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브라보 캐나다 웨스턴대 통계 및 보험계리학 교수 - 칠레 칠레대 산업공학과 학·석·박사, 전 영국 사우샘프턴대 부교수, 현 어플라이드소프트컴퓨팅저널 편집위원 /사진 위키피디아
크리스티안 브라보 캐나다 웨스턴대 통계 및 보험계리학 교수 - 칠레 칠레대 산업공학과 학·석·박사, 전 영국 사우샘프턴대 부교수, 현 어플라이드소프트컴퓨팅저널 편집위원 /사진 위키피디아

지난해 국내 100대 기업 여성 임원 수가 476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 서구 사회에서도 여성이 임원이 되는 문턱은 여전히 높다. 크리스티안 브라보(Cristián Bravo) 캐나다 웨스턴대 교수는 최근 20년간 캐나다 상장 기업 772곳에 근무하는 1만9395명을 추적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적 연결망을 활용해야 ‘유리 천장’을 넘을 수 있었다고 국제 학술지 셀 자매지인 ‘패턴스’에 소개했다.

브라보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여성이 기업의 유리 천장을 뚫고 이사회에 진입하려면, 남성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복잡한 사회적 자본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남성의 이사회 진출 여부는 주로 현재 직장과 직무 성과에 의해 결정됐다. 반면 여성의 경우 현재의 성과는 기본일 뿐, 고용 이력과 자선단체나 클럽 활동 같은 광범위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뒷받침될 때 승진 기회가 열렸다. 연구진은 여성이 기존의 ‘올드 보이 네트워크(old boys network·남성 중심 네트워크)’가 닿지 못하는 파편화된 커뮤니티에서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의 ‘가시성’을 확보해 왔다고 분석했다. 여성 리더 사이의 끈끈한 후원(sponsorship)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전통적 방식의 사회관계망 연구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딥러닝을 활용한 광범위한 연구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브라보 교수는 “정상에 오른 여성은 여러 네트워크를 잇는 핵심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며 “남성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복잡한 사회적 비용을 여성이 지불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브라보 교수와 일문일답.

연구에 따르면, 남녀의 경력이 동일해도, 임원으로 발탁되는 과정이 다르게 나타났다.

“결과를 통해 몇 가지 채용 역학을 추론할 수 있다. 첫째, 이사급 직위에 오르는 여성은 과거 직장, 사회적 관계, 교육 배경, 현재 직무 등을 아우르는 복잡한 관계망을 보유하고 있다. 둘째, 여성 임원은 관계망 내에서 다른 구성원에게 도달하는 ‘매개 중심성(betweenness)’ 수치가 높게 나왔다. 이는 여성 임원이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커뮤니티를 잇는 위치에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반면 남성은 주로 출신 학교나 현재 직무, 성과를 기준으로 발탁되며 여성 같은 복잡한 요건을 요구받지 않았다.”

기업에서 여성이 남성의 성장 경로가 같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는 무엇인가.

“회사 내 가시성을 높이는 인재 관리 프로그램이 핵심이다. 기업 내부에 이미 형성된 자발적 관계망을 활용해 내부 인재를 찾아내야 한다. 외부 인재를 찾을 때는 기업이 직접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어려우므로, 기존 임원이 보유한 외부 관계망을 좀 더 깊이 조사할 것을 권장한다. 그곳에 숨겨진 유능한 인재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여성 임원 수 공시 제도를 운용하는 등 여성 임원 채용을 권장한다. 특정 성별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운용하면 좋을까.

“강제적인 할당제와 인재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간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불공정하게 인식될 수 있으나, 후자는 단순히 인재가 조직 내에서 잘 보이게 하는 가시성(visibility) 문제라고 본다. 우리 연구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려면 더 많은 가시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인재 관리 프로그램은 조직 내 모든 인재가 제대로 관찰되고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가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여성이 어떤 역할을 할 때 임원 발탁에 유리한가.

“관계망 분석에서 ‘매개 중심성’과 ‘개별화된 페이지랭크’라는 수치는 남성보다 여성의 승진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매개 중심성이 높은 여성은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해 기존 집단이 닿지 못하는 커뮤니티를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그 결과 승진 대상자로 고려될 가능성이 커진다. 페이지랭크가 높다는 것은 이사회 멤버와 사회적 거리가 짧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사회 논의 등에서 이름이 언급될 확률을 높인다. 우리 분석에선 후자가 실제 승진에 더 가까운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봤다.”

캐나다의 다양성 정책 도입 이후 여성 임원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여러 기업이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 연구는 긍정적인 추세가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변화는 느리게 진행되지만, 규제 변화 이후 여성 임원 임명은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 모멘텀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 연구가 긍정적인 흐름을 지속하는 데 도움 되기를 희망한다.”

딥러닝 모델을 사용하면 간과되던 ‘숨은 인재’를 식별할 수 있을까.

“딥러닝의 가장 큰 장점은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개별적이고 개인화한 예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모델은 전문가가 일일이 변수를 설계할 필요 없이, 수년 동안 각 이사의 개별적인 궤적 전체와 복잡한 관계망을 스스로 모델링한다. 챗GPT가 질문에 개인화된 답변을 주듯, AI가 방대한 데이터에서 임원이 되는 과정의 개인화한 신호를 포착해 인재의 이력 궤적을 추천하고 예측한다. AI는 HR(인적자원) 분석을 더 강력하게 할 것이다.”

이번 분석이 런던이나 뉴욕 같은 다른 금융 허브, 또 한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에도 적용될 수 있나.

“국가 간 비교 분석을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관계망 역학은 여러 관할권에서 어느 정도 비슷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한국과 일본 문화는 서구와 달라서 결과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확실한 것은 어느 문화권에서든 네트워크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성 다양성이 확보된 이사회가 리스크를 줄이고 재무 성과를 향상한다는 연구가 있다.

“이번 논문에서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제1 저자인 저유하우 웨스턴대 연구원의 다른 논문에서 이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다양성이 확보된 이사회가 더 신중하고 시장에서 더 나은 조건을 확보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채권 발행 시 인수 비용을 조사한 결과, 네트워크가 복잡한 다양성 있는 기업의 금융 조건이 더 나은 결과를 얻었다. 이들이 강력한 연결 고리를 활용하거나 리스크가 낮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인과적 딥러닝(causal deep learning)’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연구의 다음 단계다.”

회사 경영진이 즉각 시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는.

“인재 탐색 범위를 다양화해야 한다. 새로운 인재는 바로 당신 주변이 아니라, 인재의 매우 복잡한 현재 활동 관계망 전반에 퍼져 있을 수 있다. 채용위원회가 지인 등 인접한 관계만 살핀다면 스스로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모든 네트워크를 활용한 완전한 검색을 수행해야 한다.” 

Plus Point

[Interview] 마리아 오스카르스도티르 사우샘프턴대 수학과학부 교수
“성별 관계없이 서로 돕는 포용적 구조 필요”

마리아 오스카르스도티르 영국 사우샘프턴대 수학과학부 교수 /사진 사우샘프턴대
마리아 오스카르스도티르 영국 사우샘프턴대 수학과학부 교수 /사진 사우샘프턴대

“정상에 선 여성은 모든 면에서 탁월해야 했다. 이것이 여성에게 요구되는 비대칭적 잣대인지, 아니면 기회가 너무 적어 오직 독보적인 여성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번 논문에 공동 저자로 참여한 마리아 오스카르스도티르(María Óskarsdóttir)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는 “기존 이사회 멤버의 인맥을 조사해 고위직으로 승진한 여성이 다른 여성 리더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수학 모델러로서 이번 연구에 참여해 20년 치의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성별에 따른 네트워크 기여도의 차이를 규명하는 데 기여했다.

오스카르스도티르 교수는 이사회 성비 불균형을 해소할 핵심 열쇠로 여성 간 후원을 꼽았다. 오스카르스도티르 교수는 “여성이 다른 여성의 지원으로부터 더 큰 혜택을 얻는다는 점은 성별 불균형에 대응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며 “인재와 멘토를 잇는 공식적인 ‘여성 간 후원 프로그램’과 전문 네트워크 활동을 통해 기회를 제도적으로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남성은 남성을, 여성은 여성을 돕는, 이른바 ‘분리(segregation)’ 현상을 경계해야 할 실질적인 과제로 꼽았다. 끼리끼리 돕는 문화가 고착될 경우 진정한 평등으로 가는 길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