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산업 부문, 특히 현재 실질적인 대체재가 없는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 발전을 일궜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해 왔다. 반면 한국은 현시비교우위지수(RCA)에 반영된 수출 경쟁력에 따라 주력 상품이 달라지는 등 시장 상황에 맞게 잘 적응해 왔다. 독일이 그런 부분을 한국에서 배워야 할 것 같다.”
독일 최대 상업은행이자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의 로빈 윙클러(Robin Winkler) 독일 거시 경제 총괄은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독일 경제의 지속 성장 해법을 이같이 제시했다.
저성장 터널에 갇힌 유럽 최대 경제 대국 독일이 앞선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AX(AI 전환·AI Transformation)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계공학 기술과 첨단 인공지능(AI)을 융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자율주행차나 로봇 등 물리적 형태가 있는 AI) 분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윙클러 총괄은 같은 학교에서 경제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독일 경제가 마주한 저성장 국면을 구조적 전환기에 나타나는 변화로 규정하면서도 “전환기의 여러 과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직된 노동시장, 과도한 행정 부담, 높은 단위 노동 비용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독일 경제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연립정부의 재정 지출이 높은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단기·중기 관점에서 GDP 성장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란 전쟁이 1.0%인 2026년 GDP 성장률 전망치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 2027년에는 회복세가 더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본다. 장기적으로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는 건 인구구조의 변화다. 은퇴 연령층은 많은데 이들을 대체할 젊은이가 부족해 노동 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재정 확대 정책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민간 자본 투자가 부진하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 역량의 중요한 잣대인 특허 출원 건수는 2010년대에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섰다.”
구조적 전환기에 나타나는 변화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 하지만 전환기의 여러 과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 부문과 정부의 규제 체계 양쪽에서 조정이 필요하다. 경직된 노동시장, 과도한 행정 부담, 높은 단위 노동 비용 등이 구조적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해결 과제다.”
이란 전쟁으로 인한 현재의 에너지 위기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황을 비교한다면.
“전쟁이 아직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분쟁이 지속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결과를 예측하는 건 쉽지 않다. 전쟁 초기에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와 비슷한 에너지 공급 부족 사태 재현 우려가 커졌지만, 유럽의 에너지 수요 충족에는 아직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가격 상승 폭은 상당하지만, 2022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산업의 핵심 원료인 천연가스의 경우 특히 그렇다. 하지만 분쟁이 중동의 인접 국가로 확산할 경우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 특히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은 심각한 공급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
물가 흐름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
“이란 전쟁으로 인한 외부 공급 충격이 이미 고(高)물가 전망을 반영한 유럽중앙은행(ECB)의 단기 금리와 국채 수익률에 추가적인 상승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공급 충격으로 인한 금리 인상의 특성을 고려할 때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개전 직후와 비슷하게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도이체방크는 올해 ECB가 두 차례의 금리 인상을 통해 기준금리를 2.5%로 올릴 것으로 전망한다. 분쟁(이란 전쟁)이 지속될 경우 기준금리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AI와 전기차 등 첨단 기술 전환에서 독일이 미국과 중국에 비해 늦었던 이유는.
“AI로 인해 급증하는 컴퓨팅 파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반도체 생산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대신 독일의 반도체 생산 대부분은 자동차 산업 수요에 맞춰져 있다. 독일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전기자동차(승용차 기준) 생산국이다. 독일 완성차 업체는 연구개발(R&D), 소프트웨어 및 데이터베이스 분야에 글로벌 업계 평균보다 빠른 속도로 투자를 늘려 왔다. 독일의 자체 반도체 생산능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수입 반도체를 자국 산업 역량과 성공적으로 통합할 경우 피지컬 AI를 통해 설계·제조에서 공급망에 이르는 광범위한 산업 전 분야에서 상당한 효율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첨단 제조 분야에서 독일의 앞선 경쟁력이 피지컬 AI 분야 경쟁에서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뜻인가.
“독일은 이미 로봇 기술과 제조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AI 관련 연구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연구 성과를 실용성 있는 특허로 더 잘 전환하기 위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AI 관련 민간 투자가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는 피지컬 AI 분야 개척에 나선 중견급 이상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과 시드 펀딩 단계의 신생 기업으로 향하는 벤처 투자금이 모두 포함된다. EU 역내 ‘자본시장 통합(CMU·Capital Market Union)’을 강화하고 벤처캐피털(VC)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한국과 독일은 경제·산업구조가 비슷하다.
“두 나라 모두 천연자원이 부족하지만, 견고한 민주주의 제도를 바탕으로 부지런함과 창의력을 앞세워 강력한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이를 통해 수십 년에 걸친 세계화 과정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차이점도 있다. 한국은 산업 중심축이 불과 수십 년 사이 농업에서 섬유산업으로, 다시 전자 및 첨단 기술 산업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비교 우위가 있는 부문에 자원을 재배치할 수 있었고, 20세기 중반의 노동 집약적 상품에서 오늘날의 자본 집약적 상품으로 초점이 이동했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이미 산업국가였던 독일은 그런 산업구조 전환을 겪지 않았다.”
독일의 상황 변화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이 있을까.
“최근 수십 년 동안 독일은 산업 부문, 특히 현재 실질적인 대체재가 없는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 발전을 일궜다. 그 결과, GDP에서 제조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해 왔다. 반면 한국은 RCA에 반영된 수출 경쟁력에 따라 주력 상품이 달라지는 등 시장 상황에 맞게 잘 적응해 왔다. 오히려 독일이 그런 부분을 한국에서 배워야 할 것 같다.”
RCA란 특정 제품 수출액이 세계 수출 총액에서 차지하는 점유율과 해당국의 그 제품이 해당국 수출 전체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을 비교해서 수출 경쟁력을 계산하는 지수다. 보통 1보다 크면 경쟁력이 높고 작으면 경쟁력이 낮다고 본다.