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소리만 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빛 뒤에 드리운 그림자까지 받아들일 때 더 완전해지는 것인지 모른다.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을 때 소리는 더 나다워지고 완전해지는 것 같다.
지난 2월 잠시 독일에 체류할 일이 있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한 연주회를 관람하러 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눈을 감고 연주자가 무대에 등장하는 기척을 들으며 피아노의첫 음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건반에서 떨어져 나오는 한 음 한 음이 너무도 맑고 영롱했다. 각각의 음은 수정처럼 투명하게 울렸다. 그 음이 흘러가는 세계는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음악이 시간예술이 아니라면, 그 음 하나하나를 조각처럼 남겨 어딘가에 오래 보관하고 싶을 만큼 그렇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모든 음이 너무도 완벽하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바로 그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이라는 감각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너무나 모든 것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며 방황하고 있다니, 나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 낯선 감각은 연주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며칠 동안 나는 그 경험을 곱씹듯이 생각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하다가 문득 그 연주가 다시 떠올랐다. 겨울이 막바지에 접어든공원이었고, 호수 옆 산책로에는 얇게 눈이 쌓여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계절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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