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 매킬로이가 4월 12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마스터스 토너먼트 2연패를 확정 지은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 UPI연합
로리 매킬로이가 4월 12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마스터스 토너먼트 2연패를 확정 지은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 UPI연합

4월 1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로리 매킬로이(37·북아일랜드)가 또 한 번의 위대한 기적을 완성했다. 최종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제90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2연패를 달성하며 통산 여섯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다. 이는 타이거 우즈가 2001~ 2002년에 세운 이후 무려 24년 만에 나온 마스터스 역사상 네 번째 2년 연속(Back-to-back) 우승이라는 대기록이다.

이 화려한 대관식 이면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숱한 위기 속에서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해 준 따뜻하고 단단한 지지 기반이 있다. 치열한 승부 속에서 기쁨과 좌절이 교차했던 매킬로이의 이번 마스터스 여정을 세 가지 핵심 키워드인 ‘주토피아와 딸 포피’ ‘고향 홀리우드(Holywood)와 부모의 헌신’ 그리고 ‘어릴 적 우상 타이거 우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민학수 -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민학수 -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정신적인 안정을 주는 영화 '주토피아'와 딸 포피

매킬로이는 골프를 가리켜 “샷과 샷, 라운드와 라운드 사이에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아 모든 주요 스포츠 중 정신적으로 가장 도전적이고 힘든 종목”이라고 정의한다. 나흘 내내 같은 멘털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연습 라운드에서는 완벽했던 샷이 본 경기에서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숨 막히는 극도의 압박감 속에서 그에게 가장 완벽한 정신적 안식처는 바로 가족, 그중에서도 다섯 살 난 딸 포피(Poppy)였다.

매킬로이는 대회 기간 중 쏟아지는 중압감을 피하기 위해 코스 밖에서는 철저히 골프를 잊으려 노력했다. 2라운드에서 무려 6타 차의 기록적인 단독 선두에 오른 뒤에도 그는 절대 들뜨지 않았다. 주말을 앞둔 압박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묻는 말에 그는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리는 테니스 준결승전을 시청하는 것과 더불어 “딸 포피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영화 ‘주토피아2’를 절반쯤 봤기 때문에 마저 볼 것”이라고 답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영화 ‘주토피아’ 시리즈는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 1위 주토피아를 배경으로, 연쇄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열혈 토끼 경찰관 주디 홉스와 뻔뻔한 사기꾼 여우 닉 와일드가 파트너가 돼 펼치는 좌충우돌 추격전을 그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편견을 극복하고 끈기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매킬로이는 지난해 마스터스 첫 우승 당시 딸과 함께 ‘주토피아 1’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고, 올해는 후속작인 ‘주토피아 2’ 를 시청하며 긴장감을 내려놓고 평범한 아빠의 일상으로 돌아가 멘털을 다잡은 것이다.

시상식 연설에서도 그는 아내 에리카와 딸 포피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수요일 파3 콘테스트에서 캐디를 하고, 선수 식당에서 아이스크림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어서인지 마스터스 주간이 포피가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주간이 됐다”고 농담을 건네며 환하게 웃었다.

로리 매킬로이가 4월 12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토너먼트 2연
패를 확정 지은 뒤 아버지, 어머니, 아내 에리카, 딸
포피와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로리 매킬로이가 4월 12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토너먼트 2연 패를 확정 지은 뒤 아버지, 어머니, 아내 에리카, 딸 포피와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홀리우드와 아버지 어머니, 작은 마을이 빚어낸 챔피언

두 번째 키워드는 그의 든든한 뿌리인 북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홀리우드와 그곳에서 아들의 꿈을 묵묵히 뒷바라지해 온 부모다. 이번 대회 우승 직후 매킬로이는 “고향에서 큰 꿈을 꾸던 작은 꼬마가 지금 여기 이렇게 있다”며 자기 출발점을 잊지 않았다.

올해 그린 재킷 시상식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18번 홀 그린 뒤에서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 게리(Gerry)와 어머니 로지(Rosie)를 향한 매킬로이의 눈물 어린 헌사였다. 사실 부모는 지난해 매킬로이가 마스터스에서 숙원이었던 첫 우승을 차지할 때 현장에 오지 못했다. 부모는 아들이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자기들이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일종의 징크스를 믿고 이번 대회에도 오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매킬로이는 “그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겠다”며 끈질기게 설득해 어머니·아버지를 오거스타로 모셨고, 결국 보란 듯이 2연패를 달성하며 부모의 품에 안겼다. 그는 시상식에서 “어머니·아버지, 내 모든 것은 두 분 덕분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부모이며, 두 분이 내게 해 준 것의 절반만이라도 포피에게 해줄 수 있다면 나는 정말 좋은 부모일 것이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매킬로이가어릴 때 아버지 게리는 아들 훈련비를 대기 위해 청소부·바텐더 등으로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했고, 어머니도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하며 뒷바라지했다.

매킬로이의 부모 못지않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곳이 바로 그의 고향에 있는 122년 역사의 ‘홀리우드 골프 클럽(Holywood Golf Club)’이다.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가 열린 날 밤, 클럽 하우스에는 200여 명의 지역 주민과 팬이 숨을 죽인 채 모여들었다. 매킬로이가 다녔던 설리번어퍼학교(Sullivan Upper)의 10대 학생들은 아일랜드 록 밴드 크랜베리스의 명곡 ‘좀비(Zombie)’ 가사를 개사해 “그가 네 머릿속에 있어, 로리, 로리”라고 합창하며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고향의 스키너스 베이커리(Skinner's Bakery)는 전통에 따라 매킬로이 얼굴과 그린 재킷이 새겨진 특별한 ‘로리 비스킷’을 구워내며 우승을 기원했다.

마침내 18번 홀에서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골프 클럽 지붕이 날아갈 듯한 환호성과 축배가 터져 나왔다.

우상 우즈, 새벽 4시 문자 메시지와 끈끈한 우정

매킬로이의 마스터스 2연패가 골프 팬을 열광시킨 이유 중 하나는 우즈가 2001~2002년에 세웠던 백투백 우승의 발자취를 무려 24년 만에 나란히 재현해 냈기 때문이다.

우즈보다 14세 어린 매킬로이는 골프채를 잡은 순간부터 그를 절대적인 우상으로 삼으며 자랐다. 매킬로이는 “우즈와 단 두 시간만 함께해도 그의 네 가지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잠을 못 자는 대신 항상 무언가를 읽고 자신을 교육하는 똑똑하고 사려 깊은 사람” 이라며 깊은 존경심을 표해 왔다. 두 사람 관계는 단순한 투어 선후배를 넘어, 실내 스크린 골프 리그(TGL)를 공동 설립할 만큼 서로를 굳게 신뢰하는 비즈니스 및 영혼의 파트너로 발전했다.

최근 발간된 골프 저널리스트 앨런 쉽넉의 신간 ‘로리: 골프에서 가장 인간적인 슈퍼스타의 가슴앓이와 승리(Rory: The Heartache and Triumph of Golf’s Most Human Su-perstar)’에서는 두 사람의 우정을 엿볼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일화가 공개됐다. 완벽주의자이자, 지독한 훈련 벌레인 우즈는 오버 트레이닝의 여파로 수면 장애를 겪곤 하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매킬로이에게 불쑥 문자를 보내곤 했다는 것이다.

매킬로이는 책을 통해 “우즈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웨이트트레이닝 중이야. 넌 뭐해?’ 라는 문자를 종종 보냈다”며, “한밤중에 문자가 오면 나는 ‘우즈가 체육관에 있구나’ 하고 넘겼지만, 내 아내 에리카는 옆에서 잠을 깨 실제로 크게 화를 냈다(pissed off)”고 털어놓았다. 매번 아내의 원망을 살 만큼 황당한 새벽 문자였지만,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자신을 훈련하는 우상 우즈의 존재는 매킬로이에게 거대한 동기 부여였다. 우즈의 선한 영향력과 조언을 받으며 성장한 꼬마 매킬로이는 이제 우상의 거대한 기록을 나란히 써 내려가며 당당히 그 뒤를 잇는 이 시대의 챔피언으로 자리매김했다.

매킬로이는 마스터스 우승 직후 골프가 가르쳐 준 삶의 교훈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온다고 할까? 목표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계속 가야 한다. 고개를 숙이고 꾸준히 나아가. 시간을 투자하고 올바른 것을 연습한다면 결국에는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다.”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