역사는 지정학적 논의는 지나치게 많고 지역의 문화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논의는 부족할 때 소규모 전쟁이나 군사 행동이 중규모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미국의 가장 큰 외교정책 실패는 정책 입안자가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지역적, 세계적 결과에만 집착해 현지 상황을 간과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베트남에서는 베트남 민족주의의 역사와 본질을 간과했고, 이라크에서는 종파주의를 무시했다. 중규모 전쟁에서의 패배는 미국 같은 제국에 존립의 위기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영향력 축소와 내부적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과거 미국을 괴롭혔던 중규모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국민과 지배 엘리트 사이에 치명적인 분열이 발생할 수 있다. 그 영향이 당장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분열은 과거 지배적이던 공화국이 서서히 몰락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란 전쟁은 그동안 유지되던 불안한 균형을 일거에 붕괴시켰다. 앞으로 중동 지역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쟁이 마무리되더라도 과거로의 복귀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