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부동산 3월 전국 주택 가격 동향에 따르면, 3월 16일 기준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0.16%를 기록, 2024년 3월 이후  처음으로 하락 전환했다. 사진은 3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에 붙은 급매물 안내문. /사진 뉴스1
KB부동산 3월 전국 주택 가격 동향에 따르면, 3월 16일 기준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0.16%를 기록, 2024년 3월 이후 처음으로 하락 전환했다. 사진은 3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에 붙은 급매물 안내문. /사진 뉴스1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

서울 주택 시장의 패러다임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과거 서울 부동산 시장을 관통하던 ‘하나의 거대한 물결’은 사라지고, 이제는 각 지역이 독립적인 동인에 의해 움직이는 ‘지역 분절화(segmentation)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강남과 비(非)강남 시장은 더 이상 동조화된 흐름을 보이지 않으며, 각개전투로 움직이는 복수의 시장으로 분해되고 있다.

그간 주택 시장은 이른바 ‘공간적 확산’ 또는 ‘전이 현상’의 법칙을 충실히 따랐다. 강남 아파트가격이 오르면 시차를 두고 주변 지역으로 온기가 퍼져나가는 구조였다. 강남은 시장의 방향을 맨 먼저 알리는 풍향계로 기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강남 아파트 가격이 떨어져도 비강남은 오히려 치솟는 시세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나타난다. 지역별로 ‘따로따로’ 움직이는 이 시세 흐름은 매우 생경하다. 과거의 통계적 경험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강남과 비강남의 이중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다섯째 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보다 0.12% 상승했지만, 강남 3구는 하락 흐름을 이어갔다. 반대로 서울 외곽은 상승 폭이 크게 뛰었다. 서대문구와 강서구, 성북구가 각각 0.27% 올라 상승 폭이 컸다. 중구·노원구·구로구·영등포구·종로구·광진구는 0.2%대의 상승세를 이었다. 강남 아파트 약세는 ‘대장 아파트’로 불리는 시가총액 상위 대단지 아파트 지수 흐름에서 드러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3월 KB선도아파트 50지수는 132.4로 전월보다 -0.73% 하락했는데, 이 지수가 내림세를 보인 건 2024년 2월 이후 2년 1개월 만이다. KB선도아파트 50지수에는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대치동 은마아파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등 강남권 주요 고가 아파트가 포진돼 있다. 

그동안 세금 규제 신호가 나오면 외곽부터 흔들리고 중심부는 버티는 것이 시장의 일반적인 패턴이었으나, 이번은 딴판이다. 이는 2017년 발표된 8·2 대책 이후 시장 흐름과도 대비된다. 당시 정부는 서울 전역과 경기 등 조정대상지역 내 다주택자에게 양도세 중과를 적용하기로 하고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 4월 1일부터 시행했다. KB부동산시세에 따르면, 2017년 8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서울 성동구(10.28%)·송파구(10.60%)·강남구(9.91%)·광진구(9.07%) 등 핵심 지역 아파트가격은 급등했다. 반면 외곽 지역 상승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강북구(2.30%)·노원구(1.93%)·은평구(1.86%)는 서울 평균 상승률(5.35%)에 크게 못 미쳤다. 평택시와 오산시 등 경기 외곽 지역은 오히려 떨어졌다. 이런 차별화는 세제 부담을 피하고자 여러 채보다 우량 지역 한 채만 보유하려는 경향이 나타나서다.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정부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행 예고 이후 서울 강남구·송파구·용산구 등 핵심 지역 매물이 늘고, 가격도 먼저 약세로 흐른다. ‘똘똘한 한 채’ ‘강남 불패’라는 익숙한 공식이 흔들리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중심지가 약세를 보이는 ‘코어 디스카운트(core discount)’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강남은 왜 흔들리나

핵심 지역 가격 조정이 먼저 나타나는 건 정책 변화와 인구구조 변화가 맞물린 결 과로 보인다. 무엇보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크게 늘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17년 8·2 대책 당시 전국 고령 인구 비율은 14.0%였지만, 2026년 2월 21.5%로 커졌다. 서울도 같은 기간 고령 인구 비율이 13.6%에서 20.6%로 확대됐다. 10년도 안 된 기간에 고령 인구 비율이 7%포인트쯤 늘어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도세나 보유세 강화 같은 정책 신호가 나오면 ‘캐시 푸어 세대(현금이 없는 세대)’인 고령층은 빠르게 반응할 것이다. 보유세 부담이 커질 조짐이 보이면 고령 다주택자는 주택 수를 줄여 대응한다. 또 고가 1주택자도 주택 규모나 금액을 줄이는 ‘주거 다운사이징’에 나서고 있다. 보유세 인상뿐 아니라 비거주용 고가 1주택에 대한 양도세 장기 보유 특별 공제 축소나, 전세 임대 시 간주 임대료 부과 가능성에 대비해 미리 움직이는 것이다. 인구구조상 고령자가 늘면서 고가 주택의 세금 민감도가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얘기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상급지 갈아타기’ 트렌드로 가격이 크게 오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강남구와 용산구, 송파구 일대 아파트 전세값 비율이 30%대로 떨어졌다. 전셋값이 오르는 것보다 매매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내재 가치보다 교환가치가 너무 많이 올라 차익 실현 욕구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대출 규제가 강해 아주 저렴한 매물이 아니고서는 시장에서 소화되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강남 등 핵심 지역이 먼저 가격이 하락한다. 

주택 시장 한 축 MZ 세대

현재 서울 아파트 시장을 움직이는 두 부류의 ‘지배적 시장 참여자’는 베이비부머 고령층과 젊은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 1981~2010년생)다. 이들은 시장의 새로운 기준점을 만드는 ‘앵커 세터’이자, 시장의 위험을 미리 알리는 ‘시장의 카나리아’ 역할을 한다. 상승기에는 이들이 높은 가격에 매수하며 트리거를 당기고, 하락기에는 가격의 닻(앵커)을 아래로 확 내린다. 

MZ 세대는 비강남 중저가 주택을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중저가 주택은 보유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데다 근로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어서다. 특히 그동안 덜 오른 비강남 지역은 ‘가격 메리트’가 부각되며 MZ 세대의 투자 레이더에 포착되고 있다. 같은 정책을 두고도 세대별로 다른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MZ 세대는 다수가 맞벌이여서 도심 업무 지구에서 아주 먼 지역에는 관심이 없고, 출퇴근이 가능한 서울 부도심권 주택을 사려는 경향이 있다. 

또 아직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MZ 세대는 신규 분양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앞으로 LH 주도의 공공 분양 공급이 확대되는데, 고소득 맞벌이 MZ 세대 가구는 소득과 자산 기준에 막혀 분양 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 이들에게 공공분양은 ‘기회’가 아니라 ‘그림의 떡’에 가깝다는 것이다. 결국 분양을 기다리기보다 기존 주택 매입으로 방향을 틀게 되고, 이는 비강남권 수요를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금융 규제도 시장을 갈라놓는다. 15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에 대한 대출 규제는 강남권 수요를 직접 억제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지역은 대출 접근성이 유지되면서 수요가 이동한다. 이른바 ‘키 맞추기’ 현상으로, 강북권의 상대적 강세가 이어진다. 이러한 엇갈린 선택이 시장의 분절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최근의 코어 디스카운트와 역차별화 현상이 장기적으로 지속할지는 미지수다. ‘타임푸어 세대(시간이 없는 세대)’인 3040의 직주 근접형 수요와 자산 양극화 흐름이 여전히 강해서다. 다만 정부의 세제 압박이 크게 작용하는 올해까지는 비강남권 상대적 강세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가격이 덜 오른 곳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순 환매 장세로도 볼 수 있다. 상급지 갈아타기를 고민하는 수요자라면 가격이 아주 싸지 않은 이상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