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할머니의 불안정한 시야를 표현하기 위해 삼각대를 낮게 설치했고, 의도적으로 렌즈의 초점을 맞추지 않음으로써 흐릿한 시야를 재현했다. 그에 반해 작가가 원래 자기 관점에서 담은 꽃 사진 작품은 뿌옇고 몽환적인 질감이 특징이다. /사진 김진영
작가는 할머니의 불안정한 시야를 표현하기 위해 삼각대를 낮게 설치했고, 의도적으로 렌즈의 초점을 맞추지 않음으로써 흐릿한 시야를 재현했다. 그에 반해 작가가 원래 자기 관점에서 담은 꽃 사진 작품은 뿌옇고 몽환적인 질감이 특징이다. /사진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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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가족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이 살던 방을 오래 정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옷장에는 옷이 그대로 걸려 있고, 책상 위 메모나 안경도 마지막 자리에 남아 있다. 이는 어쩌면 부재를 조금 천천히 받아들이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사물은 기억을 붙들고 있어서, 남겨진 공간은 쉽게 과거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 살던 집을 그대로 둔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과 대화를 완전히 끝내지 않는 일 같기도 하다. 문득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며 그 사람은 이 빛을 어떻게 보았을까 상상해 보고, 먼지가 내려앉은 탁자를 바라보다 그의 시간 속을 잠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 애도는 때로 이런 식으로 공간을 통해 지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사진작가 오쿠야마 요시유키(奥山由之)의 ‘꽃(Flowers)’은 바로 그 감각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긴 집을 작업실로 사용하던 작가는 집 안에 꽃을 들여놓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촬영으로 부재하는 할머니와 대화하는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꽃 사진을 찍게 된 건 우연이었다. 작가는 근처의 한 꽃집에서 팔리지 않은 꽃을 버리기 전에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때는 아름답게 피었지만, 곧 시들어 버려질 꽃의 기념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마음에 와닿아 작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꽃을 받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작가는 할머니가 생전에 꽃을 집 안에 두고 보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역시 집 안 곳곳에 꽃을 두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꽃을 마주하는 행위가 돌아가신 할머니와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늦은 오후, 태어나서 처음 보는 듯한 밝은 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빛 가운데 부드러운 셔터 소리가 들렸고 고요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할머니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할머니의 눈에 이 빛은 어떻게 보였을까. 창가에 얇게 쌓인 먼지를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셔터를 눌렀다. 향수의 감정과 약간의 후회와 함께. (중략)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지금도 셔터를 누를 때마다 그 점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방을 외롭게 비추는 아름다운 석양을 볼 때면, 비로소 할머니가 어떤 기분이었을지를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꽃을 찍는 일은 내게 할머니와 대화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더 나아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의 후회까지도 함께 촬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쿠야마 요시유키의 ‘꽃(Flowers)’ 표지. /사진 김진영
오쿠야마 요시유키의 ‘꽃(Flowers)’ 표지. /사진 김진영

책에는 두 종류의 사진이 담겨 있다. 하나는 할머니 관점에서 할머니가 바라보았을 장면을 상상하며 담은 집 안 풍경이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집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지,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작가는 알고 싶었고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대형 카메라와 중형 카메라, 35㎜ 카메라, 폴라로이드 카메라 등 다양한 카메라를 사용하고, 이를 모두 삼각대에 올려, 할머니 시선에 가까운 높이와 각도에서 침실, 주방, 서재 등 다양한 공간을 담았다. 

촬영할 때는 직접 셔터를 누르는 대신 원격 릴리즈를 사용했다. 작가는 말한다. “내가 카메라가 되어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할머니가 되어 사물을 보게 하고 싶었다. 할머니의 불안정한 시야(허리를 굽힌 자세에서 비롯된 시선)를 표현하기 위해 삼각대를 낮게 설치했고, 의도적으로 렌즈 초점을 맞추지 않음으로써 흐릿한 시야를 재현했다. 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바닥에 쓰러져 계셨는데, 그 순간 할머니가 보았을 법한 시점을 담고 싶기도 했다. 나는 가능한 한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가 실제로 할머니의 시점을 느끼도록 하는 데 몰두했다.”

실제로 작가가 촬영한 집 안 풍경을 보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선, 반듯한 구도보다 기울어진 각도 그리고 때로는 의도적인 흐릿함이 눈에 띈다. 그에 반해 작가가 원래 자기 관점에서 담은 꽃 사진 작품은 뿌옇고 몽환적인 질감이 특징이다. 

작가는 우연히 장롱에서 할아버지가 쓰던 110 필름 카메라를 발견했다. 110 필름은 매우 작아서, 우리가 보통 보는 크기로 인화하면 해상도가 낮아 보이고 디테일이 뭉개져 보인다. 그리고 대체로 성능이 뛰어나지 않은 플라스틱 렌즈인데, 콘트라스트가 약하고 빛이 번지는 듯한 부드럽고 안개 낀 느낌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독자를 사로잡는 건 꽃 사진의 독특한 분위기이지만 작가에게 중요했던 것은 완성된 사진 질감보다 사진 촬영 시 실제적인 ‘느낌’ 이었다.

“110 필름 카메라는 35㎜보다 훨씬 작고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로 작다. 게다가 그것이 집에 원래 있던 물건이라는 사실도 중요했다. 그래서 훨씬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느낌이 있었다. 완성된 사진의 질감 때문이라기보다 사물을 찍을 때 카메라라는 물건의 물리성 자체를 기준으로 장비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가능한 한 작고 가벼운 장비 그리고 나 자신과 밀착된 카메라를 사용했다. 간단히 말하면, 눈처럼 존재감 없는 카메라를 사용한 것이다.”

그가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카메라로 조용히 꽃을 담고, 다른 큰 카메라를 삼각대에 세워 집 안 모습을 찍은 결과, 이 책은 두 종류의 사진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듯 번갈아 가며 펼쳐진다. 작가의 시점과 할머니의 시점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책이 구성된 셈이다. 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돌아가신 할머니와 대화를 담은 이 책은 이제는 부재하는 존재를 다시 상상하고 관계를 끝내지 않고 이어가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남겨진 공간이 쉽게 과거가 되지 않듯, 작가에게 할머니가 남긴 집 역시 서사가 끝난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대화가 지속되는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떠난 가족의 방을 오래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 공간은 비워야 할 장소가 아니라 기억과 대화가 머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