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세로 비율 따라 안정감·권위 다르게 느껴
대학 시절 학교 신문사에서 학생 기자 생활을 했던 내게, 유독 기억에 남는 대학신문 선배가 한 명 있다. 소위 완벽한 사각형 하악골의 소유자였던 그에게 사람들은 일본어로 ‘요코다테(橫縱)’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요코다테는 한국어로 ‘가로세로’라는 뜻이다. 왜 하필 일본어냐고? 일간지와 대학신문을 막론하고 1980년대 당시 각 신문 편집은 거의 일본 기술과 용어에 의존하는 활판인쇄 시대였다. 당연히 대부분의 편집 및 인쇄 용어는 일본어가 그대로 통용되고 있었다.
또한 시대적으로는 활판인쇄를 위한 조판(판짜기)이 세로 조판 위주에서 가로 조판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가로세로는 그만큼 중요했고, 언론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로세로를 요코다테라고 말하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나는 당시에는 단순히 각진 얼굴형에 대한 가벼운 농담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심리학을 깊이 공부하게 되면서 그 별명에 담긴 묘한 인지적 긴장감을 깨닫게 됐다. 사각형이라는 기하학적 형태는 가로의 안정감과 세로의 권위가 팽팽히 맞물린 구조다. 가로세로 비율이 일대일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뇌는 그 대상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고집과 압도적인 중량감을 동시에 감지한다. 그 선배가 풍겼던 특유의 듬직하면서도 완고한 인상은 사실 그의 얼굴이 점유한 가로세로 비율이 우리 뇌의 시각 피질에 보낸 강렬한 신호였던 셈이다.
뇌는 같은 길이라도 세로 방향 더 길고 수고스럽게 인식
내가 사용하는 가방은 가로로 들면 서류 가방이 되고, 세로로 메면 백팩이 되는 이른바 투웨이(two-way)다. 최근 유행하는 투웨이 가방은 형태적 본질은 하나지만 사용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사회적 메시지를 발신한다. 똑같은 전공 서적과 노트북을 담았음에도 이를 손에 드는 가로형 서류가방으로 사용하면 ‘왜 그렇게 큰 가방에 짐을 많이 넣고 다니냐’는 핀잔이 날아오기 일쑤다. 그러나 똑같은 가방을 등에 메는 세로형 백팩으로 전환하는 순간 그 누구도 가방의 부피나 무게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심리학의 고전 이론인 ‘수직 수평 착시(Vertical-Horizontal Illusion)’가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눈은 좌우로 움직이는 수평 이동보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수직 이동에 더 많은 안구 근육 에너지를 소모한다. 따라서 뇌는 같은 길이라도 세로 방향을 더 길고 수고스럽게 인식한다. 가로로 배치된 가방은 타인의 시야에서 좌우 공간을 적극적으로 점유하며 확장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는 나는 이만큼의 공간을 차지하겠다는 무언의 선언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일종의 영역 침범이자 과도한 자기주장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세로형 백팩은 척추 라인을 따라 수직으로 배치되며 신체의 실루엣 안으로 숨어든다. 뇌는 이를 별개의 짐이 아니라 한 인간의 전체적인 부피감으로 통합해 처리한다. 가로형이 타인의 영역을 가로막는 장애물 프레임에 갇힌다면 세로형은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배경 프레임으로 수용된다.
건축·비즈니스·학문·스마트폰에도 적용되는 가로세로 원리
이 인지적 메커니즘은 역사의 권력자가 대중을 압도하기 위해 사용한 건축 문법과도 정확히 대응한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인 베르사유궁전은 가로로 길게 늘어진 구조다.
방문객이 궁전 정면을 한눈에 담으려면 시선을 좌우로 끝없이 돌려야만 한다. 이 구조는 왕이 지배하는 영토의 광활함, 즉 가로의 점유를 시각적으로 강요하며 관찰자를 압도한다. 수평적 확장은 곧 소유의 크기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반면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나 현대의 마천루는 전혀 다른 전략을 택한다. 이것들은 세로의 벡터를 하늘 위로 향하게 함으로써 상승의 권위를 구현한다. 수직으로 끝없이 솟구친 선은 인간의 고개를 위로 꺾게 하며 자연스럽게 경외심과 자신의 작음을 실감하게 하는 굴복을 유도한다. 백팩의 세로가 아래로 수렴하는 겸손이라면 대성당의 세로는 위로 상승하는 권위다. 이 둘은 모순이 아니다. 세로라는 같은 방향에서 벡터가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심리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와 학문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유효하다. 중요한 미팅에서 가로형 서류가방을 드는 행위는 일상 속의 침범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읽힌다. 양측이 서로의 전문성과 권위를 전제하는 공식적 자리에서 가로의 긴 선은 학문적 깊이와 묵직한 신뢰를 점유하는 전략이 된다. 이는 내가 가진 지식의 지반이 이토록 넓고 탄탄하다는 시각적 증거로 작용한다. 반대로 협력과 기동성이 강조되는 현장에서 세로형 백팩을 메는 것은 자기 존재감을 신체 안으로 수렴시켜 타인과 조화와 작업의 효율을 동시에 발신하는 방식이 된다. 공간의 배치 역시 같은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천장이 높은 공간, 즉 세로축이 위 방향으로 확장된 장소는 뇌에 해방감을 주어 창의적 발상을 자극한다. 반면 바닥 면적이 넓고 낮은 공간인 가로축이 강조된 장소는 사람을 차분히 가라앉혀 분석적 사고와 정교한 계산에 집중하게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조차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세로 모드는 정보를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효율의 도구인 반면, 가로 모드는 영화나 게임처럼 가상의 공간에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탐닉과 점유의 프레임이 된다.
인생은 완벽한 가로세로 균형점 찾는 여정
결국 대학 시절 그 선배의 가로세로라는 별명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두 축에 대한 가장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로의 안정과 세로의 변화가 완벽한 비율로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의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계적인 균형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때로는 한쪽을 의식적으로 강조함으로써 타인에게 전달되는 나의 메시지를 전략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위선이 아니라 성숙한 사회적 소통의 기술이다.
지하철의 좁은 통로에서 가방을 세로로 고쳐 메는 행위는 단순한 에티켓을 넘어 나의 존재감을 흐름 속에 녹여내는 겸손의 기술이다. 반대로 결정적인 협상의 순간이나 내 전문성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가방을 가로로 고쳐 드는 행위는 나의 영역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선포하는 존재감의 기술이다. 가로의 넉넉한 품으로 세상의 모든 지평을 포용하고, 세로의 곧은 심지로 하늘을 향해 내 이상을 뻗어 올리는 것이다.
사각형의 완벽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그 고단하고도 숭고한 여정은 오늘 당신이 가방을 어느 방향으로 들기로 했느냐는 아주 작은 선택에서 이미 시작됐다. 그 옛날 가로세로라고 불리던 선배의 그 단단한 얼굴이 주었던 신뢰감처럼, 당신의 가로와 세로 역시 누군가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삶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가로세로 비율을 편집하며 세상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자기 존재를 그려나가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