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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 -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 -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고향 축산항의 모래사장 앞바다에 일본 선박이 닻을 내리고 석영을 실어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왜 선박이 항구로 들어오지 않고 바다에 정박해 작업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축산항은 ‘개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국 선박의 입출항이 허용된 항구를 개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항, 인천항, 포항항을 비롯한 30여 개 항구만이 외국 선박 입출항이 가능한 무역항으로지정돼 있다.

최근 부산에서 열린 부산항 개항 1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면서 개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행사에서는 부산항 개항 150년의 의미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각에서 조명하는 학술 행사가 열렸고, 필자도 토론자로 참여했다. 발표자인 전성현 동아대 교수는 개항의 의미를 통행·통상·주거라는 세 가지 요소로 설명했다. 통행은 외국 선박 입항과 외국인 입국을, 통상은 외국 상인 상행위를, 주거는 외국인이 개항장에 거주를 허용하는 조치다. 

1876년 체결된 강화도조약으로 부산이 개항장이 되면서 일본 상인이 부산에 들어와 활동했고, 부산은 조선이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창구가 됐다. 물론 영사재판권과 무관세가 허용되면서 주권 일부가 제한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주권 전체 상실이 아니라 제한된 범위에서 이루어진 개방이었다. 부산은 외국 선박 입항과 외국인 통상·거주가 허용된 개항장이 되었고 조선이 세계와연결되는 창구가 되었다.

개항장 개념은 시대 변화 속에서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오늘날 수출자유지역과 경제자유구역이 그 연장선에 있다. 이들 제도는 일정한 특혜가 부여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개항장과 공통점이 있다. 최근 논의되는 부산항 글로벌 허브 특별법 역시 이러한 흐름 위에 있다. 항만 기능을 넘어 금융과 문화까지 아우르는 특화 공간을 조성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개항장의 현대적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선장 출신이자 해상법 학자인 필자에게 개항은 외국 선박 입항이 허용된 항구라는 의미가 다가 아니다. 이는 중학생 시절 일본 배를 보며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개항은 단순히 항구의 개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부 세계와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과거에는 ‘개항질서법’이 있었지만, 지금은 ‘선박의 입항 및 출항 등에 관한 법률’로 개정됐다. 이 과정에서 법률상 ‘개항’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무역항’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개항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외국 선박 입항과 국제 교류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로서 유효하다.

부산항은 이미 세계적인 환적항으로 성장했다. 앞으로 항만을 중심으로 물류와 산업을 넘어 금융과 문화까지 결합한다면, 부산은 싱가포르 같은 글로벌 항만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150년 전 개항장의 혜택은 일본 상인에게 돌아갔다. 이후 자유무역지역 시대에는 무역업자와 수출 기업, 해운 산업이 그 혜택을 누렸다. 앞으로 부산항 글로벌 허브 정책이 실현된다면 그 혜택은 부산 시민 전체로 확장될 것이다.

부산은 더 이상 항구가 있는 도시가 아니라 ‘항만이 도시를 만드는 시대’를 맞고 있다.그 단적인 사례가 무인 선박이다. 머지않아 항만에서 운항하는 선박에는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해운대의 고층 빌딩에서 근무하는 원격조종자가 선박 운항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선원이 바다에서 육상으로 들어오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바다와 육지는 점점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고 있다. 부산항 개항 150년은 과거의 기념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출발점이다.

개항 150주년 행사는 부산항발전협의회와 부산항을 사랑하는 모임이 공동 주관했다. 두 단체는 15년 넘게 부산항의 역사와 미래를 조명하는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행사를 이끌어 온 박인호 대표와 이승규 대표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