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과 세계 최대 경제 대국 자리를 다퉜던 유럽연합(EU)은 미래 성장을 이끌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이후 그 위상을 잃었다. 2008~2021년 생겨난 유럽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의 약 30%가 본사를 해외로 이전했고, 그중 대부분은 미국으로 향했다. 2024년 기준 세계 50대 기술 기업 중 EU 역내 기업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 아일랜드 IT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 프랑스 에너지관리 기업 슈나이더일렉트릭 등 네 개뿐이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2008년 14조8000억달러(약 2경2378조원)에서 2023년 27조4000억달러(약 4경1429조원)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할 동안, EU GDP는 16조3000억달러(약 2경4646조원)에서 18조8000억달러(약 2경8426조원)로 15.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중국 GDP는 2.5배 성장했다. 필자는 오늘날의 지정학은 에너지와 인공지능(AI)이라는 불가분의 두 힘에 의해 점점 더 크게 좌 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중국 AI 기업이 낮은 에너지 비용과 높아진 시스템 효율을 바탕으로 컴퓨팅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시작한 것에 주목하면서 “유럽이 중국 모델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지만, 에너지전환이 지속 가능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규모, 비용, 산업 전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핵심 교훈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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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치아 라이클린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경제학 교수 - 미국 뉴욕대 경제학 박사,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경제 자문
루크레치아 라이클린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경제학 교수 - 미국 뉴욕대 경제학 박사,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경제 자문

이란 전쟁은 에너지가 여전히 핵심적인 전략적 취약점이라는 사실을 EU에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uncil)가 원하는 것처럼 ① 유럽 배출권거래제(European Emissions Trading System)를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없다. 문제의 본질은 수입 화석연료 의존에만 있지 않다. 유럽이 취약한 진정한 이유는 21세기의 경제력과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에너지 시스템 그 자체에 있다.

오늘날의 지정학은 에너지와 AI라는 불가분의 두 힘에 의해 점점 더 크게 좌우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에너지를 컴퓨팅 파워로 전환하는데, 이는 경제적·전략적 힘의 토대가 된다. 그러기에 대규모로 운용되는 AI는 핵심 인프라나 다름없으며, 에너지를 ‘지능’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바꾸는 국가가 결정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현재 이를 위한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선두를 다투고 있지만, 양국의 모델은 확연히 다르다. 중국식 모델은 에너지·인프라·디지털 역량 간 상호 연계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 차원의 조율과 미시적 수준의 치열한 경쟁을 결합한 구조다. 에너지 시스템을 단순히 전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확장하고 있다.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에너지 저장, 송전망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전력의 한계비용을 끌어내리면서 대규모 AI 도입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확장 배후에는 낮은 금리의 자금을 인프라와 산업에 집중 투입하는 금융 체계가 있다.

중국 AI 기업은 낮은 에너지 비용과 높은 시스템 효율을 바탕으로 컴퓨팅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시작했다. ② 미니맥스(Mini-Max)와 문샷 AI(Moonshot AI) 같은 기업은 100만 출력 토큰(output token·AI 생성 텍스트의 기본 단위이자, 컴퓨팅 사용량의 표준 척도)당 약 2~3달러를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주요 모델은 약 15달러를 책정한다.

송전망 병목, 발전과 수요 간 지역 불균형, 전력 공급 안정을 위한 지속적인 석탄 의존 등에서 보듯 이런 모델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간의 논리는 강력하다. 중국은 기술 최전선에서 경쟁을 넘어 AI 역량을 최대한 널리 보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이 주로 수출하는 것은 수입국이 직접 활용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으로 변환해야 하는 순수 연산 능력이 아니다. 대신 전기차, 산업 자동화 장비, 통신 장비 등 디지털 지능이 내장된 제품을 수출한다. 전기를 지능으로만 바꾼 것이 아니라 산업 역량으로까지 바꿔 수출하는 셈이다. 반면 미국은 기술 최전선에 집중하고 있다. 소수의 기업이 풍부한 자본시장의 지원을 받아 첨단 반도체, 거대 언어 모델(LLM), 클라우드 인프라에 전례 없는 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이 같은 모델은 혁신 창출에는 탁월하지만, 높은 비용과 역량의 소수 집중, 제한된 컴퓨팅 접근성이라는 문제도 수반한다. ③ 미국의 AI 모델은 에너지 소모도 크고 소모량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는 미국에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23년 176 (테라와트시)에서 2028년 325~580로 증가해, 전체 전력 소비의 6.7~12%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전력 확보 문제는 이미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델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AI가 경제력의 핵심 결정 요인이라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중국은 풍부한 에너지가 AI 보급의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까지 명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글로벌 녹색 전환을 선도하겠다는 유럽의 오랜 야심을 감안하면, 적어도 에너지 측면에서는 유럽의 입지가 유망하리라 생각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런 야심은 시장의 파편화, 규제의 불확실성, 풍부하고 저렴한 전력 공급을 우선시하는 일관된 산업 전략의 부재로 인해 지속적으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 송전망, 에너지 저장 분야의 공급 확대가 부진했고, 전력 가격은 다른 경제권에 비해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유럽의 경쟁력에 대한 구조적 위협이다. 기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한 유럽은 에너지와 디지털 역량의 통합에서도 계속 뒤처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럽은 최첨단 AI에서는 미국에, 비용 효율적인 산업 도입에서는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국의 관세, 중국의 수출 통제는 이 같은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보여주었다.

유럽이 중국 모델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지만, 에너지전환이 지속 가능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규모, 비용, 산업 전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핵심 교훈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려면 유럽은 만만치 않은 제도적 제약을 극복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대규모 이질적 시스템을 조율하는 과제, 즉 인프라·금융·지역 인센티브를 일관되게 연계하는 것은 중국과 유럽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숙제다.

하지만 유럽은 추가적인 난제를 안고 있다. 파편화된 자본시장과 국가보조금(state aid) 관련 규정, 제한된 재정 여력이 투자를 지연시킬 수 있고, 여러 프로젝트가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는 규모로 순조롭게 성장하는 걸 방해할 수 있다. 자본의 총량은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효과를 내려면 투자를 충분히 조율하고 핵심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민간 자본을 더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도록 리스크 완화 장치, 장기 계약, 예측 가능한 규제 체계를 갖춰야 한다. 나아가 EU 차원의 금융 수단이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는 핵심 역할을 하도록 해 파편화 극복에 기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명확한 전략적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재정 및 국가보조금 규정을 더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국가 주도냐 시장 주도냐 간의 택일이 아니라, 공적 조율과 민간 자본이 서로를 강화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유럽은 결코 미국처럼 풍부한 화석연료 자원을 갖지 못할 것이다. ④ 하지만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대폭 늘리고 투자금을 효과적으로 운용한다면, 중국이 이룬 것과 같은 에너지원 다각화와 비용 절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이란 전쟁이 촉발한 것과 같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할 수 있다. 그것은 더 나아가 우리 시대의 결정적인 경제 경쟁, 즉 전기를 지능으로 바꾸는 역량을 구축하는 데 EU가 뛰어들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Tip

탄소배출권거래제(ETS)는 정부가 기업에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허용량(배출권)을 할당하고, 허용량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 기업이 탄소를 덜 배출해 배출권이 남은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살 수 있도록 한 제도. 기업이 탄소 감축 능력을 높여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었을 경우 줄어든 분량만큼 배출권을 팔 수 있고, 반대로 배출권이 감축 비용보다 저렴하면 배출권을 구입할 수도 있다. 현재 EU의 ETS 배출권 가격은 이산화탄소 1t당 약 75유로(약 13만원) 수준에서 형성돼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역내 ETS 개편을 논의 중이다.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등 회원국이 자국 산업 경쟁력 하락을 우려해 규정 완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AI 스타트업 문샷 AI와 미니맥스는 미국에 맞설 중국의 유력 주자로 부상했다. 문샷 AI는 추론 모델 ‘키미 2 싱킹(Kimi K2 Thinking)’이 오픈AI의 ‘GPT-5’와 앤트로픽의 ‘클로드 소네트 4.5’를 벤치마크해 여러 부문에서 뛰어넘었다. 이와 관련해 벤처캐피털 멘로벤처스의 디디 다스 파트너는 SCMP에 “중국 오픈 소스 모델이 최상위 자리를 차지한 것은 AI의 전환점”이라고 평했다. 미니맥스의 M2 모델은 아티피셜 애널리시스의 오픈 모델 지능 지수에서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했으며, 구글의 ‘제미나이 2.5 프로’ 에 앞섰고 오픈AI와 앤트로픽 최신 모델을 추격했다. 미니맥스는 멀티모달과 전문가 혼합(MoE) 아키텍처는 물론, 하이브리드 어텐션 메커니즘 등을 적용해, 기술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챗GPT가 하나의 질문을 처리하기 위해선 2.9 (와트시)의 전기가 필요하다. 반면 구글 검색에는 0.3 의 전기가 쓰인다. 생성 AI에 필요한 에너지가 검색보다 10배 더 많다는 얘기다. 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2024년 415 에서 2030년 945 이상으로 두 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70% 이상이지만, 전력 생산은 수입 에너지원에 의존하지 않는다. 2025년 중국 전체 발전원 중 화력발전량 비중이 59.8%를차지했는데, 같은 기간 중국이 생산한 석탄은 48억5000만t, 수입 물량은 5억t으로 중국은 발전에 사용되는 석탄 대부분을 자급했다. 중국의 나머지 발전원은 수력발전(13.8%), 풍력발전(10.7%), 태양광발전(11.1%)이다. 원자력발전으로는 485 (4.6%)를 생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