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월식이 시작되는 저녁, 일곱 명의 친구가 식탁에 모였다. 뱅상과 마리는 겉보기에 완벽한 부부처럼 보이지만 그들 사이엔 서늘하고도 견고한 벽이 서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시어머니 그늘 밑에서 시들어 가는 샬럿과 마마보이 마르코 사이에도 싸늘한 권태의 냉기가 흐른다. 아이를 가지려 노력 중인 신혼부부 토마와 레아는 왠지 조급해 보이고, 새 애인을 소개하겠다던 벤은 어쩐 일인지 오늘도 혼자 왔다.
그들은 심장마비로 남편을 잃은 어느 노부인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 부인은 방금 죽은 남편의 전화로 온 문자메시지를 보고 그가 불륜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큰 슬픔에 빠진다. 마리는 게임을 제안한다. 오늘 저녁, 모든 문자와 전화, 소셜미디어(SNS) 알림을 다 함께 공유하자는 것이다. 거리낄 게 전혀 없다면서도 그들은 주춤주춤, 식탁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는다.
가족 간의 해묵은 갈등, 자식에 대한 남모를 근심, 건강과 돈과 성(性), 불륜과 질투에 얽힌 은밀한 욕망까지, 인류가 생을 반복하며 겪어온 고질적인 번민은 형태만 바꾼 채 현실을 배회한다. 누구나 겪는 흔한 고통이지만, 우리는 그 뻔한 사연을 꼭꼭 감추며 살아간다. 아닌 척, 잘난 척, 아무런 불행도 없는 척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면을 쓰고 인생이란 무대 위에 서지만, 그 흔적은 고스란히 휴대폰에 박제돼 있다.
마리에게는 남편이 알면 안 되는 비밀이 있다. 뱅상은 아내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다. 마르코는 아내가 보면 곤란한 연락이 올 거라며 같은 기종을 가진 벤과 휴대폰을 바꾼다. 하지만 벤의 휴대폰으로 날아든 문자와 전화는 마르코가 감당하기 힘든 더 큰 짐이 되고 만다. 샬럿도 남편에게 숨겨야 할 사연이 있다. 일을 독촉하는 직원의 전화일 뿐이라며 토마는 계속 수신을 거부하고, 레아에게는 전 남자 친구가 보낸 자극적인 메시지가 날아온다. 그렇게 즐거워야 할 식사 모임은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의심과 불신의 지뢰밭으로 변한다.
진실은 언제나 옳은가. 우리는 날것의 진실을 감당할 만큼 튼튼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가. 칸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했다. 비록 아프고 고통스러울지언정, 진실만이 우리를 인간답게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철학이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도 뱅상이 사춘기 딸과 통화할 때 들려주는 진실한 인생 조언이다. 그의 진심은 딸은 물론, 아내와 친구들의 마음까지 움직인다. 하지만 그런 뱅상조차 자기 삶에서는 진실을 유예하며 살고 있다.
개기월식은 지구의 그림자가 달의 본래 모습을 잠시 가리는 현상이지만, 달은 완전히 사라지는 대신 낯설고 붉은 얼굴을 드러낸다. 파장이 짧은 푸른빛은 대기 중에 흩어지고, 파장이 긴 붉은 빛만이 달의 표면에 도달해 ‘블러드문’이라는 생경한 풍경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월식 현상은 휴대폰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평온한 일상의 베일이 벗겨지고, 그 아래 감춰져 있던 뒤틀린 진실이 가장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드러나는 과정과 닮았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문자 벨이 딩동거릴 때마다 부부 사이와 친구 관계는 파탄 위기에 몰린다. 하지만 개기월식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들 사이에 휘몰아쳤던 감정의 아수라장은 말끔히 지워진다. 영화 필름은 되감기고, 그들은 게임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시간으로 돌아간다. 평행선상에 있는 또 다른 세계로 갔다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가면 벗은 맨얼굴을 보고 충격받고 실망하고 배신당해 가슴이 갈가리 찢어졌다는 사실을 그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달은 다시 둥글고 환하게 빛난다. 관계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듯 서로를 마주 보며 웃는다. 아무런 비밀이 없는 사람처럼, 너무나 사랑하는 부부처럼, 흠집 하나 없는 우정을 나누는 다정한 친구처럼. 그러나 그들 가슴에서 물음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정말 이렇게 거짓말하며 살아가도 되는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얼굴인가.
누군가는 속고 있는 줄 모른 채 행복하고,누군가는 모든 것을 알지만 아무것도 모른 척 침묵하며 현실을 지탱한다. 속고 속이며 유지되는 일상, 거짓을 대가로 지켜낸 사랑. 이것이 보통 사람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아,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다가도 문득 형언할 수 없는 허무가 밀려오는 것은 그 정적이 진실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위태로운 평온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떠나고 아내도 방으로 들어간 뒤 뱅상은 혼자 베란다에 서서 건너편 아파트의 노부부를 바라본다. 은발의 노년이 되어 다정히 함께 웃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거짓과 배신 그리고 외로움을 견뎠을까. 뱅상은 자신과 마리의 미래를 투영해 본다. 인생이란 어쩌면 그 숱한 비밀과 거짓을 견디고 ‘쓸쓸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과정은 아닐까.
그러나 뱅상이 아내의 비밀을 알고부터 그녀 몰래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거짓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소모하며 영혼을 갉아먹는 일인지를 증명한다. “사랑에도, 우정에도 비밀로 남겨야 하는 게 있어”라는 뱅상의 말은 인생을 달관한 지혜처럼 들리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약물과 상담 치료에 의지해야 하는 그의 현실은 거짓의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말해준다.
인생이란 정답을 모른 채 두 개의 평행 세계를 동시에 걷는 일이다. 하나는 지금 견디고 있는 세계, 다른 하나는 멀리 꿈꾸는 세계. 그 사이에서 우리는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거짓된 평화를 고독하게 지키는 것이 정녕 우리가 바라는 행복일까. 비록 무너지고 깨지더라도 진실을 마주하고 그 잔해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당신은 식탁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을 수 있는가. 가려진 달이 다시 빛을 발할 때, 당신은 어느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 가면 뒤에서 홀로 흐느끼는 쓸쓸한 행복인가. 아니면 상처투성이지만 당당히 고개를 든 고통스러운 진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