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는 가운데, 세계 금융시장의 설계자로 불려 온 신 후보자가 한국 경제의 조타수를 맡게 되면서 시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실용적 매파’로 꼽히는 만큼, 금융권 안팎에선 한국 통화정책의 무게추가 ‘경기 부양’에서 ‘금융 및 물가 안정’으로 이동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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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3월 22일 제28대 한국은행(이하 한은) 총재 후보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을 지명했다. 신 후보자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경제학자이자,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BIS 등 국제기구에서 통화정책과 금융 안정을 지휘해 온 인물이다. 청와대는 “중동 사태 등 대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물가 안정과 국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는 가운데, 세계 금융시장의 설계자로 불려 온 신 후보자가 한국 경제의 조타수를 맡게 되면서 시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실용적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꼽히는 만큼, 금융권 안팎에선 한국 통화정책의 무게추가 기존의 ‘경기 부양’에서 ‘금융 및 물가 안정’으로 이동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BIS·프린스턴 거친 ‘국제금융 석학’

1959년 대구 출생인 신 후보자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경제·철학을 전공하고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옥스퍼드대와 런던정경대(LSE),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냈고, 국제통화기금(IMF) 상주 학자와 뉴욕 연방준비은행 금융자문위원,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등을 거치며 학계와 정책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2014년부터는 BIS 경제 자문역 겸 조사국장을 거쳐 통화경제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는 8월 말 퇴임을 앞두고 있다. 

동양인 최초로 BIS 수석 이코노미스트 자리에 오른 그는 금융 위기 이론과 금융 안정 연구 분야 권위자로 꼽힌다. 특히 1998년 스티븐 모리스 당시 예일대 교수와 발표한 ‘글로벌 게임(global games)’ 이론은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의 전개를 게임 이론으로 풀어내 거시경제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2005년 잭슨홀 미팅과 2006년 IMF 연차 총회에서는 당시 가열되던 부동산 버블과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서브프라임) 위험성을 지적하며 글로벌 금융 위기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경고해 국제 금융계의 주목을 받았다. 

‘거시 건전성’ 창시자… 환율·부채 불안 잠재울까

신 후보자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거시 건전성(macroprudential)’이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개별 은행 건전성만으로는 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논리를 전파하며 전 세계 금융 규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재임 당시에는 △외환 건전성 부담금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 투자 과세 제도 등 이른바 ‘거시 건전성 3종 세트’ 설계를 주도해 외부 충격에 취약했던 자본 유출입 구조를 개선했다. 

최근에는 인플레이션 대응 과정에서 각국이 자국 통화 약세를 방어하는, 이른바 ‘역(逆)환율 전쟁(Reverse Currency War)’에 대한 경고로 주목받았다. 과거 수출을 위해 환율 절하(가치 하락)를 유도했다면, 이제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높게 유지해야 하는 시대라는 논리다. 특히 강달러가 기업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켜 실물 위기로 번지는 ‘금융 경로’ 위험성을 꾸준히 경고해 온 만큼, 취임 후 원·달러 환율 변동성 관리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예상된다.

실용적 매파 지명에 금융시장 긴장

금융시장은 신 후보자 지명을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신 후보자는 금융 불균형과 자산 버블을 지속적으로 경계해 온 인물이다. 특히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한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위험성을 사전에 경고하며 ‘버블 경제론자’로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기조는 가계 부채를 강력히 통제해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으려는 이재명 정부 정책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의 과거 발언은 이런 평가를 뒷받침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고물가가 지속되던 2022년 9월 아시아개발은행(ADB) 세미나에서 그는 “해가 날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며 경제가 감당할 수 있을 때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 금융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신 후보자 지명 직후 채권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시점이 내년으로 밀리거나, 오히려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무조건적인 금리 인상론자로 보기는 어렵다. 최근 BIS 간담회에서 그는 “공급 충격이 일시적이라면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으로 대응하기보다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교과서적 사례”라고 말해,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대응을 중시하는 면모를 보였다. 또 중앙은행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더 많이 말할수록 시장과 상호작용은 복잡해진다”며 포워드 가이던스(한국판 점도표)가 시장 왜곡을 부른다고 지적해 왔다. 이는 향후 한은의 메시지가 더 신중하고 절제된 형태로 바뀔 가능성을 시사한다.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스테이블코인(stablecoins·법화나 자산과 교환 비율을 고정한 암호화폐)에 대해선 다소 강경한 입장이다. 그는 2025년 8월 한 콘퍼런스에서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표시 가상자산과 교환을 촉진해 자본 유출 통로가 된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99% 지배력은 원화 코인으로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물가·성장·환율 ‘삼중 과제’

신 후보자가 마주한 환경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와 국내 가계 부채 부담, 환율 변동성이 동시에 겹친 ‘삼중고’ 상황이다. 

우선 금리 인하 시점이 최대 과제다. 시장은 하반기 인하를 기대하지만, 금융 안정을 중시하는 신 후보자의 성향상 성급한 완화는 가계 부채와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예상된다. 환율 안정 역시 숙제다. 

강달러가 신흥국 금융 시스템을 흔드는 경로를 연구해 온 만큼, 대외 변수에 따른 원화변동성 관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정부의 경기 부양 기조와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 사이에서 중앙은행 독립성을 어떻게 지켜낼지도 관심사다.

신 후보자는 지명 직후 “엄중한 시기에 통화정책을 맡게 돼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며 “물가, 성장, 금융 안정을 고려한 균형 있는 통화정책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한은 총재는 대통령 지명 이후 국회 인사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며, 통상 지명부터 취임까지 한 달가량이 소요된다. 

Plus Point

한은 총재 76년,
재무부 관료 가고 석학 시대로

1950년 한은 창립 이래 대한민국 통화정책의 수장인 한은 총재는 총 27명이 임명됐다. 역대 총재의 면면은 한국 경제의 시대상을 투영한다. 일본 유학파 관료가 많았던 초기 시절을 거쳐 1980년대 이후 임명된 총재 15명 중 10명이 서울대 학사 출신이다. 전공은 경제학과(옛 상과대학 포함) 라인이 주류를 이뤘다. 

1990년대까지는 재무부 장관·차관을 거친 이른바 ‘모피아(재무부+마피아)’ 출신이 사실상 총재직을 독식하며, 정부의 경제개발을 지원하는 ‘발권력’ 행사에 집중했다. 변곡점은 1998년 한은법 개정이었다. 독립성이 강화된 이후 전철환·박승 총재 등 학계 출신 전문가가 중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이창용 총재(IMF 국장)에 이어 신현송 후보자(BIS 국장) 등 국제기구 출신 인사가 지명된 것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 국내 관료 네트워크를 넘어 세계 금융시장을 꿰뚫는 글로벌 석학이 한국 경제의 방어막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김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