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데이터는 오히려 창의성을 확장한다. 어떤 트렌드가 성장하고 있다는 데이터를 알게 되면, 이를 따를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벗어날 수도 있다. 두 선택 모두 창의적인 판단이다. AI가 제거하는 것은 창의성이 아니라, 근거 없는 리스크다.”
토니 핀빌 휴리테크 공동 창업자 - 프랑스 파리 에스트마른라발레대 IT·보안 석사, 소르본대 AI 박사, 현 파리 정치대·파리경영대학원(ESCP) 겸임교수, 전 파리 제6대 연구원, 전 비엘트레디션 연구·개발 총괄, 전 휴리테크 CEO /사진 토니 핀빌
토니 핀빌 휴리테크 공동 창업자 - 프랑스 파리 에스트마른라발레대 IT·보안 석사, 소르본대 AI 박사, 현 파리 정치대·파리경영대학원(ESCP) 겸임교수, 전 파리 제6대 연구원, 전 비엘트레디션 연구·개발 총괄, 전 휴리테크 CEO /사진 토니 핀빌

패션 산업에서 트렌드 예측은 오랫동안 디자이너의 감각과 경험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소셜미디어(SNS)가 확산하면서 이 공식은 빠르게 깨지고 있다. 이제 트렌드는 특정 브랜드나 매거진이 일방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의 일상 속에서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확산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AI는 쏟아지는 대중의 신호를 데이터로 읽어내며, 패션의 성공 방정식을 ‘직관’에서 ‘데이터’로 바꾸고 있다. 그 최전선에 프랑스 AI 스타트업 휴리테크(Heuritech)가 있다.

2013년 머신러닝 박사들이 설립한 이 회사는 매일 300만 개 이상의 SNS 이미지를 분석해 색상, 소재, 실루엣 등 3000개 이상의 요소를 데이터화하고, 2만 개 이상의 트렌드 신호를 식별한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24개월 수요를 90%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하며 루이비통, 디올, 프라다,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설립 이후 약 567만달러(약 8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2024년 데이터 기업 럭셔리인사이트에 인수됐다.

휴리테크의 공동 창업자이자 전 최고경영자(CEO)였던 토니 핀빌(Tony Pinville)은 “트렌드 예측의 목적은 무엇이 유행할지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실제로 팔릴지를 예측하는 것”이라며 “AI가 제거하는 것은 창의성이 아니라, 근거 없는 리스크”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AI 예측이 패션 산업의 가치 사슬 단계별,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는 전 세계 소비자 행동을 정량화하고 예측해, 브랜드가 실제 수요에 맞춰 의사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이 과정에서 AI는 가치 사슬 전반에 활용된다. 상품 기획 단계에서는 어떤 색상, 패턴, 실루엣에 투자할지 판단할 수 있고, 하락하는 트렌드에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구매 및 생산 단계에서는 과잉 재고와 품절을 동시에 줄일 수 있으며, 바이어는 데이터 기반으로 협상에 나설 수 있다. 마케팅과 비주얼 머천다이징에서는 어떤 상품을 어떤 시점에, 어떤 시장과 소비자에게 집중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다. 할인 위험이 큰 상품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AI는 사람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정확도와 확신을 가지고 의사 결정할 수 있게 돕는다.”

SNS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트렌드를 읽어내나.

“핵심은 데이터의 질이다. AI에는 ‘입력 데이터 수준이 결과 수준을 결정한다’는 기본 원칙이 있다. SNS는 소비자 행동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데이터 원천이다. 설문조사처럼 소비자가 ‘입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입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 세계에서 매달 29억 명이 SNS를 사용하고 있으며, 구매 결정 79%가 사용자 생성 콘텐츠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무작위 이미지를 수집하는 대신, 연령, 스타일, 성별, 국가와 지역을 기준으로 구조화된 소비자 패널을 구축한다. 국가별로 5만~10만 명 규모의 패널을 만들고, 매년 수백만 개의 이미지를 분석한다. 컴퓨터 비전 AI는 색상, 소재, 패턴, 디테일 등 3000개 이상의 속성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2만 개 이상의 트렌드 신호를 식별한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 24개월의 소비자 수요를 90%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한다. 단순히 어떤 아이템이 유행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어떤 소비자층에서, 어떤 시장에서, 어느 정도 규모로 성장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AI 기반 트렌드 예측 정확도와 속도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의 예측 모델은 약 24개월 기준으로 90% 이상의 정확도를 보인다. 이는 단순한 방향성 예측이 아니라, 특정 트렌드와 소비자층, 시장, 시기, 성장 규모까지 세분화해 분석하기 때문이다. AI가 반드시 인간보다 더 빠르게 트렌드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숙련된 분석가도 초기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 AI의 강점은 속도가 아니라 범위와 정밀도다. 어떤 트렌드가 어디에서, 어떤 소비자층에서, 얼마나 빠르게 확산하는지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얼마나 정밀하고 실행 가능한 수준으로 트렌드를 분석할 수 있느냐다.”

실제 기업의 성과 개선 사례가 있나.

“수익성과 직결되는 정가 판매율(sell-through rate) 개선이 중요한 지표다. 시즌 종료 전에 정가로 판매되는 비율로, 수익성과 직결된다. 일례로 18~35세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는 한 패션 브랜드가 스커트 카테고리에서 판매율 개선을 목표로 했다. 이 브랜드는 초기 수용자 중심 확산, 높은 성장률, 충분한 시장 규모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트렌드를 선정했다. 그 결과 스팽글 스커트(+26%), 애니멀 프린트 미니스커트(+32%), 플루이드 쇼트 스커트(+14%)가 도출됐다. 이를 반영한 첫 컬렉션에서는 매출 5%(판매율 3%포인트) 증가를 기록했고, 다음 컬렉션에서는 매출이 추가로 9%(판매율 2%포인트) 상승했다. 재고는 줄고 매출은 늘어난 사례다. 더 중요한 변화는 조직 문화다. 기업이 감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를 결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AI는 기존 패션 트렌드 예측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먼저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디자인과 트렌드 예측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디자인은 창의성, 직관, 감정, 문화적 관찰에 기반한 작업으로, 본질적으로 인간의 영역이다. 디자이너의 시각과 미적 감각, 시대를 읽는 능력은 대체될 수 없다. 

반면 트렌드 예측은 소비자가 실제로 무엇을 입고 구매할지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목적이다. 과거에는 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거의 없었고, 내부 판매 데이터 정도가 전부였다. 트렌드는 주로 브랜드와 매거진이 만들어내고 소비자가 따라가는 구조였다. 하지만 SNS의 등장으로 이 구조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트렌드는전 세계 어디에서든 소비자에 의해 빠르게 만들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직관에만 의존하면 잘못된 상품을 기획하거나, 수요를 놓치거나, 시장 대응이 늦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AI 기반 트렌드 예측 역할은 디자이너에게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의 직관을 데이터로 뒷받침하고 정량화해, 보다 확신을 가지고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AI가 기존 트렌드 예측 방식을 완전히 대체하게 될까.

“AI는 트렌드 예측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패션에 특화된 데이터와 모델이다. AI는 편향을 줄이고 트렌드를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패턴이 어느 시장, 어떤 소비자층에서 얼마나 성장할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반면 5~10년 단위의 장기적인 문화 변화나 미적 흐름을 읽는 것은 여전히 인간 영역이다. 결국 미래는 인간과 AI가 각각의 강점을 결합해 협력하는 구조가 될 것이다.”

데이터가 패션 창의성을 제한한다는 우려도 있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AI와 데이터는 오히려 창의성을 확장한다. 어떤 트렌드가 성장하고 있다는 데이터를 알게 되면, 이를 따를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벗어날 수도 있다. 두 선택 모두 창의적인 판단이다. AI가 제거하는 것은 창의성이 아니라, 근거 없는 리스크다. 데이터는 디자이너가 더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확신을 제공한다.”

한국에서의 AI 중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같은 시장에서는 AI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한국은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빠르고 디지털 영향력이 강하다. 특히 젊은 소비자는 새로운 스타일에 매우 민감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람이 트렌드를 분석하는 동안 이미 유행이 지나갈 수 있다. AI는 대량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 

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