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관련된 의사 결정에 있어서 타인의 시선과 의견을 유독 의식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많은 사람은 AI가 제공하는 슬롭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확신에 찬 단어를 사용하는 정보일수록 소비자가 걸러야 할 ‘필터링 1순위’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선호 우리은행 WM영업전략부 팀장 - 감정평가사, 전 대림산업·노무라이화자산운용 근무
이선호 우리은행 WM영업전략부 팀장 - 감정평가사, 전 대림산업·노무라이화자산운용 근무

인공지능 슬롭(AI slop)은 생성 AI(Generative AI) 기술을 사용해 양산되는 텍스트나 이미지 등 저품질 콘텐츠를 뜻한다. 슬롭(slop)은 원래 ‘음식물 찌꺼기’ 혹은 ‘오물’이라는 뜻으로, 다시 말해 AI 슬롭은 무분별하게 퍼진 ‘정보 쓰레기’라는 경멸적 의미를 내포한다. 

부동산 역시 최근 챗봇이나 알고리즘이 유도하는 슬롭 정보가 양산되고, 이 정보가 부동산 마케팅에 활용되면서 부작용이 심각하다. 특히, 부동산 매매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취약 계층(고령층·사회 초년생 등)은 소셜미디어(SNS)에 의존한 정보의 편향성이라는 감옥에 갇힌 채, 성급한 의사 결정을 할 위험이 크다. 

세상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한다. ‘정답, 비밀, 공짜’. 우리가 접하는 부동산 슬롭 정보는 정답이 있는 듯, 비밀스러운 고급 정보인 듯, 당신에게만 공짜로 주는 듯 우리를 현혹한다. 당신이 믿는 부동산 정보는 사실은 누군가 설계한 알고리즘의 산물일 수 있다.

부동산에 ‘정답’은 없다

부동산 AI 슬롭 정보는 무서울 정도로 뻔뻔하다. ‘무조건 오른다’ ‘이곳이 정답이다’ ‘지금 안 사면 평생 후회한다’ 같은 단언으로 소비자를 현혹한다. 부동산은 수많은 정책 변수, 금리, 인구구조, 환율,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가격이 형성되기 때문에 전문가조차도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전망하기 상당히 어렵다. 그럼에도 AI는 그저 조회 수를 빨아들이기 위해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기계 음성으로 과거 부동산 관련 데이터를 짜깁기한다. ‘확률적 헛소리’를 끊임없이 내뱉고 있는 셈이다. 

기계가 찍어주는 ‘정답’에 내 전 재산을 거는 것은 무모하다. 인생이 걸린 중요한 시험에서 정답을 확신할 수도 없는 옆 사람의 답안을 베끼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부동산뿐만 아니라 돈과 관련된 의사 결정에 있어서 타인의 시선과 의견을 유독 의식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많은 사람은 AI가 제공하는 슬롭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확신에 찬 단어(100%·확실·정답)를 사용하는 정보일수록 소비자가 걸러야 할 ‘필터링 1순위’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신에게만 알려주는 ‘비밀’은 없다

부동산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면 비밀을 암시하는 마케팅 문구가 상당히 많다. ‘나만 아는 비공개 호재’ ‘유튜브 정책상 곧 삭제될 영상’ ‘아직 뉴스에 안 뜬 엠바고 소식’ ‘업계 관계자만 돌려보는 비공개 문건’ 등 누가 봐도 자극적인 표현이다. 이런 마케팅 수법은 영상을 보는 사람에게 ‘나만 모른다’는 소외 공포(FOMO·Fear Of Missing Out)와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또 누구에게나 있는 일확천금이라는 욕망의 심리를 교묘하게 건드린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당장 조급하게 행동하게 해 실수를 유도한다. 이런 영상에는 때때로 전문가를 사칭해 권위와 신뢰의 탈을 쓴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소비자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AI가 수집해 영상으로 만든 정보는 이미 세상 모든 사람이 검색하면 나오는 ‘공개 정보’를 자극적으로 재가공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단독’ ‘특급 비밀’이라는 미끼 뒤에는 특정 미분양 물건을 털어내거나 하자 있는 물건을 눈속임하려는 마케팅, 또는 유료 리딩방·강의로 유인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 숨어 있는 낚싯바늘에 걸려들지 말아야 한다.

투자에 ‘공짜’ 점심은 없다

슬롭 정보가 가장 사랑하는 미끼는 바로 공짜와 ‘쉬운 길’이다. ‘구독만 하면 부동산 부자 되는 법 무료 전수’ ‘대출 이자 걱정 끝, 전액 지원받아 내 집 마련하는 법’ ‘일대일 맞춤형 부동산 진단, 지금 클릭하면 공짜’ 등과 같은 SNS 문구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는 말이 무색하게 노력 대신 운에 의한 환상을 선물한다. 특히,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못한 사회 취약 계층, 즉 은퇴 자금을 잘 굴려야만 여생을 버틸 수 있는 고령층이나, 하루라도 빨리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 사회 초년생이 이 달콤한 공짜 정보에 쉽게 무너진다. 

사실 쉽게 얻은 정보로 수억원의 자산을 불리겠다는 생각 자체가 사행성 도박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이 제공하는 무료 배포 콘텐츠는 사실 소비자의 소중한 개인정보와 맞바꾼 저품질의 전단지 수준에 불과하다. 심지어 영상 끝에서는 유료 결제를 유도하면서 공짜 정보가 결국 소비자의 소중한 자산을 갉아먹는 독으로 변질된다. 

부동산 정보 분별력 키우기

미국 실리콘밸리의 본거지인 캘리포니아주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계정 개설을 막는 강도 높은 규제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호주와 유럽 일부 국가는 10대의 SNS 규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데, 정신 건강 악화와유해 콘텐츠 노출 등 무분별한 SNS 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미성숙한 청소년에게 SNS 규제는 필요한 것으로 보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있는 성인까지 SNS를 규제한다는 건 버거운 일이다. 결국 스스로 지금 접한 정보가 슬롯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부동산 정보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 투자자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먼저 독서와 사색을 통해 본인의 투자 기준과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투자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SNS의 알고리즘화된 동영상에 끊임없이 노출돼 생각할 틈도 없이 확증 편향에 빠져든다. 그러나 부동산 정보는 개인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조회 수 중심의 획일적인 해법만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슬롯 정보를 걸러내고, 반대 의견과 제3의 시각까지 함께 살펴보면서 투자자 스스로 정보를 선별하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나아가 현장을 직접 확인하는 아날로그적 노력을 해야 한다. 받은 정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발품을 팔아 부동산 입지와 접근성, 교통 여건, 편익 시설 등을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정보의 진위를 파악해야 한다. 투자자 자신의 눈과 귀로 걸러낸 정보에 기반해야 확신을 가지고 후회 없이 투자할 수 있다.

현명한 투자자는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의 진위를 분별하고, 본인에게 적합하고 유용한 정보는 취하되, 나머지는 미련 없이 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많이 아는 것보다 제대로 아는 것이 낫다. 

이선호 우리은행 WM영업전략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