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월 19년 만에 구글이 요구해 온 1 대 5000 국가 기본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용했다. 이 정도 수준의 정밀한 국내 지도가 해외로 나가는 건 처음이다. 정부는 안보 우려를 반영해 군사시설 가림 처리와 국내 서버 내 데이터 가공을 필수 조건으로 내걸었다.

최근 한국을 찾은 크리스 터너(Cris Turner) 구글 지식 및 정보 사업 부문 정책총괄 부사장은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는 구글 지도를 사용하는 20억 명의 사용자가 있다”며 “K-컬처를 비롯해 한국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허가를 계기로 한국의 소상공인이 글로벌 사용자와 만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터너 부사장은 “언제 한국에서 서비스를 본격화할지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한국 파트너사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아마도 단계적으로 서비스를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크리스 터너 - 구글 지식 및 정보 사업 부문 정책총괄 부사장, 미국 콜로라도대 법대, 조지타운대 공공정책학,
전 델테크놀로지스 부사장,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부사장 /사진 구글
크리스 터너 - 구글 지식 및 정보 사업 부문 정책총괄 부사장, 미국 콜로라도대 법대, 조지타운대 공공정책학, 전 델테크놀로지스 부사장,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부사장 /사진 구글

이번 정부 결정으로 네이버와 카카오가 양분해 온 국내 지도 시장에는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업계에선 압도적인 데이터 처리 역량을 갖춘 구글이 단기간에 국내 기업의 점유율을 위협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새 경쟁 구도를 형성해 자율주행, 모빌리티, AI 에이전트 등 낙후한 공간 정보 산업 전반으로 파급력이 확산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구글은 최근 생성 AI(Generative AI) 제미나이와 결합한 ‘지도에 묻기’ 서비스를 선보였다. 구글 지도에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됐는데, 커피숍 줄을 오래 서지 않고 충전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오늘 밤 조명이 켜진 공용 테니스 코트가 있을까’를 묻는 식이다. 터너 부사장은 “사용자가 지도와 대화하며 가고 싶은 장소를 추천받고, 교통 정체나 도로 파손을 실시간으로 알아내는 등 한층 진화된 몰입형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정부의 반출 허가가 나자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이 크게 보도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일인가.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그 정도로 뜨겁다는 증거다. ‘한류(韓流)’는 글로벌 주류 현상이고, 한국 방문객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이번 허용을 계기로 전 세계 20억 명의 구글 지도 사용자가 한국 문화를 모국어로 탐색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글로벌 미디어의 관심을 끌 만하다.”

영국·일본·독일은 구글 지도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들 국가도 안보에 민감할 텐데, 어떻게 지도 반출을 설득했나.

“이들 국가도 나라별로 규제 환경이 모두 달랐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각국 정부의 요구 사항을 경청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를 준수할 수 있는 기술적 유연성이다. 각국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법은 수십 가지가 넘을 수 있다. 우리는 글로벌 표준을 지키면서도 각국의 현지 법규를 기술적으로 완벽히 충족하는 균형점을 찾아냈다.”

한국에서는 허가받는 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한국 정부와 국민이 안보 이슈에 대해 매우 민감한 것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다. 우리는 서두르기보다 제대로 하는 데 집중하려고 했다. 한국 정부의 기대치를 충족하기 위해 오랜 시간 기술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고, 협력을 통해 해결하다 보니 시간이 걸렸다.”

구글 지도와 제미나이가 결합한 에이전틱 지도 서비스. /사진 구글
구글 지도와 제미나이가 결합한 에이전틱 지도 서비스. /사진 구글

이미지 크게 보기

시장 규모나 영토 면적을 보면 한국은 별로 크지 않은 나라다. 그런데도 끝까지 허가를 받으려 한 이유는.

“한국 문화와 시장의 힘은 전혀 작지 않다. 한국은 문화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혁신적인 시장 중 하나다. 구글 지도 사용자만 20억 명에 이른다. 한국은 꼭 필요한 퍼즐 조각이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이 구글이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조건부 허가를 받았지만, 정부와 이견이 있다는 보도가 있다.

“어떤 데이터를 해외로 보낼 수 있고 어떤 데이터를 한국에서 처리해야 하는지는 이미 한국 정부와 협의가 끝났다. 지금은 이견이라기보다 ‘최적의 기술적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가령 안보 시설 가림 처리를 위해 기술적으로 100가지 방법이 있다면, 한국 정부의 요청과 파트너사의 여건, 그리고 구글 서비스의 품질을 모두 만족하는 최적의 방식을 조율 중인 것이다. 기술적 장애물은 없으며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다.”

구글 지도 서비스가 제대로 시작되면 사용자에게 돌아갈 가장 큰 혜택은.

“아마도 일상생활의 안전과 효율이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선 AI 지도로 포트홀(아스팔트 도로 위 균열) 같은 도로 파손을 식별해 수리 속도를 높이고, 인도에서는 홍수를 예측해 대피를 돕고 있다. 차량 정체를 분석하고, 전기차 충전소 최적 위치 선정이나 탄소 저감을 위한 나무 그늘 위치 제안 등 공공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이미 한국 지자체와 이에 대해 협력하고 있다.”

한국 사용자의 인기를 끌 기능을 예상한다면.

“공유 목록(Shared Lists) 기능이 큰 인기를 끌 것으로 본다. K-팝 성지순례지나 자기만 아는 숨은 맛집 목록을 만들어 다른 사용자와 공유하는 것이다. 한국은 크리에이터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커뮤니티 기반의 탐색 기능이 한국 문화와 강력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구글 지도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

“구글은 지도와 직접 대화하는 시대를 열었다. 지도와 연결된 제미나이에 ‘조용하고 햇살이 좋은 카페를 찾아 줘’라고 말하면 즉시 최적의 장소를 제안한다. 시 공무원이 ‘어제 오후 5시에 이 구역이 왜 막혔지?’라고 디지털 트윈과 대화하며 도시를 운영할 수도 있다. 사용자가 누구든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유용한 통찰을 얻게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한국 서비스의 전면 활성화 시점은.

“정확한 날짜를 당장 발표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서비스 도입은 ‘단계적(phased approach)’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지도의 기본 기능이 활성화된 후, 지자체나 대학, 소상공인과 협력해 도로 파손 감지나 재난 예측 등 특화된 ‘킬러 앱’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국내 서버 가공·안보 시설 가림' 전제
정부, 구글 지도 반출 조건부 허용

서울 용산 지역 5000분의 1 축척 국가기본도. /사진 국토지리정보원
서울 용산 지역 5000분의 1 축척 국가기본도. /사진 국토지리정보원

국토교통부 등 9개 부처 협의체는 2월 27일 심의를 통해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6대 보안 조건 준수를 전제로 반출 결정을 했다.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데이터의 국내 처리와 보안 가공이다. 구글은 국내 제휴 기업을 통해 모든 원본 데이터를 국내 서버에서 가공해야 하며, 정부의 사전 심사를 거친 데이터만 반출할 수 있다. 또 구글 지도와 구글 어스 서비스 시 위성·항공사진에서 군사 및 보안 시설을 반드시 가림 처리해야 하며, 등고선 등 안보 민감 정보는 반출 대상에서 제외했다.

상시 감시 및 대응 체계도 강화했다. 정부는 구글에 국가 안보 위협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레드 버튼) 마련과 함께, 정부와 소통할 한국 지도 전담관을 국내에 상주시킬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보안 사고 대응 프레임워크 수립을 의무화해 사후 관리 책임도 명확히 했다. 협의체는 이번 결정이 공간 AI 등 신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면서도, 구글이 국내 산업계와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정부는 향후 보안 조건 이행 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허가를 중단하거나 회수할 방침이다.

박근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