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폴로 13’ 포스터. /사진 유니버설픽쳐스
영화 ‘아폴로 13’ 포스터. /사진 유니버설픽쳐스
신재훈 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 서울대 경영학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 MBA, 서강대 경영학 박사, 현 리버스톤 자산운용 사장, ‘비욘드 시네마’ ‘비욘드 스트래티지’ 저자
신재훈 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 서울대 경영학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 MBA, 서강대 경영학 박사, 현 리버스톤 자산운용 사장, ‘비욘드 시네마’ ‘비욘드 스트래티지’ 저자

2020년 단백질 구조 예측 경연대회 CASP (Critical Assessment of Structure Prediction)에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2(AlphaFold2)는 평균 92% 수준의 정확도로 단백질의 삼차원 구조를 예측하며 생명과학계를 뒤흔들었다. 과학자들이 반세기 넘게 풀지 못했던 ‘단백질 접힘’ 문제를 인공지능(AI)이 돌파한 순간이었다. 2021년 딥마인드는 이 성과를 공개했고, 2022년에는 2억 개가 넘는 단백질 구조 데이터를 전 세계 연구자에게 개방했다. 수년이 걸리던 연구가 며칠, 때로는 몇 시간으로 줄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과학 저널 ‘사이언스’는 2021년 알파폴드2를 ‘올해의 혁신’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정말 이 성취는 AI 성능만으로 가능했던 것일까. 왜 하필 그 시점에, 바로 그 팀이 이 난제를 돌파할 수 있었을까.

달 착륙에서 생환으로, 목표가 바뀌는 순간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아폴로 13(Apollo 13, 1995)’은 이 질문에 뜻밖의 힌트를 준다. 영화는 1970년 달 탐사를 위해 출발한 아폴로 13호의 위기 극복 과정을 다룬다. 우주선 발사 때만 해도 모든 것은 정해진 절차와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산소 탱크가 폭발하며 상황이 급변한다. 선장 짐 러벨(톰 행크스 분)은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며 지상관제 센터에 절박한 긴장감을 전한다. 폭발로 인해 전력과 산소가 급격히 줄어들자 달 착륙은 불가능해지고, 우주비행사 세 명의 무사 귀환이 새로운 목표가 된다. 관제 센터는 곧바로 새 목표에 맞춰 모든 절차를 다시 설계한다. 혼란은 오래가지 않는다. 목표를 하나로 정리하자 각자의 역할과 판단 기준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위기 극복 방식이 영웅적 결단으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기정화기 필터 문제로 우주선 안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치솟자 지상의 엔지니어는 매뉴얼 책자, 비닐봉지, 덕트테이프, 호스 조각처럼 우주선에 있는 물건만으로 임시 필터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는 곧바로 우주선에 전달되고, 우주비행사는 지상의 안내에 따라 같은 장치를 만들어 낸다. 귀환을 위해 우주선 궤도를 수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동항법장치가 꺼진 상황에서 지상의 계산과 우주선에서의 실행이 정밀하게 맞물리지 않았다면 짧은 엔진 점화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화는 이런 장면을 통해 조직이 위기에서 살아남는 힘은 더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바뀐 목표에 맞춰 사람과 기술이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전략과 기술의 정렬

이 점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 존 C.헨더슨(John C. Henderson)과 N. 벤카트라만(N. Venkatraman)의 전략적 정렬 모델(SAM·Strategic Alignment Model)이다. 이 모델은 원래 비즈니스 전략과 정보기술(IT) 전략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됐지만, 오늘날에는 전략과 기술 전반의 관계를 읽는 틀로 확장할 수 있다. 내용은 단순하다. 기업의 성과는 비즈니스 전략과 기술 전략이 같은 방향을 보고, 조직과 기술 인프라도 그 방향에 맞게 움직일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전략과 기술이 따로 움직이면 기술은 비용이 되고 전략은 구호에 그친다. 반대로 둘이 같은 목표를 향해 정렬되면 기술은 전략을 현실로 바꾸는 엔진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정렬은 전략이 앞서고 기술이 뒤따르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전략이 기술의 방향을 이끌 수도 있고, 새로운 기술이 먼저 가능성을 열면 그에 맞춰 전략을 다시 조정할 수도 있다. 핵심은 둘이 서로를 보며 같은 목표에 맞춰 움직이는데 있다. 

‘아폴로 13’은 이 원리를 교과서처럼 보여준다. 원래 목표는 달 착륙이었지만 폭발 후 목표는 우주비행사의 생환으로 바뀌었다. 목표가 바뀌자 전략도 바뀌고, 전략이 바뀌자 기술 사용 방식도 달라졌다. 조직은 새 목표에 맞게 역할을 재편하고, 기술 인프라는 그 역할을 떠받치는 방향으로 조정되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요소가 동시에 움직였다는 점이다. 전략, 기술, 조직, 장비가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맞물렸기에 우주비행사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왼쪽부터) 산소 탱크 폭발 후 계기를 점검하는 우주비행사들. 우주선에 있는 물건으로만 임시 필터를 만드는 지상 엔지니어. /사진 유니버설픽처스
(왼쪽부터) 산소 탱크 폭발 후 계기를 점검하는 우주비행사들. 우주선에 있는 물건으로만 임시 필터를 만드는 지상 엔지니어. /사진 유니버설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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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기업의 사례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14년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 취임 이후 클라우드와 AI 중심으로 전략 방향을 바꿨다. 중요한 것은 CEO의 전략 선언이 아니라 그 뒤를 이은 기술 전환이었다.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애저(Azure)’라는 클라우드에서 작동하도록 재편하고, 영업과 평가 체계, 파트너 정책까지도 클라우드 중심으로 바꿨다. 이러한 전략과 기술의 정렬 결과로 2014년 약 3000억달러(약 450조원)였던 시가총액은 2024년 3조달러(약 4500조원)를 넘어섰다. 전략의 변화를 기술과 조직 운영, 인프라의 변화로 이어갔기 때문에 전략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 개발도 같은 구조로 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속에서 목표는 가능한 한 짧은 시간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이었다. 목표 정의 후에는 mRNA 기술, 임상과 규제 대응, 생산과 공급망 운영을 한 방향으로 정렬했다. 엔비디아도 AI 시대의 표준 인프라 플랫폼이라는 전략 방향에 맞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생태계를 한 축으로 정렬했다. 그 결과 단순한 칩 공급 업체를 넘어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 데이터센터 운영 전반을 떠받치는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세 기업이 속한 산업은 달라도 공통점은 분명하다. 전략과 기술이 같은 목표를 향해 맞물릴 때 비로소 성과가 나왔다.

같은 목표를 향한 두 바퀴

알파폴드2의 성과를 이해하려면 기술의 우수성보다 문제를 다루는 방식부터 봐야 한다. 딥마인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이라는 난제를 단순한 계산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학의 병목을 풀 열쇠로 보았다. 목표가 분명해지자 해법도 달라졌다. 기존처럼 실험 장비와 연구자의 숙련에만 기대는 대신, 방대한 구조 데이터를 학습한 AI로 예측 정확도를 끌어올렸다. 여기에는 알고리즘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생명과학 지식과 AI 연구 역량이 한 팀 안에서 맞물렸고, 축적된 데이터와 계산 자원도 같은 방향으로 집중됐다. 다시 말해 알파폴드2의 돌파는 ‘좋은 기술 하나’ 만으로 얻은 결과가 아니라, 무엇을 풀 것인지에 대한 목표, 어떤 방식으로 풀 것인지에 대한 전략 그리고 그 전략을 떠받치는 사람과 자원이 정렬된 결과였다. 그래서 알파폴드2는 단순한 기술 시연에 그치지 않고, 과학 연구의 속도와 범위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아폴로 13’은 무사 귀환이라는 새로운 목표 아래 사람과 장비, 계산과 실행을 한 방향으로 묶어 세 명의 우주비행사를 살려냈다. 현실의 기업도 시장 변화와 기술 전환 앞에서 전략과 기술을 한 방향으로 정렬해 성과를 만들어 냈다. 위기든 혁신이든 결과를 가르는 것은 전략과 기술이라는 두 바퀴를 같은 목표 아래 얼마나 정교하게 정렬하느냐에 달려 있다. 알파폴드2의 돌파도 결국 그 두 바퀴가 같은 목표를 향해 맞물려 돌아갔기에 가능했다. 

신재훈 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